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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과 의성 고운사

기자명 오강남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소풍 때문에 처음 가본 절...모든 절의 기준이 돼

<사진설명>고운사 숲속길.

내게 있어서 절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절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에 있는 고운사(孤雲寺)다. 유감스럽지만 이 절에서 수계를 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무슨 큰 깨침을 얻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가 어릴 때 살던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원호동에서 가까운 절로, 초등학교 때 원족(遠足)인지 소풍(逍風)인지를 가 내 일생 절이라고는 처음 본 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 때는 물론 이 절이 681년 신라의 의상(義湘)조사가 창건한 절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고운사(高雲寺)라 하였으나 그 후 신라의 고승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그의 호를 따 고운사(孤雲寺)라 하였다는 것도, 그 후 임진 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위해 식량을 모아두고, 부상당한 승병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하던 사찰이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선생님이나 주지 스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아무튼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사실들이다.

우리 동네에 있던 일직 국민학교에서 걸어 걸어, 고운사 주지 스님의 맏딸이었다는 우리 큰 형수의 친정 동네 뒤뜰(후평)을 거쳐, 절 입구에 도착했을 때 길 양 옆으로 우거진 소나무로 이루어진 긴 소나무 터널, 그 터널을 지나자 눈 앞에 나타난 단청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타향살이 몇 해던고등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니느라 그 이후 고운사에 가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 서울 부근에 있는 절들로 소풍을 갈 때도, 심지어 나중 캐나다에서 종교학을 하는 입장에서 현지 답사를 겸해 중국, 홍콩, 태국, 일본, 인도에 있는 여러 절들을 둘러 볼 때도, 언제나 연상작용처럼 함께 떠 오르는 절은 그 긴 소나무 터널을 지나서 가 보았던 고운사였다.

재작년에 가을 학기를 서울에서 가르쳤다. 수업이 없는 날 지방으로 여행을 하면서, 직지사, 동화사, 봉정사, 현정사, 청량사, 동학사 등등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작 고운사는 빠졌다. 그래서 판화 화가 이철수씨와 함께 안동 일직에 사는 동화작가 권정생씨를 만나러 간 김에 같이 고운사에 가보자고 했다. 셋이서 눈에 익은 뒷뜰을 지나 고운사로 갔다. 나로서는거의 50년 만에 가보는 길이다. 소나무가 변했는지 내 눈이 변했는지, 그 때 그렇게 인상 깊던 그 긴 소나무 터널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가을 오후 조용한 산사. 대웅전 옆 언덕에 있는 수도선원 고금당에 오르니 맑은 햇살을 받으며뒷 언덕을 가득 덮고 서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온다. 뜰을 거니는 어느 스님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다시 내려와 맑게 솟아나는 샘에서 목을 축였다.

이제 고운사는 이렇게 셋이서 찾았을 때 보았던 뒷산 소나무 숲, 어느 스님의 한가로운 모습, 우리에게 시원함을 선사해준 맑은 샘물과 함께 내 마음에 새롭게 남아 있다. 언제고 이 절에 가 고운 최치원 스님 같이 큰 깨달음을 위해 정진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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