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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화 전등사 닫집

수미단 위에 정토세계 장엄한 ‘교탈천공’의 명품

▲ 전등사 닫집은 별도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에 설치한 철물로 고정한 점이 특징이다.

달리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주 솜씨가 뛰어난 작품을 가리켜 ‘교탈천공(巧奪天工)’이라고 한다. ‘하늘의 솜씨를 빌려온 듯 교묘하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어떤 작품에 대한 최고의 헌사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물론 당대 최고의 작품이 아니면 쓸 수 없는 표현이다. 투명하듯 속이 파르스름하게 비치는 중국 송나라의 영청자(影靑瓷)나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이 말이 주저 없이 사용되었다. 또 신라의 경덕왕이 중국 당나라 대종(岱宗)에게 선물한 ‘만불산(萬佛山)’도 그만한 반열에 들 명품이다. 길이 1미터 정도의 틀 위에 자그마한 산 일만 개를 조각하고 각각의 산마다 부처님과 사찰을 섬세하게 배치한 공예작품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절마다 마당에 범종을 걸어놓고 바람이 불면 그 앞에서 당목을 든 승려가 일제히 범종을 치게끔 만들었으니 보통 장관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라의 엄청난 기술 수준을 말해주는 작품으로 오늘날 우리가 세계최고의 IT 및 기술강국이 된 게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오죽하면 만불산을 본 황제가 그만 넋을 놓고 보다가, “신라의 기교는 하늘이 내린 것이지 사람의 솜씨가 아니로구나!(新羅之巧天造 非人巧也)” 하고 장탄식을 했을까!(‘삼국유사’ 중 ‘만불산’조).

교탈천공의 실례를 우리 미술에서 찾는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 석굴암 및 석굴암 불상, 금동 반가사유상, 일본 최고의 국보로 꼽히는 광륭사 목조 반가사유상, 고려불화, 고려청자, 조선 백자 등이 모두 손색없는 걸작들이다. 가만 보면 대부분 불교미술에 속하니, 우리 미술의 진수를 말하면서 만일 불교미술을 뺀다면 그 다음엔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까 싶다.

위에서 든 몇 작품들은 모두 ‘레전드’급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문화가 직접 피부로 느껴지는 걸작으론 무엇이 있을까?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백미인 ‘닫집’이 바로 그런 존재일 것 같다. 닫집이란 전각 안 수미단에 모셔진 불상 위에 매달은 천개(天蓋) 모양의 집을 말한다. 닫집의 성립은 불상의 전유공간(專有空間)과 함께 나타난 것으로, 이 공간을 불교사상의 상징물로 승화시켜 대중이 깨달음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장엄한 것이다.

대웅전과 비율 맞춰 조화추구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 일품
정성스런 부재로 극락세계 구현
닫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

닫집 장인 보유기술 전수 안 돼
보수·제작 전문가 양성 시급

닫집들 대부분 화려한 모습을 한 것도 그윽한 정토세계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즉 닫집은 궁전 속의 궁전이자 또한 열반의 집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꿈인 정토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상상을 표현한 것이 바로 닫집인 것이다. 닫집의 특징은 지붕만 있고 문이나 벽이 없다는 점인데 이것은 부처와 중생 사이엔 아무런 장벽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닫집을 감상해 보면 강화 전등사(傳燈寺) 대웅보전의 닫집이야말로 다른 수많은 닫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그야말로 ‘교탈천공’의 명품이 아닐까 한다.

전등사의 금당인 대웅보전은 1621년에 지어진 고건축으로 내부의 닫집 역시 그 때 같이 만들어졌다. 무려 400년에 걸친 고색창연한 멋이 대웅전과 그 안에 놓인 닫집에 그대로 배어 있는 작품이다. 닫집을 올려다보면 지붕 부분이 좀 검게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세월의 때’다. 근래의 단청이 원색의 다듬어지지 않은 현란함만 가득하다면 이런 수백 년 된 작품이 외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고졸(古拙)한 멋을 가득 풍기고 있다.

▲ 전등사 대웅보전은 1621년 지어진 고건축으로 내부 닫집도 그때 같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닫집을 건축적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여러 가지 전문용어를 알아야 한다. 또 목조건축의 기본적 구성 형식도 필수 지식이다. 그런데 미술사의 여러 장르 중에서 건축 분야가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전문용어도 까다롭다. 미술사학자들에게도 그러한데 일반인들이 이런 건축 해설을 들으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로 절대 의기소침할 까닭이 없다. 일반 목조건축에서 사용하는 부재나 그에 대한 용어는 닫집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므로 어려운 단어가 수두룩한 게 불만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용어에서 닫집의 건축적 요소가 드러난다고 이해하면 차라리 속 편히 감상할 수 있다. 전통의 가옥 구조는 기단 위에 기둥·공포·들보·도리 등으로 뼈대를 구성하고 지붕을 덮는 게 기본이다. 이런 구조를 닫집에서는 기단부ㆍ축부ㆍ옥개부의 세 부분으로 단순화 해 번안했다. 사실 유교건축에도 닫집과 비슷한 부재가 있다. 왕이 앉는 옥좌 위에 설치된 지붕이 그것으로, 이를 ‘당가(唐家)’라고 한다.

