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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학자 박수검은 왜 불교로 개종했나

  • 교학
  • 입력 2015.04.10 21:38
  • 수정 2015.04.22 04:29
  • 댓글 1

김종수 세명대 외래교수
‘선문화연구’ 17집서 조명
송시열 등 스승으로 공부
20세에 진사 합격한 천재

부모·아내·자식 등과 사별
잇따른 불운에 뒤늦게 급제

불교교학에 대한 연찬 시도
참선은 물론 정토에도 관심
‘만곡 우바새’ 자처하며 활동
조선 지성계 이례적인 사건

▲ 김종수 세명대 교수
성리학적 유교 질서가 지배하던 17세기 조선에서 불교는 이단이었다. 일반 서민이나 여인들에게 허용될 수는 있어도 사대부들이 불교를 신봉하는 것은 ‘고립’과 ‘지탄’으로 이어짐을 의미했다. 이런 가운데 노론 계열의 관인이자 사상가였던 유학자가 온갖 불행한 사건들을 겪으며 스스로 재가불자를 자처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끈다.

김종수 세명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는 최근 ‘선문화연구’ 제17집에 게재한 ‘전근대 시기 유학자 불교로의 전향 사례’라는 논문을 통해 임호(林湖) 박수검(朴守儉, 1629~1698)이라는 인물을 조명했다. 기존 유학이 제시해주지 못한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불교에서 해결하려 했던 노론 지성계 내부의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논문에 따르면 박수검은 충북 제천에 연고를 둔 노론 계열의 유학자였다. 고려 왕건의 후예이자 전통적으로 학문을 숭상해온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처음 독서를 시작해 조윤석(1606~1654), 이영선(1588~?), 이준남(1566~?), 송시열(1607~1689) 등 대학자를 스승으로 학문을 익혔다.

16살 때 제반 경서들을 꿰뚫고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한 박수검이 진사초시에 합격한 것은 20살 때였다. 2년 뒤에는 승보시(陞補試)에서 수석을 차지하면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의 이름이 서울에까지 퍼지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을 사모해 벗 삼기를 원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전할 정도였다. 당시 유명한 문장가인 이지백은 “비단 과제(科第)에 조기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후일에 반드시 문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런 박수검에게 예기지 못한 불운이 덮친 것은 20대 중반부터다. 그가 26살 되던 해 모친상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몇 해 뒤 첫 아내와 사별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또 숙부와 숙모, 부친이 유명을 달리하고 누이동생마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박수검 스스로 ‘비참한 상환(喪患)’이라고 절규했듯 고난이 끊이질 않았다.

▲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그 과정에서 박수검의 낙방도 거듭됐다. 34살 때 사마시에 합격한 그는 3년간 부친의 시묘살이를 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과거시험을 병행했다. 그 결과 3년상을 마친 뒤인 44살이 돼서야 가까스로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다. 진사초시에 합격한 지 무려 24년만이었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관직에 진출한 45살에는 두 번째 아내가 타계한데 이어 6살의 외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그는 스승 송시열에게 극한에 이른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앙화가 몰아침이 어찌 이리도 가혹하게 지속되는 것일까요? 인생이 이 지경에 처하고 보니, 하늘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품이 강직했던 박수검에게 탄핵과 유배도 잇따랐다. 그는 쉴 새 없이 찾아든 불행과 그로 인한 깊은 좌절감을 곱씹으며 삶에 대한 크나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박수검은 노장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다시 불교에 대한 연찬으로까지 이어졌다.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 ‘중용석의(中庸釋義)’ 등을 저술한 유학자가 남자 재가불자를 지칭하는 ‘우바새(優婆塞)’로 자처하게 된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박수검의 문집에는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등장한다. 산사에서 속세의 번뇌를 여읜 스님들을 향한 동경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헛되이 보낸 50여년’을 후회하며 ‘꽃비가 삼천 진세계(眞世界)를 적시는 날, 종당에 관직을 벗어던지고 참선에나 몰입할까나?’라는 말로써 출가를 암시하는 어투의 비장한 의사를 내비추기도 했다. 또 유식학과 반야공관에 대한 이해가 엿보이는가 하면 지속적인 참선을 통해 선의 깊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는 구절들도 다수 나타난다. 뿐만 아니다. ‘미혹된 속진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연화정계’를 희구하는 등 정토신앙에 대한 깊은 관심도 나타나고 있다. 또 각원·경희·민장·경수 등 법력과 수행력을 두루 갖춘 스님들과 교분을 나누는 등 ‘만곡 우바새’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확인시켜주는 사례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김 교수는 “엄격한 도통론을 견지했던 박수검이 ‘만곡 우바새’로 극적인 전향을 시도함으로써 지친 그의 영혼에 구원의 메시지를 제공받았다”며 “불교에로의 전향을 시도했던 17세기 중·후반 무렵의 노론계 정주(程朱)학자인 박수검의 사례를 통해 종교학적 맥락의 전향이나 개종의 문제란 실존적인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는 극히 보편적인 사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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