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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비우고 마음으로 절집을 걷다”

  • 불서
  • 입력 2014.06.19 13:47
  • 수정 2014.06.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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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고운절집’ / 한선영 지음 / 민속원

▲ '길이 고운절집'
너무 익숙해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공기가 그렇다. 항상 마시고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니 중요성을 모른다. 그러나 군에 가본 사람은 안다. 최루가스에 숨이 막혀 정신이 가물거릴 쯤 겨우 허락되는 방독면을 통해 마시는 공기의 고마움을. 이때 마시는 공기는 예전의 공기가 아니다. 마음껏 숨을 들이킬 수 있음이 바로 살아있다는 증표임을 깨닫게 된다.

절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산에 가면 어디나 절이 있으니 소중함을 모른다. 종각이 있고 대웅전이 있고, 또 그만그만하게 놓여있는 당우들. 불자들일수록 정도가 심하다. 절에 자주 가다 보니 느낌이 무뎌져서 단편적이다. 너무 친숙해서 소중함을 망각한 탓이다. 어떤 사물이건 첫 만남은 싱그럽다. 설렘과 감동이 있다. 감각이 모두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러나 살면서 우리는 아름답던 첫 느낌을 잃어버린다. 삶이 무료해지는 것은 첫 만남의 감동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여행작가 한선영의 ‘길이 고운 절집’은 첫 느낌, 첫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일깨워준다. 3년에 걸쳐 24곳의 절을 찾아 그 느낌들을 담았다. 책은 빛깔이 곱다. 절로 가는 숲길의 색과 향, 한적함, 절의 모습과 역사, 그곳에 깃들어 사는 스님과 대중들까지 수채화처럼 맑게 그려냈다.

절은 길로부터 시작된다. 책에 소개된 절들은 걸으며 명상에 잠기기에 좋은 절들이다. 김룡사, 개심사, 내소사, 각연사 등 어느 계절에 관계없이 조곤조곤 걸으면서 보면 더욱 고운 절들이다. 그는 사람에 지치고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절을 찾았다.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만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그가 절을 찾는 이유다.

책 속의 절은 눈으로 보는 절이 아니다. 새벽 숲의 쌉쌀한 공기,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빛과 투명하게 빛나는 이슬, 상큼한 풀의 향기와 계절에 따라 몸에 닿는 바람의 촉감 등 감각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그 느낌을 따라가다 보면 오랜 세월 정갈하고 맛있게 익은 절을 만날 수 있다.

절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무소유의 삶을 만나고 무심한 세월의 무게와 마주하며 한가롭게 흘러가는 현재를 만날 수 있다. 그가 절을 거닐며 틈틈이 들려주는 편액 속 잠언과 옛 스님과 시인의 시들은 속세에서 묻혀 온 티끌까지도 맑게 날려 보낸다. 특히 책 속의 사진은 화보집을 연상케 한다.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기술에 마음을 더해 절집의 고운 자태를 빼어나게 담아냈다. 그는 ‘길치’다. 그래서 갔던 길도 항상 새롭고 엉뚱한 길로도 간다. 그러나 그만큼 볼거리가 많아졌다고 밝히고 있다. 몇 번씩 갔던 절이면서도 마치 처음 간 것 같은 감동과 느낌을 살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길치’는 핸디캡이 아니라 나름 축복이다. 2만5000원.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1249호 / 2014년 6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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