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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채순 아산 무설회장

“불법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 바라밀 실천으로 회향해야죠”

▲ 이채순 무설회장은 “바라는 마음 버리고 주고자 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분명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벽 여명에 짙은 어둠이 시나브로 엷어질 즈음, 이채순(70·불일심) 보살은 향을 사르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머리를 숙인다. 정성껏 108배를 한 뒤 ‘천수경’ 독경이 시작된다. 밝아오는 아침햇살과 더불어 운율을 담은 다라니 독송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이어 ‘지장경’ 독송까지 마친 뒤 조용히 좌복에 가부좌를 튼다. 고요 속에서 어제를 참회하고 오늘을 감사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행복과 평안을 기원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수행은 하루 일과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이 보살이 일하는 아산 온양전통시장은 또 다른 수행도량이다.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 가득한 시장통 소음. 그 속에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고통을 덜어주는 관세음보살님처럼 그는 사람들의 애환과 사연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 기도와 축원으로 그들의 삶을 위로한다.
 
개인수행 안주했던 평범한 불자
주변인연들 모아 신행모임 결성
수행공덕 복지시설·불사로 회향
자비실천 공간 마련이 이생 목표
 
이런 그의 삶은 그의 법명과 닮아있다. 이 보살의 법명은 불일심(佛一心)이다. 법명처럼 온 마음으로 부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아산지역 재가불자들의 자발적 신행모임인 무설회(無說會)를 이끌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법명처럼 세상을 살기위해서다. 내려놓고 쉬어도 될 칠순의 나이지만 ‘설한 바 없이 설한다’는 무설(無說)의 뜻처럼 돈독한 신심과 굳은 원력으로 드러냄 없이 솔선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30여년 간 지켜봤지만, 바라밀을 실천하되 집착하지 않으며 상을 내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을 다해 실천한다. 무엇보다 개인에 머물지 않고 대중과 함께하며 수행의 공덕을 사회에 회향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모든 불제자가 본받아야 참 불자의 모습이다.” 이채순 보살에 대한 흥천사 주지 정념 스님의 평가다.
 
아산지역 또 다른 재가 신행모임 지장회 회장 박연우 포교사도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대단한 원력보살”이라며 “어렵고 아픈 이웃을 돕는 일과 불교에 관한 것이라면 결코 물러섬이 없는 아산지역 재가불자들의 큰 어른”이라고 소개했다.
 
 
이 보살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코흘리개 어린 시절이다. 어린 그는 어머니와 절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떠나는 나들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과자와 사탕 같은 주전부리를 할 수 있는 것이 어린 마음에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당시는 보릿고개가 일상이던 시절이었으니 과자와 사탕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절에 갈 눈치라도 보이면 미리 앞장서 길을 나섰다. 부처님과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비록 어린 마음으로 부처님과의 인연이 시작됐지만 추억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그의 마음속 불심도 세월과 더불어 조금씩 여물어갔다.
 
“그냥 평범한 불자였습니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좋은 스님 찾아가 법문 듣고, 불서 읽기를 좋아하는 아주 평범한 불자 말입니다. 그런 제가 예뻤는지 우리 절 노보살님들은 저를 ‘막내’라 부르며 성지순례나 기도가 있을 때면 꼭 챙겨줬어요. 저 역시 노보살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바쁜 시간 쪼개 꼭 따라다녔고요. 덕분에 설악산 봉정암, 팔공산 갓바위, 강화 보문사 등 기도도량으로 이름난 곳은 빠짐없이 순례했습니다. 특히 설악산 봉정암은 한겨울 눈길을 헤치며 찾아갈 만큼 철마다 방문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절. 그러나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이마에도 세월의 흔적이 굵은 선으로 도드라질 때 불현듯 지나 온 삶에 대한 진한 반성이 일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불자다운 삶인지 의문이 들었고 수차례 반문한 결과 회의적인 결론만이 도출됐다. 지난 삶은 그냥 ‘불교신자의 삶’이었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불제자의 삶’은 아니었다는 회한이 들었다.
 
“퍼뜩 ‘회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많은 법문과 불서를 통해 듣고 공부한 내용을 머리에만 담아두고 있었을 뿐 온전히 마음으로 실천하지 못했던 거죠.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한 이유가 마음속 욕심과 노여움 그리고 어리석음을 녹이기 위함인데 지금껏 대중에게 회향하지 못하고 손아귀에 움켜쥔 채 놓을 줄 몰랐던 겁니다. 부처님께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예전 노보살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반들과 함께 그 복밭을 함께 일구겠노라 서원했어요.”
 
서원은 세웠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수행의 공덕을 함께 나누고 회향할 도반을 찾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그의 가슴에 기도성지에서 종종 만났던 인연들이 알알이 맺혀 들어왔다. 함께 공부하고 좋은 곳 찾아가 기도도 하며 어려운 곳에 자비를 전하는 육바라밀 실천모임을 갖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의외로 많은 불자들이 그의 제안을 좋아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불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2010년 3월 아산지역 재가불자 20여명이 첫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첫 실천 활동으로 문경 봉암사로 대중공양을 갔다. 이를 계기로 무설회는 매월 한차례 모임을 갖고 장성 백화도량, 충주 진여원 등 복지시설과 설악산 봉정암, 아산 길상사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비의 손길을 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산 길상사의 경우 무설회 도반들이 3년여간 1개 1000원짜리 실단주를 10만개를 팔아 1억여원을 모연해 단청불사를 지원했다. 아산 길상사는 무설회의 지원으로 15년 만에 단청불사를 마무리하고 지난 7월29일 무설회를 초청해 회향법회를 열기도 했다. 이 같은 무설회 활동들이 지역 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자발적인 동참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무설회 도반은 100여명으로 모임이 결성된 지 5년 만에 아산지역 최대 재가불자 실천모임으로 발돋움했다.
 
“무설회 도반들은 대부분 평범한 가정주부들로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때문에 소임이 있다고 더 무거운 책임을 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쉼 없이 정진하고 이심전심으로 함께 회향하고자 모인 인연들이기에 모임을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보살은 70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변에는 함께 기도하고 회향하는 도반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맺어질 수 없는 인연들이기에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바라지 마세요. 바람은 곧 욕심입니다. 주고자 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분명 행복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닦고 낮추고 공부하는 겁니다. 준다는 것은 재물에만 해당되는 용어가 아닙니다. 마음은 아무리 주어도 닳아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재산입니다. 좋으면 좋은 데로 궂으면 궂은 데로 어느 것 하나 복밭 아닌 게 없습니다. 항상 감사하며 설사 기분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부처님께서 주신 업장소멸의 기회로 여긴다면 항상 행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것이 70평생 살며 체득한 행복의 길입니다.”
 
이 보살의 꿈은 아산 시내에 나눔을 실천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누구나 찾아와 몸을 기대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함께 나누고 회향하기를 발원한다. 아직은 꿈에 불과하지만 무설회 설립 당시 세운 서원이고 도반들과의 약속이기에 이생에 반드시 회향해야 할 목표다.
 
“진실하게 열심히 정진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공간은 불은에 보답하는 장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혹여 불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불연을 맺어준 어머니나, 발심의 계기를 심어준 노보살님들의 은혜는 갚을 수 있지 아닐까요.”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라고 했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하고,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이 보살의 삶은 지금도 향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는 그 향기를 더욱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 향기를 따라 결국 부처님과 만날 수 있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서원하는 것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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