전등사 대웅보전 닫집은 보통의 닫집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의 닫집은 내진주(內陣柱)라고 부르는 천정에 연결되는 기둥을 좌우로 놓고 그 사이를 판재로 마감한 후불벽에 붙여서 달아내는데 비해서, 전등사 닫집은 내진주가 아니라 닫집만을 고정하기 위한 별도의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닫집을 달고 지붕에 설치한 철물로 닫집을 고정한 점이다. 누가 보아도 전등사 닫집은 아주 공교(工巧)하고 화려하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움을 느낌으로만이 아니라 건축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도 있다. 전등사 닫집이 아름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우선 대웅보전의 전체 크기와 잘 어울리는 비율로 만들어져 조화로움이 잘 느껴지는 것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자체가 중앙의 중앙 칸이 크고 그 양쪽에 놓인 협칸이 거의 같은 비율로 좁아드는 형식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웅보전 안에 있는 닫집 역시 자세히 보면 전체 세 칸 중에서 중앙 칸을 중심으로 좌우 한 칸이 건물 협칸이 좁아드는 비율과 같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을 먼저 보고, 안에 들어가 닫집을 올려 봐도 전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고 올려다보는 시선이 아주 편안하게 이어진다. 여기에 고졸한 화려함까지 닫집에 가득 묻어나와 저절로 정토의 세계에 와 있는 것처럼 상상하게 만든다. 위로 5칸이 올려진(5출목) 지붕은 최상급 건축 기법으로 꾸며져 있으면서도 절제미가 있어 화려하면서 단아한 멋이 풍긴다. 그리고 닫집 이곳저곳에 달린 장식물도 그 자체로 훌륭한 공예품인데다가 여기에 금박까지 입혀져 있어 하나하나의 부재가 모두 정성을 다한 일등급 작품이라 할 만하다. 조각물로는 연봉이나 연꽃, 용머리 등이 끼워져 있으며, 단청도 화사한 색깔의 연꽃으로 수놓아졌다. 닫집 양쪽으로 극락조 한 쌍이 닫집 위를 날고 있어 한참을 바라다보노라면 과연 여기가 바로 극락세계로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 닫집 양쪽으로는 극락조 한 쌍이 날고 있다.

닫집은 형태면에서 보개(寶蓋)·운궁(雲宮)·불전(佛殿) 등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보개형은 천개 모습으로 된 닫집을 천장에 미리 설치된 홈에 끼워 넣는 것이고, 운궁형은 일자(一字) 모습으로 비교적 간단한 구조를 갖는다. 전등사 대웅보전 닫집으로 대표되는 불전형은 ‘부처님이 머무는 집’이란 정의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어 지붕이 몇 겹씩 이어지며 장식성이 뛰어나다. 그래서 이 불전형 닫집은 전각 안에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독립된 ‘집 속의 집’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까지 닫집의 구조를 말했는데, 한 마디로 말하라면 닫집은 공예건축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전통 불교미술의 오브제(Object)가 지금은 명맥을 잃고 사라져가는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현실 속에서의 역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닫집은 생김새는 건축물이지만 섬세한 구조적 특성상 공예 쪽에 더 가깝고, 주로 건축물 전체를 담당하는 대목(大木)보다는 건축물 안에 들어가는 갖가지 목재 장엄을 다루는 소목(小木)에 속하는 기능이다. 우리나라의 목조건축은 대목 위주로 이루어지다보니 소목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적은 편이다. 그런 풍조가 이 닫집에까지 적용되어 닫집만의 공예건축적 특수성이 관심을 받지 못했고, 그 결과 닫집 장인이 보유한 제작기술이 거의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 닫집은 현재 빠른 속도로 노후해지고 있어 수리와 보수가 매우 시급하지만 기술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닫집에는 못이나 부착재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못·아교·끼워맞춤 등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로 완벽하게 복원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전통 닫집의 구조와 구성, 사용 부재에 대한 분석 등 세밀한 정보도 자료로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닫집 제작은 물론 기존 전통 닫집에 대한 보수마저도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전문 장인과 그들의 노하우가 끊긴 상황에서 어설프게 닫집 수리를 시도하다가는 손상된 일부 부재는 물론이고 자칫하면 온전한 부재들까지 함께 다칠 위험성도 커진다. 이렇다 보니 사찰의 입장에선 손대기가 까다로운 기존의 닫집을 어설픈 장인에게 맡기기보다는 대목장에게 새로 만들게 해서 대체하는 게 여러 면에서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닫집 전문 장인이 있다면 일부만 보수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전통 닫집이 내려지고 새 닫집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까닭이다. 아름답고 섬세하게 구성되었다는 장점이 오히려 현실에서는 남아나지 못하는, ‘자학적(自虐的) 미학(美學)’이 곧 지금 닫집의 어둔 현실이다. 아름다워서 기구한 운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옛날 당당히 정토의 세계를 구현했던 전통의 닫집은 앞서와 같은 이유로 일단 그 자리를 내주고 바닥에 내려지게 되면 이후 제대로 잘 관리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누각이나 창고 같은 곳 구석 한켠에 놓여선 몇 년 동안 먼지만 가득 뒤집어 쓴 채 그대로 방치되다가 서서히 망가져 가게 된다. 이런 닫집을 전국의 사찰을 다니면서 숱하게 보아왔다.

그러니 현재 닫집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존뿐만 아니라 손상된 부위를 전통 기법에 맞게 보수하고, 나아가 전통기법에 맞게 제작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인 것 같다. 또 전각과는 상관없이 닫집만 선별해서 문화재로 지정한다면 교탈천공의 닫집이 오늘날에도 제대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buam0915@hanmail.net
 

[1240호 / 2014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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