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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인자 승만경연구회장

젊은 정신·열정으로 정진하는 승만보살의 후예

▲ 이인자 승만경연구회장은 “인생의 황금기를 부처님과 함께하고 있으니 이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이 슬며시 어둠을 밀어냈다. 향을 사르고 부처님과 마주앉아 조용히 마음을 살폈다. ‘승만경’ 독송이 이어졌다. 108배로 부처님께 정성껏 예를 올렸다. 오체투지와 함께 발원하는 ‘승만보살 10대원’. 간절한 그 목소리에 새벽예불의 장엄함은 더욱 깊어갔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받아 지닌 계를 범할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

이인자(75·만후) 승만경연구회장. 이 회장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비수관 등 수행모임은 물론 ‘승만경’ 관련 공부모임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고 찾아가 배움을 청한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 회장은 불교여성개발원 고문과 한국차명상협회 이사, 교수불자연합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루를 온전히 공부와 수행, 포교에 쏟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이 회장은 경기대 예술대학 명예교수다. 시각디자인계에 한 획을 그은 미술가로 명성이 높다. 불교여성개발원과 지혜로운 여성, 한국차명상협회, 불교인재원의 인상 깊은 문장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런 가운데 2012·2013년 사진전을 가졌고, 지금은 유화작품전도 준비하고 있다. 왕성한 활동과 거침없는 추진력, 나이를 초월한 열정이 이 회장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

“신심 돈독한 불자입니다. 신심을 홀로 간직하는데 머물지 않고 실천을 통해 불제자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열정적인 분입니다.”(황명숙 전 한양대 교수) “왕성한 활동력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합니다. 나이를 초월해 격의없는 대화를 즐기고 바르지 않은 것엔 아주 단호한 매력적인 분입니다.”(한국차명상협회 이사장 원허 스님)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하다고나 할까, 강한 리더십에 섬세함도 겸비해 항상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습니다.”(박연선 홍익대 교수)

수행·포교 매진…작품 준비도
왕성한 활동·열정 변함 없어
교불련·여성개발원 창립 기여
승만보살 10대원 홍포 앞장

삶을 관통하는 불교의 열정을 보면 이 회장은 태어날 때부터 불자일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회장은 불교를 싫어했다. 독실한 불자인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딸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항상 지극했고 입에는 ‘관세음보살’을 놓치않았다.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요. 어떤 일이든지 내가 노력해야 성취되는 것이지 기도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했어요.”

이런 이유로 불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저편에서 가물거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정성으로 인연이 된 불심은 화로대의 불씨처럼 질겼다. 그리고 잠재돼 있던 불씨에 숨을 불어넣자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절인연은 불현듯 찾아왔다. 1998년 교수불자연합회가 창립됐다. 초대회장인 고준환 경기대 교수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동참을 요청했다. ‘사이비 불자’라며 몇 차례 거절했지만 동료 교수의 청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교수불자연합회는 당시 변변한 사무실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실을 내주었다.

그러나 모임이 진행될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저 기도하는 것 외에는 불교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항상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모임을 주도했던 그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불교 공부에 대한 마음이 일었다. 서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서점에 가보니 책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크고 두꺼운 책은 제목도 어렵고 내용은 한문 투의 글들이어서 엄청난 부담이었다. 한참동안 책을 고르지 못하던 그때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표지에 삽화까지 넣은 책이었습니다. 강단에서 시각디자인을 지도하다 보니 눈에 띈 거죠. 경전을 동화로 풀이해 놓은 책이었는데 후에 그 경전이 ‘법구경’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책이 계기가 돼 여기저기 좇아다니며 불교공부를 하고 책도 보면서 점차 불교에 시나브로 젖어들게 됐습니다.”

불교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마음이 넘쳐나고 있을 즈음 여성불자들을 위한 불교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왔다. 처음엔 고사했지만 거듭된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여성불자 신행문화 혁신’을 목표로 창립된 ‘불교여성개발원’이다. 2년여간 함께 창립을 준비해온 구성원들의 요청으로 2000년 초대회장 소임을 맡게 됐다.

막상 불교단체 대표를 맡고 보니 어깨가 무거웠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초보불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이런 인연들이 찾아온 것은 시절인연이었을 것이다. 생각을 다 잡았다. 인생에 있어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불교여성개발원이 안착하기 위해선 여타 여성모임과 차별화되는 불교여성단체로서의 정체성이 필요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불교여성개발원을 위하는 마음이 깊어갔다. 그만큼 기도도 간절해졌다.

‘승만경’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승만경’은 재가여성의 성불을 수기한 경전이다. 승만보살 10대원을 실천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계를 범하는 마음과 오만한 마음, 인색한 마음 그리고 시기와 질투, 분노, 증오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승만부인의 10대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난한 중생들에게 베풀고 질병있는 이들을 돌보겠다는 서원 자체가 바로 불교여성개발원이 가야할 길임을 확신했다.

“무릎을 쳤습니다. 재가여성을 위한 경전과 삶의 실천규범이 필요했습니다. 승만경은 부처님이 불교여성개발원을 위해 내려주신 경전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승만보살 10대원을 지녀 외우고 실천하면 여성 누구나 성불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여타 여성단체와 차별되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희심이 났다. 우선 ‘승만경’을 배워야 했다. 한국차명상학회 이사장 원허 스님과의 인연도 그렇게 맺어졌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 원허 스님의 ‘승만경’ 강의를 듣기 위해 4개월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오전 7시 대구로 향했다. 이 회장의 정성에 탄복한 원허 스님은 ‘승만경’의 만(鬘)자와 소리 후(吼)를 더해 ‘만후’라는 법명을 주었다. 이후에도 ‘승만경’과 관련한 강의가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달려갔다.

 
2008년 당시 불교여성개발원 이사장인 혜총 스님과 이사들의 만장일치 동의로 ‘승만경’이 불교여성개발원 소의경전으로 채택됐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은 승만경 공부와 승만보살 10대원 실천에 더욱 매진했다. 그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불교여성개발원 산하에 승만경연구회를 조직한 것이다. 아직은 생소한 ‘승만경’을 알리기 위해 강좌를 열었다. 이 강좌는 매년 봄·가을 두 차례 8주 강의로 진행되고 있다. 승만보살의 원력을 수행삼아 정진하는 ‘승만보살 10대원 결사’도 시작됐다. 결사는 지난해 12월20일 1400일 회향법회를 가졌으며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3년여의 노력 끝에 원문에 충실하되 현대적인 언어를 사용해 이해력을 높인 ‘승만부인사자후경’도 편찬했다.

시간을 쪼개 밤잠을 줄여가며 준비 중인 개인전도 승만경연구회가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다음 생에는 승만정신에 바탕을 둔 불교여성운동을 제대로 펼쳐보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이 회장은 지금 승만경의 세계에 폭 빠져 지낸다.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입니다. 모르니까 실수하고 후회할 수밖에 없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실수하고 후회할 일이 그만큼 줄어들어 행복하고 만족할 일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일 겁니다. 과일로 치자면 지금이 가장 달고 맛있게 익은 때죠. 인생의 황금기를 부처님과 함께하고 있으니 이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할 수 있는 젊은 정신과 열정이 있었을 때 가능한 말이다. 이 회장의 삶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젊고 열정적이다. 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승만경 속 승만부인의 삶이 이 회장의 생활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30호 / 2014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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