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처님 대신해 중생제도 하겠노라 서원하는 기도하라

[명법문 명강의]조계종립 태고선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 적명 스님은 “남을 위한 기도 익을수록 부처님 마음 닮아간다”고 강조했다.

부처님 앞에 가셔서 무엇이든 소원을 비십시오. 정성스럽게 하는 기도는 불자라면 누구나 하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하는 기도를 급수로 말하면 초급이라고 합니다. 초등학생 수준 기도라고 말하지요. 중급도 있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기도가 중급이며 중학생이 하는 기도일까요. 중학생 수준 기도를 하시려거든 같은 소원을 계속해서 부처님께 빌면 안 됩니다.

자기 소원만 빈다면 초급 기도
숫자 정한 만큼하고 놓지 않으면
이미 아는 부처님에 반복할 뿐

자기 것 내려놓으면 맘에 여유
그 공간에 중생 들어와야 중급
모든 존재 고통 소멸 발원해야
기도 익으면 부처님 마음 닮아

보통 3일, 1주일, 100일 기도를 하면서 하루 네 차례 예불에 참석하는 사분정근으로 적어도 1~2시간 기도합니다. 간절함이 있으면 자기 소원 거듭해서 부처님께 빌게 됩니다. 같은 소리를 빌고 빕니다. 3일이고 1주일이고 100일이고 또 빌고 빕니다. 잘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왜냐면, 여러분도 상식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말하기 전에 이미 무슨 소원 있는지 다 아시는 분이지요. 기도하려고 방 밖으로 나서기 전에, 마당으로 발 내디디기 전에 부처님은 법당에 와서 무슨 소원 빌려고 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아는 분에게 같은 소리를 거듭거듭 하는 셈이지요. 보통사람도 같은 소리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들으면 짜증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말 안 해도 아는 분에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일은 부처님을 못 믿는 소치입니다.

10가지 소원 있으면 다 빌되 너무 같은 소원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그럼 어떻게 하느냐. 두 번 세 번만 하면 충분한데요. 그래도 아쉬울 것 같으니 일곱 번만 하는 걸로 하시지요. 기도를 하기 전 마음도 중요합니다. 부처님 앞에 서서 합장하고 기도하기 전 다짐을 열 두 번은 해놔야 자기 소원 일곱 번만 할 수 있습니다. 뻔히 알고 있는 분에게 가서, 이미 도와주려고 준비 중인 분에게 가서 거듭 기도하는 일은 불경스럽고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십시오. 반드시 일곱 번 이상 같은 소원 빌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다짐한 뒤 법당에 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일곱 번만 빌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같은 소원을 일곱 번 비는데 1분도 안 걸립니다. 10가지 소원도 10분이면 충분합니다. 빌고 나서 어떤 마음이 돼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 내 기도 충분히 다했다. 부처님께 드릴 만큼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들을 만큼 다 들으셨다. 대자대비한 부처님이시니 중생을 도와주시고 천개 눈으로 살피시고 천개 손을 준비하셔서 모든 이익을 주신다. 모두 갖춘 분이시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조그마한 인연이라도 있고 도와 주실만 하시면 저를 도와 소원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충분히 말씀 드렸고 충분히 도와주실 분이니 나는 충분히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야 자기 기도는 끝납니다.

기도가 이렇게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에 공간이 생깁니다.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지요. 자기 생각과 기도에만 매달리면 우리 마음에 다른 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 집착에서 좀 벗어나야만 합니다. ‘내 기도 다했다’라고 딱 끊으면 집착할 수도 있는 자기 기도가 끝납니다. 이제야 비로소 여유 생겨 남이 들어옵니다. 다른 사람 얼굴이 떠오르지요. 예컨대 오늘 아침 길을 나서다 골목에서 마주친 이웃이 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기도 중 이런 생각이 듭니다.

‘수미네는 암만 봐도 참 안됐어. 본래 가난한 집인데다가 남편이 다쳐서 병원 신세를 진다지? 수미씨가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며 고생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얼굴이 항상 울상인데 참 안됐다.’

그러면 자기 기도 다했으니까 불쌍한 수미를 위해 기도하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새해에는 수미에게 좋은 일 생겨 웃고 다닐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도 일곱 번만 하고 그치십시오. 그러면 또 공간이 생기지요. 이 사람 저 사람 떠오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그렇게 하면서 점차 마음이 넓어지면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가 아는 사람만 고통 받을까? 사바세계에서 괴롭지 않은 중생이 어디 있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까지도, 세상에서 고통 받는 모든 존재를 위해 부처님께 기도 드리겠다.’

