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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깨달았다 하여 내 모습이 바뀌랴

기자명 법보신문

이원섭 시인의 선시를 찾아서(16) 복사꽃을 한번 본 뒤론

삼십년이나 검객 찾아 다니는 동안

몇 번이나 잎은 지고 가지 돋아났었던가.

그러나 복사꽃을 한번 본 뒤론

지금에 이르도록 다신 의혹 안하나니….



三十年來尋劍客 幾回落葉又抽枝

自從一見桃花後 直至如今更不疑



○ 三十年來. 삼십년은 이 정도만 수행하면 누구나 깨달을 것이라는 선객들의 상식을 나타낸 햇수. 이십년(二十年)을 내세우는 수도 있다. 내(來)는 이래. ○ 劍客. 선사의 비유. ○ 抽枝. 가지가 돋아나는 것. ○ 自從. …로부터. 自나 從은 단독으로도 이 뜻을 나타낼 수 있으나, 이는 포개져 사용된 예다. ○ 直. 그대로. 줄곧. ○ 如今. 지금.



어느 날, 복사꽃을 보고 깨달은 영운지근(靈雲志勤)의 오동송(悟道頌)이어서, 이를 본 그의 스승 위산(爲山) 스님은,

“구체적 사물(緣)을 좇아 깨달으면 길이 상실되지 않는 법이니, 잘 지켜가도록 하라”

고 하면서, 인가(認可)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복사꽃을 보고 깨달은 일의 희한함이 선문(禪門)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던 만큼, 그 깨달음의 현장 리포트 격인 이 게송 또한 널리 회자되어, 오도송이라고 하면 으레 머리에 먼저 떠오를 정도의 위치를 차지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면 이 게송이 보여 주는 것은 어떤 소식인가. 깨달음을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생존과 이후의 그것이 명암(明暗)으로 엇갈리고 있음이 그것이다. 수행하면서 무엇을 얻었다 싶으면 의혹이 생겨나고, 다시 어떤 발판을 잡은 듯 해도 이내 의혹이 이어지곤 하여, 마침내는 부풀대로 부풀어진 의혹이 영운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모양이어서, 지난 날을 회고한 ‘몇번이나 잎은 지고 가지 돋아났었던가’라는 말에는 그의 피눈물나는 감개가 서려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복사꽃에 눈길을 한번 주는 것으로 크게 깨달았으니까 천만다행이거니와, 그토록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도 절망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던 깨달음이, 어떻게 그리나 간단히 이루어졌는가 의아스럽기도 하리라. 그러나 이것은 복사꽃을 한번 본 체험,-원문으로서는 일견도화(一見桃花)의 넉 자의 정체를 투시하는 것에 의해서만 풀릴 성질의 것인 점에서, 이것에 초점을 모아보자.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법화경 방편품의 게송에 보이는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라는 말씀이다. ‘제법’은 유형·무형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물을 지칭하는 낯익은 말인데다가, ‘자’는 요자(要自)·유자(猶自)의 경우같이 뜻 없는 첨가어요, ‘적멸’은 열반의 의역으로 널리 쓰이는 말이어서, ‘모두는 항상 열반의 모습이다’라는 뜻임이 된다. 그런데 실명(失名)이 된 어떤 스님이 이 말씀의 뜻을 알고자 해 오래도록 고심하다가, 어느 날 버드나무에서 울어대는 꾀꼬리 소리를 듣는 순간 활짝 깨달았다는 기록이 좬오등회원좭에 보이는 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해 준다.

그 첫째는 영운과 이 스님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깨달음은 긴장한 마음으로 추구한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런 노력이 정지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깨달음의 추구는 분별 중에서도 가장 강한 분별인 터에, 어떻게 그것으로 분별을 넘어선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겠는가. 또 다음으로는 무심(무분별)이 되는 때에는 주관과 객관의 대립도 소멸되는 터이므로, 소리를 듣건 꽃을 보건 그 구체적 체험이 바로 열반(진여·본래면목) 자체를 체득함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운의 복사꽃이 지니는 비밀이 있었던 것이니, 한번 본다 함은 무심으로 관조한 사실을 뜻하는 동시에, 한번으로 완료되어 두번·세번… 하는 식으로 반복되는 성질의 것이 아님도 드러낸다.

그리고 깨달음에 대해서는 다신 의혹하지 않게 됐다고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는데, 어째서 그런가. 깨달음이라 하나 영운의 처지에서는 절대 자체인 제 본래의 모습(面目)을 자각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자각 못하고 있던 과거라 해서 제 모습이 없어졌던 것은 아니고, 이제 그것을 자각했다 하여 새로운 무엇을 얻은 것도 안된다. 자기가 자기인 터에는 어떤 사연도 끼어들 여지는 없어질 것이니, 다신 의혹 안한다는 이 한 마디야말로 깨달음에 눈뜬 사람 아니고는 못할 말이라 할 것이다.



<시인·불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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