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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물 무서운 줄 알아라

기자명 철우 스님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내 어렸을 적 어느 큰스님의 생신날이었다. 시골 사는 큰스님의 동생이 생신이라고 농사지은 것을 가지고 왔다. 백발이 된 큰스님의 동생은 삼배를 올리는 것은 물론 부처님 앞에서도 예배 올리는 모습이 예사 신도와는 달랐다.

형님 스님께 누가 되지 않으려고 농사짓는 틈틈이 예절도 익히고 기본교리도 배운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도 집에 있는 우리 형님이나 아버님이 나에게 오시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궁금했을 정도였다. 이튿날 아침 큰스님의 생신 공양은 보통날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르다면 미역국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공양을 마친 조금 뒤에 큰스님의 동생은 하직 인사를 하고 나가는데, 원주스님이 그 분께 노자를 드리는 모습을 큰스님이 보셨다.

그 분이 간 뒤 큰스님 방에서는 원주스님이 꾸중듣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나의 동생이라도 시주 돈을 함부로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경책의 말씀이었다.그 때는 그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시주(施主)가 대중 스님네에게 준 돈이나 물건을 상주물(常住物)이라 한다. 율장에서는 ‘상주물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대중이 쓰는 절, 창고, 집, 도구, 꽃, 나무, 숲, 밭, 정원, 등이다. 있는 곳에 두고 사용하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며, 다만 받아쓰되 나누거나 팔아서는 안 된다. 둘째는 대중들과 함께 항상 먹는 먹거리이다. 셋째는 대중이 시주 물을 받아 현재에 같이 있는 대중에게 주는 것이다. 넷째는 대중 가운데에 누가 죽으면 오중(五衆 : 비구, 비구니, 식차마나니, 사미, 사미니)이 가벼운 물건은 갈마하여 현재에 살고 있는 대중이 나눈다. 다만 갈마하지 않았거나, 갈마했는데, 훔친 사람이 있으면 대중으로부터 죄를 얻는다.

위의 두 가지는 각각 상주물을 훔치거나 손해나게 하면, 훔친 죄가 성립되고, 대중에 쌀 한 톨, 실 하나라도 모두 단월(신도)의 깨끗한 마음으로 온 것이기에,청정하지 않은 마음으로 가지면 그 죄가 더욱 중한 것이다.’ 했다.

철산경선사가 이르기를, ‘무릇 상주물인 차 한 잔, 쌀 한 톨, 1푼 1리가 모두 시주의 복덕을 구하기 위해서 일부러 행한 보시이니, 마땅히 삼보에 공양한 것이요. 어찌 사사로이 쓰겠는가? 죄와 복의 인과가 확연하여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과 같음이니라.’ 했다.

자수심선사가 이르기를, ‘상주물의 조그마한 것도 가히 훔치지 말라. 날로 갚아야 할 과보가 만 배로 늘어나서 갚기 어렵고 두렵다. 돼지머리, 당나귀 다리의 과보가 분명히 나타나서 지금까지 절 땅 쓸기를 쉬지 못한다.’ 했다.

절밥을 먹을 만치 먹고 나서 이제야 이와 같은 뜻을 알고 나니, 불호령을 내리시던 그 때 큰스님의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상주물을 아끼고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성인과 성인이 고구정녕하게 하신 말씀이다.


철우 스님/파계사 영산율원장
vinayabul@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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