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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삼천배

기자명 김택근

▲ 성철 스님의 ‘삼천배 시키기’는 숱한 이야기를 남겼고, 이제는 불교의 유산이 되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중이 신도를 대하는 데 사람은 안 보고 돈과 지위만 본단 말입니다. 안 그래요? 그래서 난 이 대문을 들어올 때는 돈 보따리와 계급장은 소용없으니 일주문 밖에 걸어놓고 알몸만 들어오라고 하지. 사람만 들어오라 이겁니다. 그리고 들어오면 ‘내가 뭐 잘났다고 당신을 먼저 만날 수 있나?’ 하지요. 부처님을 찾아왔다면 부처님부터 뵈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을 정말로 뵈려면 절을 삼천 번은 해야지요.”

절은 실상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어떤 상(像)이나 그림이나 조각에 절을 해도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비록 흙덩어리나 썩은 나무에 절을 했더라도 성심을 다했다면 그 간절한 마음이 자신을 정화시킨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나로 인해 그대들이 공경스럽게 되는 것이다.[因我禮汝]” (남회근 ‘금강경 강의’)

부처에게 절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지은 삼업(三業)의 몸뚱이를 아래로 내던짐은 그 자체로 참회이다. 욕심과 분노를 앞세우고 세상을 활보하던 사람이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은 아만(我慢)의 숨을 죽임이다. 그래서 절하는 사람에게는 평화가 찾아온다.

성철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삼천배를 시켰다. 본격적으로 삼천배를 시킨 것은 천제굴에 있을 때부터였다. 성철에게 화두를 받기 위해 수백 리를 걸어 천제굴을 찾아온 사미, 사미니들은 삼천배부터 해야 했다. 성전암에서도, 김룡사에서도 ‘삼천배 후 화두 내리기’는 계속됐다. 성철의 ‘삼천배 시키기’는 숱한 이야기를 남겼고, 그 삼천배는 이제 불교의 유산이 되었으며, 그 유산은 지금도 일화들을 낳고 있다. 남겨진 이야기 중 하나를 펼쳐보자.

1965년 9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회원들이 김룡사를 찾아왔을 때였다. 그들은 전국의 사찰을 돌며 큰스님들의 법문을 듣는, 이른바 구도 행각 중이었다. 성철은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학생들은 다른 절에서 했던 것처럼 대뜸 성철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성철은 수업료를 내라고 했다. 절에서 수업료를 받는다하니 학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 성철이 껄껄 웃으며 절집의 수업료는 속가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 수업료라는 것이 대웅전 부처님께 삼천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날 구도의 여정에 모두 지쳐있었고, 삼천배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삼천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성철이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 나가거라. 너희들은 여기서 물 한 모금 얻어먹을 자격도 없는 놈들이다.”

성철의 벼락같은 외침에 학생들은 그만 얼어붙어버렸다. 성철은 그런 학생들이 안 돼보였는지 다시 목소리에 힘을 뺐다. 그리고 어느 병든 비구니가 삼천배를 해서 다시 살아난 사연을 학생들에게 얘기했다.
폐병 말기로 죽음을 기다리는 비구니가 있었다. 비구니는 죽기 전에 성철 스님의 법문을 한번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어느 날 비구니는 성철이 머물고 있는 김룡사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겨우 절 근처에서 내렸지만 한 발을 떼기에도 너무 힘이 들었다. 성한 사람이라면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비구니에게는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한걸음 걷고 한참을 쉬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걸어서 일주문을 넘어갔다. 비구니는 겨우 성철의 방 앞에 이르러서 한 말씀을 청했다. 성철은 병색이 완연한 비구니를 쳐다보더니 이내 심드렁하게 얘기했다.

“먼저 삼천배를 하고 오거라.”

비구니는 원망을 섞어 성철을 바라봤다.

“할 수만 있으면 왜 안하겠습니까?”

그러자 성철이 고함을 질렀다.

“아니 그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시키고 있음이더냐?”

할 수 없이 비구니는 삼천배를 시작했다. 걷기도 힘든 몸이니 절은 더디고 더뎠다. 김룡사 대중은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몇 번의 해가 뜨고 졌다. 비구니는 어렵게 어렵게 삼천배를 마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비구니의 얼굴에 희미하게나마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웃음기를 머금었다. 환희심이 생긴 비구니는 다시 삼천배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삼천배를 계속했고, 비구니는 마침내 몸에서 폐병을 떼어냈다.

