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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추자 부산적십자 불교지구협의회 고문

불교 자비사상에 적십자 인도주의 버무려 보살행을 펴다

▲ 박추자 고문은 올해 71세 나이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회로 회향하는 불자’를 발원하며 어르신 목욕봉사와 희망풍차사업 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적십자는 1859년 이탈리아 솔페리노전투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구호활동을 펼친 장 앙리 뒤낭의 제안으로 결성된 국제적인 봉사·구호단체다. 우리나라는 1905년 고종의 칙령으로 처음 설립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상해 임시정부 하에서 독립군과 재외동포를 위한 인도적지원을 펼쳤다. 각종 사회활동과 재난구호, 복지사업에도 불구하고 우리 불자들에게 ‘붉은 십자가’가 주는 거리감은 감출 수 없는 불편함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을 선교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러나 적십자의 설립정신은 그 누구라도, 그 어떤 상황이라도 인간은 치료받고 제때 구호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장 담그기 봉사로 적십자 입문
2003년 ‘불교’이름 단위회 결성
2년만에 부산 지역 대표단체로
목탁되는 실다운 불자의 삶 발원

‘붉은색 십자가’의 불편한 벽들을 허물면서 적십자 내에 부처님의 자비손길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불교지구협의회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불교의 ‘자비사상’과 적십자의 ‘인도주의’를 함께 버무려 ‘보살행’이라는 이름으로 삶이 팍팍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관음손’을 발원하고 있다. 보살행이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불교협의회를 창립하고 든든한 마중물로서 모임을 이끄는 이가 있으니 바로 박추자(71·원신향) 보살이다.

“적십자 내 불교봉사 분야를 개척해 많은 불자들에게 사명과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그의 실천행은 그대로 자비보살행의 발로이자 포교행이다.”(조계종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이 사회에 행복을 선사해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 무엇보다 돈독한 신심으로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적극적으로 생활 속에 실천하는 불자다.”(부산 도림사 주지 정찬 스님)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매진하는 불교협의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기둥이다.”(윤수분 전 부산적십자 불교지구협의회장)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불자 집안에서 성장해 불자 집안으로 시집와 한 사람의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30여년을 보냈다. 그러한 그가 55세 되던 1998년 우연히 보게 된 신문기사 하나로 자비보살의 길을 걷게 됐다. 시절인연은 불현듯 찾아왔다. 이전 그는 해인 스님과 무비 스님, 지유 스님 등의 인연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마음에 쌓인 먼지를 걷어내는 일에 전념했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회향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진아(眞我)를 향한 이 길도 물론 좋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뭇 생명의 행복과 이익을 위한 실천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부처님의 그 크신 원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혼자만의 공부에 만족하고 안주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즈음 신문기사 하나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줄 장을 담그는데 동참할 자원봉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어요. 30여년간 가정주부로 살아왔으니 이 보다 좋은 자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화를 걸어 동참의 뜻을 밝히고 봉사장소로 찾아갔어요. 공교롭게도 이날 행사는 적십자 부산지사 원불교지구협의회가 마련한 자리였어요. 종교적인 간극은 있었지만 참석자 모두 어찌나 맑고 향기로운 분들이던지…. 사람에 끌려 정기적으로 봉사에 동참하기로 약속했고, 그렇게 적십자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꽉 막혔던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일까. 금새 얼굴이 달라졌다. 봉사의 시간이 쌓이며 보람과 긍지도 함께 커지니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함께 공부해온 도반들이 먼저 알아채고 연유를 물어왔다. 자초지정을 설명하자 그 길에 동행하겠다는 도반들도 여럿 생겨났다. 그렇게 1년여만에 그를 좇아 불자 10여명이 원불교지구협의회에 동참하게 됐다.

불자들의 동참이 늘어나자 또 다른 고민이 찾아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회로 회향하는 불자가 되겠다”며 시작한 일이지만 ‘불교’가 아닌 ‘원불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 이르는 자리마다 주인이 돼야 하는 것이 불자의 삶 아니던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원불교지구협의회는 그에게 불자들로 구성된 단위회 구성을 제안하며 회유했지만, 결국 2003년 1월 ‘불교’라는 이름을 걸고 독자적인 단위회를 출범시켰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제가 60이 되던 해 적십자에 불교라는 이름의 첫 단위회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첫 모임에서 개회사와 국민의례에 이어 처음으로 함께 반야심경을 봉독하던 당시의 가슴 뛰는 벅찬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역 중심의 한국적십자 내에 종교를 내건 단위회는 현재도 원불교와 불교가 유일합니다.”

밑반찬 마련과 전달, 환자 수술비 지원, 불우이웃 돕기, 복지시설 봉사활동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의 활동은 불교와 부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불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정노인복지센터, 용호종합복지관, 성애원, 금정종합사회복지관, 보현도량, 혜일암 무료급식소 등 적십자와 인연의 끈이 느슨했던 불교관련 시설에 원력을 집중했다.

 
2005년 2월, 단위회 설립 2년만에 불교지구협의회 승격이 확정됐다. 적십자는 ‘단위회’가 모여 ‘지구협의회’를 구성하고 ‘지구협의회’가 모여 ‘지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구협의회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5개 단위회 50여명의 회원을 확보해야 한다. 단위회가 2년만에 지구협의회로 승격된 것은 적십자 내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고속 성장이다.

적십자사 부산지사 불교지구협의회 초대회장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불교협의회의 체계적 관리와 전문성 강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운영시스템이 절실했다. 62세 나이에 정규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낮에는 봉사현장에서 뛰고 밤에는 두꺼운 전공서적을 탐독하는, 말 그대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금백련출홍로(精金百鍊出紅爐), 좋은 쇠는 뜨거운 회로에서 백 번 단련된 다음에 나오는 법이다. 오늘날 불교협의회가 부산적십자를 대표하는 봉사단체로 성장한데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숨은 공로가 있었다. 오늘의 모습이 있기까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말 갑자기 찾아온 뇌경색으로 그가 쓰러졌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수족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가피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2주만에 건강이 회복됐어요. 의사는 기적이라며 재발할 수 있으니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했죠. 가족들도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쉬라고 하더군요. 그 때 포기했다면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겠죠. 회향을 위해 벌여놓은 일인데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저를 믿고 따라준 도반들 그리고 부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적립한 공덕, 이번에 모두 털어버렸다 생각하고 다시 출발선에 선다는 심정으로 봉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냈습니다.”

그는 가족들의 우려에도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봉사에 쏟아 부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자리에 누울 때면 천근만근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봉사를 시작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마음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정진의 공덕과 봉사의 행복이 주는 선물이라고 믿는다.

2006년 주어진 2년의 임기를 마치고 그는 불교협의회장에서 물러났다. 그렇다고 보살행이 멈춘 것은 아니다. ‘고문’이란 직함을 달고 있지만 71세의 나이에도 어르신 목욕봉사에 참여하고 복지사각지대를 찾아내 지원품을 전달하는 희망풍차사업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또 적십자 불교협의회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온전히 그의 몫이다.

“움직이는 만큼 건강해집니다. 이웃의 행복이 에너지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옮겨오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부처님 법 공부하고, 꼭 실천하세요. 이것이 70생 살아오면 체득한 행복의 길입니다.”

박 고문은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출가수행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평생 부처님 법 공부하며 사회에 회향하는 참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다. 그렇기에 그의 보살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에 목탁이 되는 실다운 불자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자비나눔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곳이 그 어디라할지라도 걸림없는 보살행을 펼치는 불교협의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에게 이웃의 고통과 아픔은 곧 존재의 이유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49호 / 2014년 6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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