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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원력의 창조

원을 세워 발생하는 힘으로 서방 정토 극락세계 만들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묘한 꽃(으로 이루어진 의자)은 본래 법장(法藏) 비구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꽃도 아니고, 우리가 일상에서 늘 볼 수 있는 꽃도 아닙니다. 아주 특별하고도 묘한 꽃입니다. 그런 특별하고도 묘한 꽃을 탄생시킨 것은 법장 비구의 원력입니다.

일상적 소원은 작은 것이나
원력은 자기를 벗어나는 것
법장은 마흔여덟개 원 세워
수행한 끝에 아미타불 돼

법장 비구는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원래 아미타불은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만, 출가를 하셨습니다. 스님이 된 것입니다. 스님이 되었을 때의 이름이 바로 법장입니다. 법장 비구가 아미타불이 된 것입니다. 왜 법장 비구는 부처님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바로 원력 덕분입니다.

원력은 원을 세움으로써 발생하는 힘이라는 말입니다. 보살은 원을 세우고 수행하셨기에 부처님이 됩니다. 그러므로 법장 비구는 동시에 법장 보살이기도 합니다.

원은 일단 큰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소원(所願)같은 것과는 대조할 수도 없습니다. 소원은 소원(小願)입니다. 예를 들면, 군대에 있는 아들 녀석이 탈 없이 잘 있다가 제대했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이는 소원입니다. 작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평화가 정착되고,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전쟁이사라지기를 바라면 대원(大願)입니다. 자기의 범위를 벗어나는 원이라야 대원이고, 그것이 바로 보살의 원입니다.

법장 보살의 원은 모두 마흔여덟 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 소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원만이 있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온 중생이 다 부처를 이루고 행복하고도 평화롭게 살아갈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다 그곳으로 인도하겠다는 꿈입니다. 그런 원의 힘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서방 정토 극락세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기기묘묘한 꽃이나 그런 꽃으로 된 의자만이 법장 보살의 원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극락 자체가 다 그렇다는 점을 말입니다.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해서 “만약 저 부처님을 염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먼저 이렇게 기묘한 꽃의자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할 때에는 잡스럽게 관찰해서는 아니 되며, 모두 하나하나 잘 관찰해야 한다. 하나하나의 잎, 하나하나의 구슬, 하나하나의 빛, 하나하나의 봉우리, 하나하나의 깃대를 (잘 관찰하여) 모두 분명하게 해야 한다.” 관찰의 방법과 관찰의 밀도(密度)를 말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마치 거울에 (비친)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가상(假像)이지만 진짜 얼굴(眞像)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극락의 꽃의자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이루어진다면 오백억 겁토록 생사(를 반복해온) 죄를 소멸하게 될 것이며, 반드시(必定) 장차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관찰수행의 공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오백억이나 되는 오랜 세월을 윤회하게 했던 죄를 소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락세계에 반드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공덕은 극락세계를 관찰하는 수행이 사실은 곧 전생의 죄업을 참회하는 일이 됨과 아울러 미래를 개척하는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필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사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결정(決定)’ ‘일정(一定)’ 역시 같은 뜻입니다. 이 말 속에는 극락왕생에 대한 깊은 믿음, 결정적인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자력의 선(禪)에서는 견성(見性)을 말하지만, 타력의 정토신앙에서는 안심(安心)을 말합니다. 정토에 태어나리라는 안심을 말합니다. 그럴 때 ‘안심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올바른 관찰이라 말하는데, 만약 (이와) 달리 관찰하는 것은 잘못된 관찰이라 말한다.” 안심결정을 부르는 관찰이기에 정관(正觀)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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