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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사임당의 ‘대관령…’

‘대굴령’. 오르내릴 때 고개가 워낙 험해서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이다. 신사임당이 친정을 오갈 때 오르내렸던 대관령이다. 대학시절 강원도 지역에 있는 사찰을 답사하게 되면 대관령 동쪽 경사면 아흔아홉구비를 달리는 버스의 움직임에 멀미가 나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눈부신 토목기술 덕택에 터널 지나고 공중에 떠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면 강릉이어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면서 좌우로 요동치는 버스를 타보기 자체가 어렵다. 답사할 때 어느 선배는 버스가 중간에 멈추면 다들 내려서 서울까지 버스를 밀고 가야 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버스 안에서 조용하게 있어야 된다고 했다.

정들었던 친정집 떠나며
대관령 고갯마루에 서서
어머니 향한 애틋함 표현

친정집이 강릉 북평촌인 신사임당은 버스를 탄 것도 아니고 자가용 승용차를 타지도 않고 이 길을 걸어서 오르내렸다. 그렇게 대관령을 넘다가 문득 친정집을 바라보면서 대관령 고개에서 시를 한 수 짓는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사임당의 시비도 세워져있다.

제목은 ‘대관령을 넘어가는 길에 친정집을 바라보며(踰大關嶺望親庭)’이다.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回首北坪時一望(회수북평시일망)
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어머님의 학처럼 하얀 머리 임영땅에 남겨두고 / 몸을 서울로 향해 홀로 떠나는 이내 심정 / 머리 돌려 북평촌을 때때로 한번 씩 바라보니 / 흰구름 날아 내리는 저녁산만 수심깊어

임영의 영(瀛)은 큰바다라는 뜻이고 큰바다에 임해있는 강릉의 옛이름이다. 이 시는 사임당이 38세 때 대관령을 넘다가 고개마루턱에 앉아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율곡의 ‘선비행장(先妣行狀)’에 실려 있다. 대관령 고개를 올라가는 동안 사임당은 몇 번을 돌아보았을까. 이제 조금 더 가면 친정집이 돌아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고개 마루턱에 털썩 주저앉는다. 날은 저물어가고 어머니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닮은 흰구름들이 저 아래 아래로 날아 내려간다. 구름 따라 한 숨에 달려 내려가고 싶지만 서울로 가야 하는 몸이다. 강릉 바다빛깔을 닮은 푸른기운이 고갯마루턱으로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 고갯마루에 덩그라니 홀로 앉아 있는 심정. 머릿속에서는 수없는 상념들이 지나간다. 서울에서도 늘 그리운 경포대 앞의 한 줄기 바람이며 한송정가에 외로이 떠오르는 달이며 어머니 슬하에서 색동옷에 바느질하고 싶었던 생각이며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으리라.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심정은 아들에게도 이어져서 사임당이 세상을 뜨고 나서 율곡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정을 이기지 못해 금강산에 잠시 출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너하고 꼭 닮은 딸 하나 낳아서 키워봐야 내 마음을 알거다’하고 어떤 어머니가 딸에게 말하고, 그 딸은 자신의 딸에게 같은 말을 하면서 어머니의 전통은 줄기차게 이어져나간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건만 어머니의 정줄기는 그렇게 이어진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지도 벌써 몇해가 훌쩍 흘러갔다. 누구에게도 그러하겠지만 돌아가신 어머니도 살아계신 어머니 못지않게 자식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사임당의 어머니도 세상을 뜬지 이미 오래고 사임당이 세상을 뜬지도 오래다.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정을 담은 시는 세상을 떠나지 않고 전해지고 있다. 공간적인 길은 몇 리다 몇 킬로다 하고 일정하게 표시하지만 시간의 길은 몇 년을 한 순간에 뛰어넘기도 하고 수억겁을 한 찰나로 압축하기도 한다.

이 시를 읽는 동안은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그대로 대관령 고갯마루턱이 되고 어머니의 옷자락이 멀리 보이는 골목길이 되기도 한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31호 / 2014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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