마음 크게 열고 아는 사람에서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모든 중생의 고통 소멸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겁니다. 이 기도가 익을수록 우리 마음은 부처님 마음을 닮아갑니다. 일체중생이 고해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소원하고 고통 소멸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는 거지요. 이런 기도를 잘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중학생 수준의 기도가 됐다고 말합니다.

이제 고등학생 수준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어떻게 기도할까요. 향 피우고 정성스럽게 합장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께 빌 소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빌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어떤 것도 부탁할 일이 없도록, 빌 일이 없도록 저를 지켜주십시오.’

기도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사실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정말 믿을 마음만 되면 이 기도는 저절로 가능합니다. 왜 그럴까요. 부처님은 세상은 인연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전생에 만든 내 작품이 현재에 닿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것 갖고 싶지만 내 작품 아니면 내게 오지 않습니다. 나쁜 것 싫은 것 피하고 싶지만 내 작품이면 내게 옵니다.

부처님도 피하지 못하는 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죽은 사람 살리지 못합니다. 죽은 아이 살려달라고 빌던 끼사 고따미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부처님은 끼사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을에서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그 누구도 죽은 적이 없는 집으로부터 겨자씨를 얻어 온다면 네 너에게 그 약을 알려주마.” 그러나 끼사 고따미는 겨자씨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 집은 없었기 때문이지요.

두 번째, 인연 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합니다. 친인척 관계였던 데와닷타를 아시지요? 스승가의 일원이며 출가수행자였음에도 승가를 분열시키려했고, 부처님을 살해하려고도 했습니다. 결국 모두 실패했습니다. 부처님은 데와닷타도 제도하지 못하셨습니다.

세 번째가 바로 부처님도 당신이 직접 지은 확실한 업은 피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등창을 앓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설화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수행자였을 당시 부처님은 누더기를 입고 다니셨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앉아 누더기 깁는다고 바느질 하다 모르게 이의 등을 꽉 찔렀다고 합니다. 그 과보를 최후로 받아 등창을 앓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직접 지은 업은 피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업은 부처님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믿는다면, 사실 빌게 없습니다. 암만 빌어도 내 작품은 내게 오고 암만 욕심 내봐도 내 작품 아닌 것은 오지 않게 돼있지요. 욕심 낼 일도 없습니다. 내 작품만 오는 거라 말씀하시는데 좋은 것이면 내가 했던 안 했던 간에 다 갖고 싶어서 이것도 오게 해달라, 저것도 갖게 해달라 부처님에게 하는 기도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부처님을 못 믿는 소치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게 잘못됐구나. 이러면 안 되는구나’하면 부처님께 빌게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빌 게 없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마음 확 열고 이 세상 내가 지은 바대로 오는 세상이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받아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이지요. 어떤 어려움과 괴로움이라도 내 작품이라며 다 받아들이겠노라 하면 오히려 고통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피하려고 할 때마다 더 놀라고 더 심하게 아픔을 겪게 마련입니다. 부처님 믿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마음 열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현상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숙명론이 아닙니다. 다르지요. 현재라는 우리에게 던져진 이 세계는 과거 내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주어진 일과 현실과 현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감수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합니다. 그 때 그 때 스스로의 선택 여하에 따라 갈립니다. 내가 미래를 위해 어떻게 성실하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옆 사람 도우려고 하고 더 좋은 마음 내려는 그 마음을 더 충실하게 가지려고 하십시오. 좋은 내일 위해 열심히 살겠다는 자세가 부처님 가르침 믿고 따르는 자들의 생활태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일상 속 수행을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 결코 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말 결코 하지 마시라. 그리고 해야 될 일만 하시고 해야 될 말만 하십시오. 마음 절제는 아주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그렇게 살아가시라.

마지막으로 대학생 수준 기도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0년 넘게 중생의 고통 해탈을 위해 설법하셨습니다. 이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부처님, 이제 중생 제도 그만두십시오. 제가 당신을 대신하겠습니다. 깨달음 성취해 중생을 제도하겠습니다.”

그렇게 서원하십시오. 이게 기도입니다.

정리=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

이 법문은 1월28일 조계종립 태고선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이 ‘기도’를 주제로 의왕 청계사 향기법문 108선원순례단에게 설법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적명 스님은 고등학교 졸업 뒤 ‘천진도인’이라 불리던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직후부터 전국 제방선원에서 50여년간 묵묵히 참선수행의 길을 걸어왔다. 천성산에서 12년 토굴 정진 뒤 은해사 기기암서 주석하다 2009년부터 봉암사에서 수좌로 수행 중이다.


[1284호 / 2015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