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사티의 의미

기자명 인경 스님

현재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아주 오랫동안 사티(sati, 念)는 불교명상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용어이다. 위빠사나의 남방수행 전통에서도 그렇고, 동북아 간화선의 전통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시하였다. 지금까지 현대적 의미의 사티(sati) 논쟁은 2차례 있었다. 2000년에 일어난 1차 논쟁은 사티 수행은 어떻게 가능한가(일상의 삶에서 가능한가, 아니면 높은 수준의 선정에서만 가능한가)를 놓고 논쟁을 했다. 반면에 2차 논쟁은 2010년에 있었고 외적으로 번역의 문제(알아차림, 혹은 마음챙김)였지만, 실제로는 상담이나 심리치료의 분야에 적용하면서 그 적절성에 관한 문제였다. 전자의 논쟁이 불교학계 내부의 논쟁이었다면, 후자는 다른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진 새로운 문화에 대한 수용 및 대응과 관련된 대중적인 논쟁이었다.

사티, 명상 수행 핵심 키워드
사전적 의미론 기억·자각 의미
인간심성 계발의 보편적 술어
번역 문제 두고 2차 논쟁 일어

명상이 현대인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힐링의 중요한 방법으로 사회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이제 사티(sati)라는 용어는 마인드풀리스(Mindfulness)라는 영어 번역어와 함께 핵심적 키워드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사티 명상수행이 불교계의 전유물만이 아닌 의료계, 상담 및 심리치료, 교육계나 일반 경영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심성을 계발하는 보편적 술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 한 번 재음미를 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사티(sati)라는 용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기억(memory)’, ‘주의(attention)’, ‘자각(awareness)’이란 말과 함께 한다.

첫째로 사티(sati)라는 말의 뿌리가 '기억하다(√smṛ)'것임을 상기하자. 명상수행에서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사찰에서 자주 듣게 되는 염불(念佛)이나 명상센터에서 말하는 아나파나사티(Ānāpānassati)의 경우를 보자. 염불은 부처님과 그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수행을 말하고, 아나파나사티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순간순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명상이다. 기억은 전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진리 혹은 경험된 내용을 잊지 않고 ‘상기’하는 것이다.

둘째로 물론 사티(sati)는 과거의 어떤 내용을 단순하게 기억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억한 그 내용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염불하는 소리나 호흡에 주의를 집중하여 분명하게 그것을 기억, 자각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주의를 집중한다고 하는 것은 과거나 미래의 사건이 아니고, 늘 항상 지금의 시점이다. 비유하자면, 점차로 사라져가는 종소리의 전 과정을 놓치지 않고 그 대상에 응시하여진 상태가 온전한 주의이다.

셋째로 사티(sati)는 안개처럼 애매하지 않고 다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선명하게 깨어있음의 ‘자각’을 의미한다. 곧 과거의 어떤 내용을 기억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려서, 그곳에 주의가 집중된 자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어떤 기억 때문에 아플 수가 있고, 그것 때문에 회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계발된 순수한 자각은 언어적인 판단이나 분석과 해석이 없는, 그곳에 탐착으로 물들거나 산만함에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필자는 사티(sati)를 ‘알아차림’으로 번역한다. 그것은 알아차림이란 용어가 ‘기억’, ‘주의’, ‘자각’ 등의 의미를 총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알아차림이고, 그 특정한 대상에 주의를 두는 것이 알아차림이고, 판단 없이 현재의 시점에서 존재하는 그대로 자각하는 것이 알아차림이다.

이것을 현실의 임상상황에 적용하여 보자. 이를테면 여기에 문이 잠겨있지 않다고 해서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강박적 장애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에게 ‘알아차림 명상’을 하게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는 문이 잠겨있다는 사실을 자꾸 망각한다. 그래서 그에게 현재의 시점에서 ‘주의를 집중하면서’ 아주 천천히 문을 닫고 잠그는 행동을 하게 한다. 이것은 자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서 알아차림이 있는 온전한 명상이다. 그런 다음에 아주 천천히 걸어서 방안에 들어와서 자리에 눕는다. 그러면 어떨까? 잠을 잘 잘 수 있지 않을까? ‘잠겨있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그 방정맞을 불안한 생각이 다시 일어난다고 하여도, 곧 그 생각을 ‘알아차림’하면서, 방금 전에 문을 잠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 안심하고 잠을 자지 않을까? 

인경 스님 명상상담 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29호 / 2014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