비구니 이야기를 마치고 성철이 학생들을 두루 바라봤다. 이래도 피곤 따위를 핑계로 삼천배를 안할 것이냐고 눈으로 물었다. 학생들은 마침내 마음을 냈다. 삼천배를 시작했다. 그때를 지도교수였던 박성배 교수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드디어 삼천배의 시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울렸다. 겨우 백배를 하고 나니 벌써 미칠 것 같았다. 바깥 열과 속의 열이 합쳐져 몸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숨은 콱콱 막혔다. 그래도 삼백배까지는 그런대로 견딜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백배가 고비였다. 이미 우리의 옷은 물속에 빠졌다가 기어 나온 사람들처럼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기진맥진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무릎은 깨져 피로 얼룩지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자 학생들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불교는 자비문중이라 들었는데 이게 자비문중에서 하는 짓입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학생들이 해주니 마음속으로는 기뻤지만 그래도 지도교수라고 큰 소리를 쳤다.

“잔소리마라. 사람이 한번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야. 자비문중인지 잔인문중인지는 다 하고 난 다음에 따지자.”

나중에는 헛소리를 하는 학생도 있었고 벌떡 드러누워 막무가내로 일어나지 않으려는 학생도 있었다. 그 다음 천배, 특히 마지막 천배는 어떻게 해냈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8시간여 만에 우리는 모두 삼천배를 무사히 끝마쳤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삼천배는 8시30분에 끝났다.’

삼천배를 하고 난 후에는 모두가 변했다. 계속되는 박성배의 증언이다.

“우리들은 변했다. 무엇보다도 조용해졌다. 그렇게도 말이 많고 밤낮 시비만 일삼던 학생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그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한 학생은 심경의 변화를 이렇게 말했다.

“몇 푼어치 안 되는 지식을 가지고서 내가 남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수고를 했는지 생각해보면 참 우스워요.”

그렇게 삼천배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에 변화가 왔다. 교만과 위선이 빠져나간 마음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이었다. 성철은 훗날 왜 삼천배를 시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중이 신도를 대하는 데 사람은 안 보고 돈과 지위만 본단 말입니다. 안 그래요? 그래서 난 이 대문을 들어올 때는 돈 보따리와 계급장은 소용없으니 일주문 밖에 걸어놓고 알몸만 들어오라고 하지. 사람만 들어오라 이겁니다. 그리고 들어오면 ‘내가 뭐 잘났다고 당신을 먼저 만날 수 있나?’ 하지요. 부처님을 찾아왔다면 부처님부터 뵈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을 정말로 뵈려면 절을 삼천 번은 해야지요.”

부처님을 뵙고 절을 하면 결국 자신이 보이고, 종국에는 다른 사람이 보였다. 미천하고 연약한 자신이 여기 이렇게 존재함이 고마웠다. 그 고마움은 고스란히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바쳐진다. 성철은 절을 하면서 일체중생을 위해 참회하라고 일렀다. 절을 통해 신심을 키우는 성철의 ‘절 수행’은 독특했다. 누구나 삼천배를 하고 나면 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절은 묘했다.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한 사람은 발심의 깊이가 다르다. 그리고 그들은 절을 하면서 신심을 키운다. 각각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개울물도 바다에 이르면 한 맛인 짠 맛이 되는 것처럼 절을 하고 나면 누구나 이치가 서고 목표가 뚜렷해진다. 기도 가운데 제일 큰 기도가 절이다. 절을 해보면 밑바닥부터 낱낱이 자기가 지은 허물이 드러나 참회가 안 될 수 없다. 그리고 무릎과 머리와 마음이 땅에 닿으면 무한한 힘과 지혜가 생긴다.” (불필 스님 ‘영원에서 영원으로’)

발원은 참회와 감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참회야말로 발원에 앞서는 수행이다. 그리고 그 참회는 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성철은 누구에게든 절하라 일렀다.

“절하다 죽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다시 일렀다.

“남을 위해 절하시오. 처음에는 억지로 남을 위해서 절하는 것이 잘 안 되어도, 나중에는 남을 위해 절하는 사람이 되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며,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 아래 한 점도 안 되는 산에서, 그보다 작은 절에서, 그보다 작은 법당에서, 그보다 작은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그러면 한없이 작고 초라한 내가 ‘보였다’. 자신이 보이고 그리고 작은 자신을 있게 한 모든 존재가 보였다. 수없이 자신을 버리면 환희심이 물결처럼 일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는 가슴을 열고, 누구는 흐느꼈다.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324호 / 2015년 12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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