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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 앉아 있다고 사회참여 않는 것 아니다”

  • 교학
  • 입력 2015.04.18 01:26
  • 수정 2015.04.18 03:19
  • 댓글 8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불교평론 4월 열린논단서
새로운 형태 ‘사회참여’ 제기

오대산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암 스님도 사회참여 인물

옳고 그름 방식서 벗어나
자신의 성찰로 이어져야

“오늘날 불교계는 사회참여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불교적인 사회참여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황처럼 하는 것만이 사회참여가 아닙니다. 기독교나 가톨릭이 숟가락을 올려놓는다고 해서 우리도 숟가락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젓가락이나 포크를 내밀어야 합니다. 그럴 때 특정 가치관에 매몰되지 않고 균형이 잡힐 수 있으며, 현실사회의 요구나 다양한 고통에 보다 효과적으로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간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4월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한국불교, 정말 괜찮은가’를 주제로 열린논단을 개최했다. 열린논단 60회를 기념한 마지막 기획논단 주제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 정말 잘하고 있는가’였다.

발제를 맡은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참여방식은 어떠해야 하며, 오늘날 한국사회가 불교에 기대하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를 제시했다.

▲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불교평론 등이 개최한 열린포럼에서 “세상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없고 다만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가 있을 뿐”이라며 “지금 저지른 악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깊은 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먼저 모든 종교가 동일한 방식으로 사회 참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개인적인 영성과 사회적 정의를 구별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것이며, 요즘 불교계에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애써 구별하고 개인의 일과 사회의 문제를 나누는 것도 기독교 전통에 가깝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나눌 수 없는 구체적인 사례로 근대불교사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사회참여를 했다고 여겨지는 만해 스님과 오대산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내딛지 않을 정도로 현실문제에 무관심했던 한암 스님을 들었다. 조 교수는 이들이 살아가야 했던 때를 ‘궁핍한 시대’로 규정했다. 이는 현실이 진실이 될 수 없는 시대, 현실과 타협하는 길이 아니라면 현실을 개혁하든가 현실을 부정하는 일밖에 없는 불운한 시대를 일컫는다.

조 교수에 따르면 궁핍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만해에게 출가를 기반으로 하는 불교의 근본적인 보수성은 한 개인이 쉽게 간과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만해는 자신의 시대를 전통으로부터 단절하고자 했다. 그리고 불교 내부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진화론과 같은 세속의 이론과 논리로 불교유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조 교수에게 한암 스님이 살아갔던 때도 ‘궁핍한 시대’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만해 스님과 달리 한암 스님의 글에는 구체적으로 현실을 언급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암의 글은 만해와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의 역사가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같은 ‘현실역사의 배제’에 대해 이는 의도적이며 한암 자신의 선택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만해가 현실개혁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고자 했다면 한암은 철저한 외면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것도 동일한 사회참여의 형태로 봐야 한다는 놀라운 견해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참석자 대부분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서울대 강사 명법 스님은 “성철 스님처럼 불교의 전통을 올바르게 만들어가는 것도 불교의 사회참여”라며 “동아시아에서 선불교는 유교 및 도교와 견제·교유하면서 사회를 건강하도록 했던 만큼 선을 비사회참여적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얘기들도 다수 나왔다. 조성택 교수는 세월호와 관련된 특정인물에 대해 극도로 영웅시하거나 악마화하는 현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일반 시민사회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불교인이라면 자신의 내면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타인의 잘못을 나의 문제로 바라보면 본질이 흐려지고, 사회 부정의를 개선시키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라인홀드 리버의 말처럼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리버의 이론을 비판한 서구학자가 “기독교의 가장 큰 한계는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며, 불교의 가장 큰 장점은 선악을 구분하되 분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했다. 이어 그는 “세상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없고 다만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가 있을 뿐”이라며 “지금 저지른 악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깊은 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정의는 단일하지 않으며, 복수의 정의가 가능하다. 나의 옮음이 절대적일 수 없으며 저들의 옳음이 공존할 수 있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진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이러한 화쟁의 관점이 우리사회의 갈등을 풀어가는 불교적인 사회참여의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291호 / 2015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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