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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마음의 눈으로

관상수행 집중할 때뿐 아니라
일상서도 법 들을 수 있어야

“그러므로 마땅히 일심으로 마음을 모아서 저 부처님 여래 아라한 정등각을 관찰하여야 한다. 저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먼저 마땅히 그 상(像)을 생각하는 것이다. 눈을 감았을 때나 떴을 때나 보배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상이 마치 염부단금(閻浮檀金)과 같은 색을 내면서, 저 꽃 위에 앉아 계심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 꽃’은 앞의 제7 화좌관에서 말한 보배로 이루어진 연꽃을 말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무르익게 되면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미타불모습 떠올리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눈 열려
선정 속 말씀과 경전 말씀
합치되면 극락세계 본 것

“(부처님의) 상이 (연꽃 위에) 앉아 계심을 보게 되면(見像), 마음의 눈이 열려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극락국의 칠보(七寶)로 장엄된 보배 땅, 보배 연못, 줄지어 서있는 보배 나무, 모든 하늘의 보배로 장식된 비단이 나무 위를 덮고 있는 것, 온갖 보배가 달려있는 그물이 허공에 펼쳐져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

자, 여기서 우리는 ‘관상(觀想)의 순환’을 보게 됩니다. 먼저 극락의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인위적으로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어느 순간 마음의 눈(心眼)이 열리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극락과 사바세계 사이의 거리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그러한 일들은 보는 것은 극히 명료하여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나서는, 다시 마땅히 하나의 큰 연꽃이 부처님 왼쪽에 펴있다고 생각하라. (그 연꽃은) 앞에서 말한 연꽃과 똑같아서 다름이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큰 연꽃이 부처님 오른쪽에 있다고 생각해라. 한 분의 관세음보살이 왼쪽 연꽃 위에 있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과 다름없는 빛을 놓고 있음을 생각하고, 한 분의 대세지보살이 오른쪽 연꽃 위에 있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과 다름없는 빛을 놓고 있음을) 생각하라.”

아미타불의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모시고 앉아있는 형상입니다. 그러한 형상을 떠올리는 “이러한 생각이 이루어졌을 때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두 아름다운 빛을 놓고 있는데, 그 빛은 금색이며 모든 보배 나무를 비춘다. 하나하나의 보배 나무 아래에도 역시 세 송이 연꽃이 피어 있으며, 그 연꽃 위에 각기 한 분의 부처님과 두 분의 보살이 계시면서 두루 그 나라를 가득 채우고 있다.”

환상적입니다. 수많은 보배 나무가 있고, 수많은 연꽃이 있고, 수많은 불보살님이 계십니다. 가히 극락을 ‘가득 채웠다(遍滿)’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득 채워진 모습을 보는 “그러한 생각이 이뤄졌을 때, (관상염불을 하는) 수행자는 마땅히 빛을 내며 흐르는 물, 모든 보배 나무, 기러기, 오리, 원앙들이 모두 훌륭한 법을 설하는 것을 들어야 할 것이며, 선정에 들어 있을 때나 선정에서 나왔을 때는 항상 훌륭한 법을 들어야 할 것이다.”

집중하여 관상 수행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로 돌아왔을 때조차도 항상 저 극락세계의 물, 새, 나무들이 설하는 법을 늘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들은 것을 선정에서 나왔더라도 기억하여 지녀야 하며 버려서는 아니 되니, (선정 속에서 들은 말씀과) 경전의 말씀이 합치되어야 한다. 만약 합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망상이라 말해야 할 것이고, 합치된다면 거칠게나마 극락세계를 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상(想像)이며, 여덟 번째의 관상이다.”

관상을 하는 중에 어떤 소리를 듣거나 어떤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망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경전의 말씀과 부합하는 것만이 올바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망상입니다. 이렇게 기준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무량억겁 토록 생사를 반복할 죄를 제거하는 것이며, 현재의 몸으로는 염불삼매를 얻게 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 올바른 관찰이며, 이와 다르게 관찰하는 것은 삿된 관찰이다.” 여기서 ‘염불삼매’는 곧 관불(觀佛)삼매입니다. 부처님을 관상하는 것이 부처님을 염하는 것과 다를 수 없습니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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