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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권대자 포교사

신심·원력으로 마음 밭 불심 일궈온 이 시대 부루나

의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100세 장수시대는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불과 십수년 전만해도 60세가 넘으면 거창하게 환갑잔치를 하고 현역에서 한 발 물러나 소극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해 청장년 못지않게 활기차게 사는 노년의 삶이 증가하고 있다.

1980년 구산 스님 친견 후 발심
부처님 가르침 전법하겠다 서원
30여년 교정·환경·봉사에 헌신
한 생각 바꾸니 모든 것이 행복

▲ “지극한 마음으로 자비로운 하루를 보낸 이에게 하루하루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권대자 포교사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올해 73세인 권대자(대각화) 포교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젠 할머니 소리를 들으면서 손자, 손녀의 응석에 익숙해질 나이지만 그의 일상은 혈기 왕성한 청년 못지않다. 소소한 일에도 기뻐하고 감동하면서 넘치는 활력과 열정으로 주변에 행복을 보시하는 희망의 원천이라고 할까. 불심(佛心) 가득한 그는 조계종 포교사단의 역사를 연 1세대이자 지금도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포교에 열정적인 현역 포교사다. 교정, 복지, 환경, 문학 등과 관련한 직함만 십수가지. 권 포교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양한 방편으로 실천하며 재가불자들의 나아갈 길을 묵묵히 제시하고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참다운 불제자다. 어떤 일을 맡겨도 원만히 회향할 수 있는 능력과 저력을 가진 분이다.”(전 포교부장 계성 스님)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법 없는 마음 따뜻한 원력보살이다. 포교와 환경, 문학, 봉사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교계는 물론 사회의 연등과 같은 존재다.”(임희웅 전 포교사단장)

“포교사란 이름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포교와 교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권 포교사님의 나이를 잊은 포교열정과 전법활동은 후배 포교사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곽명희 포교사단장)

그가 온 몸, 온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하게 된 계기는 1980년 송광사 구산 스님을 친견하면서다. 이전 그의 삶은 가난으로 인한 고통으로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실한 불자였던 부모님은 불연의 씨앗을 심어 놓았지만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 앞에 부처님은 어린시절 아련한 추억일 뿐이었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보따리 장사, 택시운전, 식당 허드렛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더욱이 38세 되던 해 두 딸을 남겨두고 남편마저 세상을 저버리자 그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너무나 버거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자 훌쩍 떠나고 싶다는 몹쓸 생각마저 불쑥불쑥 생겨날 즈음이었다. 몇몇 지인들이 효봉 스님 추모법회를 위해 순천 송광사에 간다며 동참을 권유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구산 스님을 뵈었다.

“보살님은 마음을 찾으셨습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사람의 마음이 다 다르고 틀린데 어떤 마음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것은 중생의 마음입니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모두 초월해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 그런 부처님 마음 말입니다.”
“스님! 부처님 마음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저 같은 사람도 찾을 수 있나요?”
“이미 보살님 마음에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진실로 믿고 따르면서 열심히 정진해 보세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삶의 무게로 허우적대던 그에게 구산 스님의 따뜻한 격려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앞으로 살아가야할 문이 열린 듯 했다. 그는 구산 스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불교의 매력에 젖어 들었고, 불교를 통해 스스로 거듭날 것을 발원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나누겠다는 서원을 적었다. 금강같이 굳건한 서원은 종이 위에 머물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졌다. 불서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고,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마음을 닮으려 노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극한 원력은 더 많은 인연 공덕으로 이어졌다. 함께 공부하고 정진할 것을 발원한 도반들과 십시일반 정성을 더해 ‘평화통일 기원정사’를 창건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발심이 시나브로 익어가는 가을볕 나락을 닮아갈수록 얼굴엔 우담발화와 같은 미소가 깃들었다.

그의 원력은 필연을 불렀다. 1985년 봉선사에서 열린 ‘포교사교육’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포교사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기, 포교사 교육을 이수한 그는 깨어있는 온 시간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채울 것을 다짐했다.

“1989년 우연히 교도소를 방문하게 됐는데 안쓰러운 마음에 떡이나 해다 주자 했어요. 다들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때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먹거리로 잠시 기분만 좋게 할 게 아니라 부처님 말씀을 전하자. 한 때의 잘못으로 비좁은 공간에 갇힌 재소자들, 부처님 법 만나면 그 동안의 절망을 씻고 미래에 희망을 꿈 꿀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어요.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 교정교화에 필요한 자격을 취득하고 오늘날까지 교도소를 내집처럼 드나들게 되었지요.”

그의 손길은 환경운동으로 향했다. 우연히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려 드릴로 나무를 뚫는 모습을 목격한 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었다. 마치 자신의 몸에 구멍이 뚫린 듯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일체 생명에 불성이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처럼 사무치게 지극했던 적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더 이상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찰이라는 테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사회의 그늘진 곳으로, 생명의 고통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환경운동에 뛰어 들었다.

1993년 불국사 성타 스님을 이사장으로 대자연환경보전협회를 설립했다. 소소하지만 불자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을 펼쳤다. 샛강살리기, 우유팩 수거, 재생화장지 이용, 친환경 비누 사용 등 아줌마들도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었다. 환경노래보급협회를 설립해 환경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전국에 보급했다. 또 환경홍보사절단으로 비둘기합창단을 창단해 활동했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시심(詩心) 역시 재소자 교화와 환경운동이 그물코가 되어 마음 한 귀퉁이에서 움텄다. 뿐만 아니라 포교에 대한 원력과 생명에 대한 사랑, 문학에 대한 열정은 복지와 봉사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마흔을 앞두고 세운 발원과 서원은 지난 30여년간 그를 지탱하는 든든히 버팀목이 돼 주었다. 환갑이 되던 해인 2002년 여성포교사로는 처음으로 포교사단 대구·경북지단장 당선을 시작으로 지난해 법무부 중앙교정위원회 부회장 임명까지 많을 때는 포교, 교정, 환경, 복지, 문학 관련 직함만 52개나 됐다. 일흔을 넘기면서 믿고 맡길만한 후배들을 찾아 소임을 넘겨주는데 전념하고 있다. 그렇지만 몸담았던 모임에는 언제나 관심을 갖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지원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노년의 특혜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경력을 쌓아야 하는 청춘의 무게를 집어 던지고 젊어서는 깨닫지 못한 즐거움을 반추하고 음미할 시간이 생긴다는 겁니다. 머릿속에 저장된 행복을 반추하는 일처럼 즐겁고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또 저에게 기쁨이 되어 준 것들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그는 70생을 통해 터득한 행복의 비법을 일러줬다. 그것은 ‘죽겠다’ ‘안 된다’ ‘못 하겠다’는 말을 온 몸, 온 생각에서 지우라는 것이다.

“자업자득이라고 하고,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죠. 과거 제 삶은 죽겠고, 안되고, 못하는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구산 큰스님의 자비로운 경책에 한 생각 바꾸니 행복이 밀려왔습니다. 고통스럽던 일상들이 즐겁고 기쁜 일로 변했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안 될 일도, 못할 일도 없습니다. 스스로 만든 업연에 갇혀 허우적거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인드라망이라 했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가족에, 이웃에, 사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한 마디 말을 할 때도 그가 정성을 다하는 이유이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웃에, 사회에 전하는 포교사이니 더욱 그러하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처렴상정(處染常淨), 권 포교사의 하루하루가 그러하다. “지극한 마음으로 자비로운 하루를 보낸 이에게 하루하루는 일일시호일”이라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김현태 meopit@beopbo.com   
 

[1235호 / 2014년 3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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