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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화주체로서 사대부의 등장

기자명 명법 스님

당 중기 귀족 몰락 계기로 유교 소양 갖춘 인재들 대거 발탁

▲ 이소도,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비단에 채색, 55.9x81.0cm,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오른쪽 아래 검은 말을 타고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현종이다. 평탄한 길만 달리던 황제의 말이 낭떠러지 좁은 다리 앞에서 놀라 멈칫거리는 모습은 현종의 황망한 심정을 표현한다.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당대 화가 이소도(李昭道)의 작품을 모사한 것으로 북송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소도는 아버지 이사훈(李思訓)과 더불어 산수화의 효시를 연 인물이다. 중국 산수화는 수묵산수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 채색화였다. 이장군 부자가 창안한 ‘금벽(金碧)산수’는 광물질 안료 석록과 석청, 주사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부분적으로 금니를 덧발라 화려하면서도 맑은 느낌을 준다.

 
동양종교는 서양종교와 달라
절대자나 인격신 존재 안해

유교는 현실적인 삶에 초점
불교·노장, 초월적 세계 관심

불교에서 유교로 복귀했지만
당 말기 중국문명 파괴 위기

유교로의 복고주의 운동 속
선종과 노장, 내면으로 흡수

이 그림은 일반적인 산수화와 달리 안사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안사의 난 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현종과 양귀비의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이 그림은 한 제국을 몰락으로 이끈 그 사랑의 파국을 한 장면으로 포착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눈앞에서 자결하도록 한 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험한 산길을 달려가는 현종의 저 긴박하고도 치욕적인 순간으로. 하지만 양귀비의 미모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적 사건이 단지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전례 없이 화려했던 당의 성세를 일시에 무너뜨리고 오대, 북송 그리고 남송까지 이어지는 중국사의 전환을 예고한 이 사건은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사회경제적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맞다. 아무튼 ‘개원(開元)의 치(治)’로 빛났던 현종의 치적은 이 사건으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그 자신도 사천으로 피난 가는 서글픈 신세가 되어 버렸다.

서양의 ‘종교’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 동양의 종교는 모두 잘 설명되지 않지만, 유교만큼 독특한 것도 없다. 어쩌면 통치술 또는 이데올로기 같으면서도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측면을 지닌다. 천(天)을 숭상하여 제례를 올리고 조상신을 받드는 등 종교적인 행위를 포함하지만 그 대상은 서양종교와 달리 절대자나 인격신이 아니며, 폭발적인 힘이나 강력한 감정을 동반하는 원시종교나 무속신앙과 달리 정교하게 다듬어진 예(禮)와 악(樂)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기능은 고급종교에 버금간다. 그러나 특정한 종교집단이나 사제 계층이 존재하지 않고 황제나 가문의 대표가 의례를 주관한다는 점, 역·시·서·예·악·춘추 등 유교의 경전들이 통치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일반적인 종교의 성격에서 벗어난다. 그 종교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유가의 주된 관심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적인 삶에 있었다. 유가적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인 삼재(三才)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사실만 봐도 분명하다. 다만 하늘과 땅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하는 원천이며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숭배해야 할 대상이자 그 기미를 점치고 원리를 탐구하여 하늘과 땅이 베푸는 은택을 온전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례는 현실 권력을 대표하는 황제가 집행했다.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는 하늘과 땅이 베푸는 은택을 온전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본받아 그 질서를 인간 세계에 구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천자는 천명에 의해 정해지지만 ‘시경·대아·문왕’에 “천명은 한 번 정해지면 바뀌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덕을 잃으면 떠나고 덕이 있으면 옮겨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개인이나 종족에 주어진 특권이 아니었다. 당 현종이 그랬듯이 황제에게 덕이 없으면 그 지위는 다른 이에게 넘겨져야 했다. 그러므로 치세, 곧 세상을 다스리는 활동은 중국에서는 “교화(敎化)”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졌다. 그와 달리 불교와 노장사상, 더 넓게 말하면 도교와 후에 논의할 일사(逸士) 전통은 세상을 다스리는 일, 다시 말해 권력에 염증을 느낀 자들이 추구하는 것이었다. 중국사에서 그들이 권력과 손을 잡거나 때로 권력을 탈취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세상을 벗어난 자들, 유가가 “방외지사(方外之士)”라고 불렀던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세상 밖에서 추구한 것은 무엇인가? 유가가 삶의 영역에서 조화와 질서를 추구한다면 그들은 유가가 미처 답하지 못한 것, 즉 삶 너머의 것을 추구한다. 도가는 불로장생이란 이름의 영생을 추구하고, 불교는 윤회 혹은 윤회를 초월하는 해탈을 추구한다. 그것은 중국인에게 제약되지 않는 삶, 다시 말해 유가가 지향했던, 세계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정한 한계(分)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충실함으로써 이루고자 했던 유위적 질서(和)를 초월하는 자유를 꿈꾸게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가적 질서를 전복시키기보다 그것을 비웃으며 가볍게 초탈하고자 했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와 노장사상, 도교가 서양이 만든 ‘종교’라는 규정에 좀 더 어울리지만, 서양의 기독교와 달리 권력의 원천은 아니었다. 서양에서 종교권력은 세속권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상을 지배했다. 서양 중세는 신권이 황권보다 더 높았다. 신의 이름으로 세상의 구원을 약속했던 아브라함 전통의 종교와 달리, 불교와 노장사상은 세상의 구원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그것은 세계 내의 문제이며 결국 권력의 문제이므로. 그러나 그것들도 궁극적으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한다. 유가 질서가 작용하는 세계의 바깥에서 그것들은 그 질서를 벗어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했다. 그리고 유가질서가 만들어놓은 세상이 형식만 남아 숨을 조여오고 결국 그 경직된 질서가 해체될 때, 사람들은 불교와 도교가 제시하는 세상 밖의 세상에서 새로운 질서의 궁극을 생각할 수 있었다.

