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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오강정(題烏江亭)

기자명 박상준

시(詩)라는 한자는 말씀 언(言)에 절 사(寺)자를 쓴다. 말하는 절이란 뜻은 아니고, 말이 절간처럼 고요해지고 그 고요해진 상태에서 다시 언어로 우러나온 것이 시(詩)라고 할 것이다.

한자라는 언어를 빌려서 지어진 한시(漢詩)는 시 자체의 압축미가 생명인데 막상 우리말로 옮기고 거기다가 감상까지 덧붙이면 시 자체의 향기는 사실 온데간데없게 된다. 그럼에도 연재의 제목을 시향만리(詩香萬里)로 붙여 본 것은 우리말로 옮겨진 다음에도 함께 병기하는 한시 원문을 통해 충분히 시향을 음미할 수 있는 독자님들의 심미안과 심미코를 십이분 믿기 때문이다. 두목(杜牧)의 제오강정(題烏江亭)을 읽어본다.
 
승패병가사불기(勝敗兵家事不期)
포수인치시남아(包羞忍恥是男兒)
강동자제다재준(江東子弟多才俊)
권토중래미가지(捲土重來未可知)
 
승패는 병가지상사여서 기약할 수 없는 법, 수치를 끌어안고 치욕을 참아야 남아인 것을. 강동의 자제들 재주 있는 준걸들이 많으니, 권토중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음의 참의미 일깨우는 시
참는 것 자체 사라지는 참음
이것이 바로 인욕바라밀

역사에서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고 흔히들 말한다. 오강은 저 옛날 항우가 우미인을 죽이고 자신도 칼을 물고 스스로 세상을 하직한 곳. 장량의 사면초가 심리전에 걸려들어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져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곳이다.
 
우미인도 선선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어찌 삶의 미련이 없었으랴. 허나 님의 결단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훗날 이 우미인의 무덤에서 할미꽃이 피어난다. 송나라 시대의 대문장가인 증공은 ‘우미인초(虞美人草)’라는 시를 남겨놓고 있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은 역사가 한참 흐른 뒤에 이 오강에 들렀다가 가정법적인 감회에 젖어든다. 우리는 또 당나라시대에서 또다시 역사와 세월이 제법 많이 흘러버린 21세기에서 항우와 항우의 최후를 두고 감회에 젖어들었던 한 시인의 시를 바라보고 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간 저 미래의 어느 날 또 누군가가 있어 또 그렇게 감회에 젖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아야지 하면서도 참지 못한 일이 많은 필자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에이 좀 참지’ 하다가도 ‘그래, 오죽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참을성 많기로는 ‘금강경’에 나오는 인욕선인이 떠오르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참았던 처용도 생각난다. 점점 급해지는데 강의 시간을 넘겨 강의를 하면서 더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교수님 덕분에 인욕수행을 더러 해본 경험도 있다.
 
논어 학이(學而)편에서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平)”라고 하였다.
 
억지로 해우소가는 일을 참는 것처럼 참는 것이 아니고 참을 것 자체가 사라지는 참음으로의 경지를 일러 인욕바라밀이라고 할 것이다. 참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능동적으로 해석한다면 적극적인 배려이다. 나 자신 타인을 얼마나 배려했던가 깊이 반성해본다.
 
▲ 박상준
다른 건 다 참아도 원고마감일 넘기는 것은 차마 참지 못하는 어느 신문사 편집부장님이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참는 것도 참는 것이지만 새해에는 다른 이가 나 때문에 도저히 못 참겠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지는 말자는 다짐을 단단히 하고 참아볼 생각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28호 / 2014년 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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