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엄사 효대(孝臺)

기자명 김형규
4사자 석탑 - 석등 불교 효사상 응축

연기조사, 부친 위한 「화엄경사경발원문」 지어



“사람이 백년 가운데 오른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대소변을 보게 하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옷과 온갖 음식으로 공양하더라도 조그만한 은혜도 갚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을 들은 비구들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부모에게 공양하여야 하며, 만일 공양하지 않으면 무거운 죄를 짓게 된다”

율장인 오분율(五分律)에 나온 효에 관한 내용이다. 불교는 출세간적인 종교로 효와 거리가 있는 가르침으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불교가 얼마나 인간적인 가르침이며, 효에 대한 내용이 가득한 사상인가 하는 것은 경전들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유행경 대반열반경 증일아함경 등 초기경전에서 대승경전과 율장에 이르기까지 효와 관한 내용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도 불교는 조선 500년 동안 불효(不孝)한 가르침이라는 유학자들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아왔고, 일정부분 불자들 스스로 그렇게 믿어 온 것이 사실이다. 또 실제로 수행을 위해 부모와 홀연히 인연을 끊은 스님들의 무용담이 자랑스런 이야기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깨달음을 위해 부모는 극복해야 할 대상일까?

전남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뒤편 언덕에는 ‘효대(孝臺)’라는 곳은 불교의 효 사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 곳에는 통일신라 시대 조성된 국보 35호인 4사자3층 석탑과 석등이 있는데 모양이 어느 사찰의 탑이나 석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 4마리 사자가 둘러쌓인 석탑 안에는 스님이 합장한 채 서 있고, 그 앞에 석등에는 탑 안의 비구니 스님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공양을 올리는 상이 조성돼 있다. 그 모양이 너무나 극진해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조선조 유학자 남효온(1454∼1492)은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란 그의 저술에서 탑의 네 모서리 안에 있는 사람은 연기의 어머니로 비구니가 된 ‘자다’이며, 석등에서 공양물을 받치고 있는 인물은 ‘연기 조사’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효대(孝臺)의 석탑과 석등은 단순한 불교적인 상징물이 아닌 연기 조사의 어머니에 대한 뜨거운 효심이 담겨 있는 상징물이라는 것. 효대(孝臺)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연기 조사의 효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79년 학계에 보고된 신라화엄경사경발문(新羅華嚴經寫經跋文)에서 연기 조사는 화엄경사경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첫 번째는 은혜로우신 아버님의 바람을 위하여 이루었으며, 두 번째는 법계(法界)의 일체중생들이 모두 불도를 완성하게 하고자 하시어 이룬 경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연기 조사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화엄사에 효대(孝臺)를,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는 「신라화엄경사경발문(新羅華嚴經寫經跋文)」를 지었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가 크게 꽃을 피던 시기였다. 굳이 불교의 불효(不孝)의 가르침이라는 비난할 유생들도 없건만, 연기 스님은 효대와 사경을 통해 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성을 드러냈다. 효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맺은 지중한 인연을 아름답게 회향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효대와 화엄경사경발원문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