당 중반 이후 의지할 가문도, 권세도 없이 오로지 독서를 통해 실력을 쌓았던 독서인들이 과거를 통해 정치세계에 입문했다. 유가의 오경을 중심으로 시문을 익혔던 유가지식인이 바로 그들이다. 과거는 북송시대에 이르러 전면적으로 실행되었지만, 수나라 때 처음 실시되었으며 당에 들어와 권력적 기반이 약했던 무측천에 의해 인재등용의 방법으로 확대되었다. 이들 한빈한 가문 출신의 인재들이 안사의 난을 거치면서 귀족세력이 몰락하자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유가적 이상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공자가 그랬듯이 자신들도 황제를 도와서 천하를 돌보는 것(兼濟天下)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명감은 종교적 감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토지제도 개혁과 농업 발전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와 소농민 계층의 등장, 도시의 성장 등 경제적 변화와 그에 따른 귀족계층의 몰락과 사대부의 등장, 그리고 황제독제체제의 확립과 같은 정치적 변화가 당대 후반에 나타난 변화의 표면적인 양상이라면, 정신사적으로 볼 때 그것은 한대 동중서가 기초한 천인상응론에 근거하여 구축된 중국적 질서의 와해와 그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표명된다.

사대부들은 세상의 곤궁을 맞부딪치며 중국적 질서의 복원을 시도했다. 과거에 외재적으로 주어졌던 하늘의 뜻을 이제 그들 내면으로부터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이들 사대부의 자기반성은 정치적 세계를 넘어 자신의 내적 존재, 그 궁극의 근원을 향한 초월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후에 송학이 이어받았던 이 흐름은 당 후반기에 문단에서 일어났던 고문(古文)운동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당대 성행했던 불교를 폐지하고 유가적 전통을 다시 세우려는 복고주의 운동이지만 중국사에서 개혁은 복고를 통해서 일어났음을 상기하면 왜 이 시기에 복고주의가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학과 정치를 넘어 내면으로 심화될 때 노장사상과 불교, 특히 선종은 다시금 사대부들의 세계로 초빙된다. 사천으로 가는 길은 지금도 그렇지만 시인 이백(李白)이 “촉으로 가는 길은 하늘가는 길보다 험하다(蜀道難,難於上青天)”고 할 정도로 험하다. 높이 솟은 봉우리와 그 중간에 걸린 흰 구름, 그리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험한 산길을 배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은 이 피난의 길이 얼마나 고단한지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 검은 말을 타고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현종이다. 평탄한 길만 달리던 황제의 말이 낭떠러지 좁은 다리 앞에서 놀라 멈칫거리는 모습은 현종의 황망한 심정을 표현한다.

이 장면은 유가의 이상적인 통치자로서 명예와 자부심과, 학문과 예술을 지원했던 메세나(mecenat) 황제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연인으로서 누렸던 세속적인 온갖 즐거움과 대비되어 여러 가지 상념에 사로잡히게 한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곤혹스러움은 단지 그 한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로부터 시작된 중국문명의 파괴를 지켜보아야 했던 당 후반 지식인들의 위기감을 예고한다. 그의 몸을 숨겼던 저 높고 맑은 하늘과 푸름으로 빛나는 산천은 지식인들에게 몸과 마음을 깃들이는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당 현종의 사천 피신을 소재로 한 ‘명황촉행도’를 시대의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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