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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화 1000년 보존의 비밀

기자명 김형규

쪽물과 광물성 염료로 탈색-부패 방지

들기름-인두 사용한 독특한 연마기술도 한 몫




한국 미술사의 정수, 동양 채색화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고려불화(高麗佛畵)는 한국 회화사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걸작이다. 고려의 불자들은 안료의 혼합을 피해 색의 선명함을 극대화하고, 금니를 사용해 불화에 생명력을 넣어 고려불화라는 독창적인 미술세계를 열어 보였다. 특히 화려함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역설적이게도 경건함으로 반전시키는 절묘한 고려불화의 세계는 그 자체로 이미 세간의 예술을 뛰어넘어 종교적인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고려불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회화적인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숯과 소금, 창문의 크기를 조절해 완벽한 항온·항습의 기적을 만들어 낸 해인사 장경판전이나 한치의 오차를 인정하지 않는 완벽한 조화미의 석굴암에서처럼 고려불화에는 아름다움을 후대에 그대로 전하고픈 조상들의 과학 정신이 지문처럼 남아 있다.

700∼800년의 긴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탈색되지 않고 영롱한 색상을 간직한 고려불화. 시공을 초월해 오늘날 우리가 고려불화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불화 속에 담긴 과학정신의 덕분이다.

고려불화의 1000년 보존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염색이다. 고려사람들은 비취빛 쪽빛(감색)을 좋아해, 종이에 쪽물을 들여, 금과 은으로 사경 한 ‘감지금(은)니사경’을 펴냈다. 인류가 펴낸 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걸작이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은 이 쪽물을 비단 종이에만 사용하지 않고 불화를 그리기 위한 천에도 사용했다. 쪽빛은 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방충 방습 효과와 함께 천의 장력을 향상시켜 쉽게 썩거나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고려불화를 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쪽물 염색에서 불화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천에 고려사람들은 광물질로 구성된 염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중국과 중앙 아시아에서 돌에서 추출한 광물질 염료를 수입해 사용했다. 햇볕을 쪼여도 돌은 탈색이 되지 않듯이, 광물질로 구성된 염료는 세월이 지나도 상하거나 변색되지 않고 천연의 색상을 유지하는 뛰어난 재료다. 그러나 고려사람들은 수입한 염료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염료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됐는데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 고려불화의 대표적인 채색법인 배채법(背彩法)이다. 염료를 천의 뒷면에 두껍게 발라 앞으로 색이 배어 나오게 하는 채색방법으로, 천에 묻은 염료가 외부 물질에 의해 벗겨지거나, 떨어지는 것을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독창적인 방법이다.

간혹 일본이나 중국에도 배채법을 사용한 경우가 발견되고 있기는 하지만, 배채법은 고려불화를 구별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한 독창적인 채색방법이다. 물론 염료와 함께 이겨 사용된 아교의 성분도 불화의 부식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 고려불화의 완성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연마 과정이다. 연마에는 보통 인두와 법유(들기름)이 사용됐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연마 과정은 방수와 방습, 방충을 효과를 내는 최상의 방법으로 고려불화의 주존불의 얼굴이나 손과 발이 무엇으로 연마한 듯한 압축감과 미끈함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연마 과정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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