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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중도(中道)

기자명 김택근

▲ 중도설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에서 지켜야하는 실천적인 것이다. 성철 스님은 중도사상을 진리로 체득해 감응하여 살았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흔히 ‘중도’라 하면 ‘중도는 중간이다’ 하는데 그것은 불교를 꿈에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중도는 중간이 아닙니다. 중도라 하는 것은, 모순 대립된 양변인 생멸을 초월하여 생멸이 서로 융화하여 생이 즉 멸이고, 멸이 즉 생이 되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참다운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양변을 버려야만 합니다. 모순상극의 차별세계를 버려야 합니다. 양변을 버리면 두 세계를 다 비추게되는 것입니다. "

부처님이 도를 이루고 비구들에게 최초로 설법했다. 율장 초전법륜편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세존이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출가자는 이변(二邊)에 친근치 말지니 고(苦)와 낙(樂)이니라. 여래도 이 이변을 버린 중도를 정등각이라 한다.”

성철은 불교의 근본이 중도사상에 있음을 대중에게 알렸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세상의 향락만 버릴 줄 알고 고행하는 이 괴로움[苦]도 병인 줄 모르고 버리지 못하지만, 참으로 해탈하려면 고와 낙을 다 버려야 한다. 이변을 버려야만 중도를 바로 깨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변을 버리고 중도를 정등각하였다’는 이 초전법륜이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부처님의 근본법이라고 확증하고 있으며 이것을 부처님의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이라고 합니다.”

성철은 근본불교사상, 중관사상, 유식사상과 천태종, 화엄종 등 선종의 핵심 사상 등을 총동원해서 중도사상을 설파했다. 중도사상은 출가에 영향을 끼친 ‘신심명’ 머리에 나오는 구절이 핵심이었다. 성철은 이를 적확하게 새겨서 평생 익히고 숙성시켰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지도무난 유혐간택 至道無難 唯嫌揀擇)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단막증애 통연명백 但莫憎愛 洞然明白)’

누구든지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간택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니, 증애심만 떠나면 중도정각(中道正覺)을 이룬다는 것이다. 중도의 기본은 있음(有)과 없음(無), 생함(生)과 멸함(滅) 등 상대적인 어떤 두 극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중도’라 하면 ‘중도는 중간이다’ 하는데 그것은 불교를 꿈에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중도는 중간이 아닙니다. 중도라 하는 것은, 모순 대립된 양변인 생멸을 초월하여 생멸이 서로 융화하여 생이 즉 멸이고, 멸이 즉 생이 되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철은 또 흔히 중도를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했다. 헤겔(F. Hegel)의 변증법에서는 모순의 대립이 시간적 간격을 두고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모순의 대립이 직접 상통한다고 가르쳤다.

성철의 법문은 구체적이었다. 중도의 실체를 알기 쉽게 풀어서 전했다.

“현실세계란 전체가 상대모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과 불,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있음과 없음, 괴로움과 즐거움, 너와 나 등입니다. 이들은 서로 상극이며 모순과 대립은 투쟁의 세계입니다. 투쟁의 세계는 우리가 목표하는 세계는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의 세계를 목표로 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극 투쟁하는 양변의 세계에서 평화라는 것은 참으로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양변을 버려야만 합니다. 모순상극의 차별세계를 버려야 합니다. 양변을 버리면 두 세계를 다 비추게[雙照二諦] 되는 것입니다. 다 비친다는 것은 통한다는 뜻이니 선과 악이 통하고 옳음과 그릇됨이 통하고 모든 상극적인 것이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둘 아닌 법문[不二法門]이라고 합니다. 선과 악이 둘이 아니고, 옳음과 그릇됨이 둘이 아니고, 괴로움과 즐거움이 둘이 아닙니다. 둘이 아니면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니 서로 통하려면 반드시 양변을 버려야 합니다.”

성철은 불교의 근본은 불생불멸에 있고, 그것이 곧 중도라 말했다. 또 불생불멸은 관념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것이며 이는 과학이 증명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성철은 불생불멸의 중도법문을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로 설명했다.

