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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화엄종주 경운 스님 서간문 첫 공개

  • 교학
  • 입력 2014.11.06 14:57
  • 수정 2014.11.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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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한국불교문화…’서 번역소개
손제자 종현 스님에 보낸 글
화엄·원각 등 경학 사상과
애제자 잃은 비애감 드러나
석전·진응 스님 축시도 포함

▲ 근대 대강백인 경운 스님.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강백이자 화엄종주로 추앙받던 경운원기(擎雲元奇, 1858~1936) 스님의 새로운 서간문과 시가 공개됐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관음종이 발간한 ‘한국불교문화의 전승과 실제’(도서출판 범성)에서 경운 스님이 손제자인 철운 조종현(鐵雲宗玄, 1906~1989) 스님에게 보낸 편지 4점과 석전 박한영(1870~1948) 및 혜찬 진진응(1873~1941) 스님에게 보낸 시 2점을 번역 소개했다.

경운 스님은 일제강점기 일본 조동종과 결탁한 원종에 맞서 임제종을 설립해 한국불교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대강백이었다. 경운 스님과 교류하며 직접 선암사를 찾았던 선비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늙어갈수록 배움이 더욱 근실해지는 분이다. (경운 스님이 초록한 ‘화엄경’을 보니) 더할 수 없이 정밀하고 훌륭해 보는 사람마다 귀신의 솜씨인가 의심한다. 아아, 경전을 높인다고 일컫는 세상의 유자(儒者) 중에 찾아도 그 성심과 원력이 이를 따를 자가 있겠는가”라고 극찬했다. 경운 스님 비문을 쓴 위당 정인보(1893~1950)도 “무릇 강학을 하는 사람치고 경운대사의 지도를 거치지 않은 자는 거의 한 사람도 없다”고 평가했으며, 석전 스님도 “계율이 엄정하고 조계의 가풍을 널리 펼치면서 해동의 마지막 불법을 이끄셨다”고 찬탄했다.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경허 스님이 선(禪)의 종장이었다면 경운 스님은 교(敎)의 종장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경운 스님은 그동안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스님이 생전에 주로 머물렀던 선암사가 1950~60년대 종단 분규 끝에 사실상 태고종의 차지가 됐기 때문이다. 조계종으로서는 선암사에 상주했던 경운 스님을 주목할 이유가 없었고, 태고종 선암사 역시 스님을 조명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2013년 6월, 경운원기선사문도회가 개최한 경운 스님 조명 세미나가 한 차례 있었을 뿐이다.

▲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경허 스님이 선(禪)의 종장이었다면 경운 스님은 교(敎)의 종장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사진은 경운 스님이 손제자인 종현 스님에게 보낸 편지.

신규탁 교수가 이번에 공개한 서간문은 경운 스님의 진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전체 6점 중 4점은 1926~1928년에 종현 스님에게 보낸 편지다. 석전 스님이 자신은 그의 발자국도 따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뛰어났던 제자 금봉(錦峯, 1869~1916) 스님을 먼저 떠나보낸 경운 스님의 기대는 손제자인 종현 스님에게로 향했다. 종현 스님은 전남 고흥이 고향으로 경운 스님의 상좌인 보광 스님에게 출가했으며, 전통 교학은 물론 현대 불교학에도 대단히 밝았던 학승이다. 또 스님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할 정도로 글 솜씨가 뛰어났다.

경운 스님의 편지에서는 종현 스님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금정산 하나가 오랫동안 눈 속에 있었는데 그대도 내 눈 속에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니, 어찌 일찍이 잊을 수 있겠느냐”로 시작되는 편지에서 경운 스님은 종현 스님이 경전을 보는 태도를 경책하는가 하면 ‘화엄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 특히 경운 스님의 경학 사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원각경’ ‘능엄경’ ‘화엄경’에 대한 견해가 드러나 있으며, 당시 강원의 교과과정에 주자의 ‘사서집주’가 포함돼 있었다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또 금봉에 이어 애제자 금성(錦城)까지 병으로 세연을 마치자 “이 몸이 마지막에 외롭게 남아, 부끄러워 말을 할 수가 없구나. 슬픔과 탄식이 밤마다 터져 나오고 찬 등불이 깜빡이는 가운데 슬픔이 갈수록 새로워져 같이 가지 못한 게 한스럽다”는 내용도 있다.

이밖에 경운 스님이 1933년 석전 스님에게 보낸 수연시(壽醼詩)와 진응 스님의 회갑을 기념해 보낸 축시도 이번에 처음 공개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규탁 교수는 “경운 스님은 당대 최고의 화엄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불교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몇몇 서간문을 정서해 번역 소개한 것도 실은 강백의 경학 사상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보자는 뜻에서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후기 백파 긍선 스님의 학문이 석전 스님을 거쳐 운허 스님에게로 이어졌던 것과는 달리 경운 스님의 교학 전통은 종현 스님에게로 이어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후계자를 길러내지 못하고 단절되고 말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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