“자연계는 에너지와 질량, 이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전 물리학에서는 에너지와 질량을 각각 분리해 놓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에서는 에너지가 곧 질량이고 질량이 곧 에너지입니다. 서로 같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등가원리에서 에너지와 질량 두 가지가 별개의 것이 아니고 같은 것이라는 이론(E=mc²)을 제시하였을 때 세계의 학자들은 모두 다 그를 몽상가니 미친 사람이니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하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성공의 첫 응용단계가 우리가 다 아는 원자탄, 수소탄입니다. 질량을 전환시키는 것을 핵분열이라고 하는데 핵을 분열시켜보면 거기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때 발생되는 에너지, 그것이 원자탄인 것입니다. 이것은 핵이 분열하는 경우이고 거꾸로 핵이 융합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수소를 융합하면 헬륨이 되면서 거기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이 수소탄이 되는 것입니다. 질량이 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한다는 것은 미국 물리학자 앤더슨(C. D. Anderson), 뭇솔리니에 쫓겨서 미국에 간 이탈리아 학자 세그레(Emilio Segre)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이것은 물과 얼음에 비유하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은 에너지에 비유하고 얼음은 질량에 비유합니다. 물이 얼어서 얼음으로 나타나면 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얼음이 녹아서 물이 돼도 얼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물이 얼음으로 나타났다 얼음이 물로 나타났다 할 뿐이고, 그 내용을 보면 얼음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얼음인 것입니다. 에너지와 질량 관계도 이와 꼭 같습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상대성 이론에서 제창되었지만 양자론에서도 여전히 적용됩니다.

에너지가 완전히 질량으로 전환하고 질량이 완전히 에너지로 전환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쌍생쌍멸(雙生雙滅)이라고 합니다. 모든 에너지가 질량으로 변할 때 언제든지 쌍으로 변하는 현상을 쌍생성이라고 합니다. 앤더슨의 실험에서도 광(光)에너지를 물질로 전환시킬 때 양전자와 음전자가 쌍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양전자와 음전자를 합하니까 완전히 쌍으로 없어져 버렸습니다.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할 때는 쌍생이고,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할 때는 쌍멸이 됩니다. 이것은 중도의 공식, 곧 쌍으로 없어지고 쌍으로 생기는 쌍차쌍조(雙遮雙照)로 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쌍차쌍조의 공식이 에너지와 질량이 전환하는 이론으로 증명이 됩니다.”

결국 자연계를 구성하는 근본요소인 에너지와 질량은 불생불멸, 부증불감이며 따라서 우주는 영원토록 상주불멸이었다. 성철은 주장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3000년 전에 진리를 깨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혜안으로 우주 전체를 환히 들여다 본 그런 어른입니다. 그래서 일체 만법이 그대로 불생불멸임을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런 정신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3000여년 동안을 이리 연구하고 저리 연구하고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마침내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 요소인 에너지와 질량이 둘이 아니고 서로 전환하면서 증감이 없음을 마침내 알아냄으로써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생불멸이라는 원리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요사이 이것이 수학적, 과학적으로도 4차원의 세계라는 개념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논리적으로 가장 정확한 것이 수학인데 거기에 4차원 세계의 공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본래 4차원 세계라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것인데, 민코프스키(H. Minkowski)라는 수학자가 4차원 세계의 공식을 완성하여 그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놓고 첫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앞으로 시간과 공간은 그림자 속에 숨어버리고 시간과 공간이 융합하는 세계가 온다.’

3차원이라는 입체 즉 공간을 말하며 시간은 1차원입니다. 그런데 차별상대의 세계인 현상계는 시간과 공간이 융합하는 세계가 되어 현상계의 차별 모순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이 불교 중도의 진리와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은 같다고 봅니다. 양변이 융합하는 세계를 불교에서는 중도라고 하며, 현대 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양변이 융합하는 세계를 4차원의 세계라고 합니다. 거기에서는 물이 물이 아니고 불이 불이 아니기 때문에 물과 불이 서로 통하여 물이 곧 불이며 불이 곧 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걸림이 없는 세계[無碍世界]라고 합니다.”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를 일관하는 중도사상이라는 것은 불교만의 독특한 진리였다. 부처님 앞에도 없었고, 부처님 살아계실 당시에도 없었다. 6년 동안 갖은 고행을 다했어도 아무 소득이 없었지만 그러한 행을 버리고 보리수 아래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공부하여 새벽별을 보고 정각을 이루었던 것이다. 양변을 떠나 가운데[中]도 머물지 아니하는 중도사상만이 오직 참다운 극락세계를 이 현실에 실현시킬 수 있었다. 성철은 말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이 부처님의 중도사상으로 선과 교를 하나로 꿰어서 불교를 설명한 사람은 없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잘 이해하여 전수해주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불교보다 나은 진리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 불교를 버릴 용의가 있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하지는 않았다’고 한 그 진리는 바로 중도사상이었다. 중도란 곧 마음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중도를 깨쳤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자리’ ‘근본자성’을 바로 보았음을 뜻하니, 그것이 곧 견성이었다.

중도설은 두 변에 집착하지 말라는 기본적이고도 간단한 형식이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수행에서 지켜야하는 실천적인 것이다. 성철은 중도사상을 진리로 체득하고 이에 감응하여 살았다.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331호 / 2016년 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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