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몸으로부터 나오는 한량없는 광명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무량광(無量光)이 “나무아미타불”이라 염불하는 우리들 모든 중생을 섭취(攝取)하여 버리지 않습니다. 섭취라는 말은 섭수(攝受)라는 말입니다. 다 거둬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안심(安心)을 얻는 것, 그것이 염불삼매입니다.
한량없는 부처님 광명이
염불하는 모든 중생 섭수
부처님 몸 관찰하게 되면
물러서지 않는 경지 얻어
“그렇게 관찰하는 것을 모든 부처님의 몸을 관찰한다고 말한다. 부처님의 몸을 관찰하기 때문에 또한 부처님의 마음을 보게 된다.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큰 자비심이 그것이다.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주시는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섭취하신다.”
우리는 앞서 부처님의 몸을 관찰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몸으로부터 쏟아내는 빛을 관찰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무량수불 한 분의 몸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분의 부처님을 관찰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을 관찰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빛의 관찰이기도 하였습니다.
빛은 어떤 성격을 띠는 것일까요? 바로 두루 비춘다는 것입니다. 보조(普照)입니다. ‘두루’라는 말은 연고주의를 넘어섭니다. 우리 사회의 지독한 고질병,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일까요?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교연(敎緣) 등이 그것입니다. 마지막에 든 교연은 바로 종교의 인연입니다. 선거 때면 늘 등장하는 것이 이러한 연고주의입니다. 그 인연의 벽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부처님은 바로 그 연고주의를 넘어서는 자비를 펼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불교의 무연자(無緣慈)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자들이 연고주의를 떠날 수 있음을 먼저 보여주어야 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고주의를 뛰어넘는 자비로써 중생을 다 섭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자는 몸을 버리고서 다른 세상에서는 부처님 앞에 태어나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경지(無生法忍)를 얻게 된다.” 왕생극락한다는 말입니다. 무생법인을 얻는다는 것은, 십지(十地) 중에서 팔지(八地)에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극락에 왕생하면 곧 제8지 부동지(不動地, 아비발치, avivartika)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바로 무생법인을 얻게 됩니다. 다시 물러나지 않는 경지이므로, 아미타불의 법문을 듣고서 성불을 하게 됩니다. 그런 뒤 다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이 세상으로 오십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마음을 모아서 무량수불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무량수불을 관찰할 때에는 하나의 상호를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니, 다만 미간의 백호(白毫)를 관찰하여 지극히 분명하게 하라. 미간의 백호를 보게 되면 곧 팔만 사천의 상호가 저절로 나타나게 될 것이며, 무량수불을 뵙는 것은 곧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다 뵙는 것이다.”
팔만 사천 가지의 특징들을 다 관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만 하나, 미간의 백호만을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엄의 이치가 여기서도 그대로 통용됩니다. 융통관찰(融通觀察)이라 할 만합니다.
“한량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을 다 뵙게 되기에 모든 부처님이 (그의) 앞에 나타나셔서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受記)를 주신다.” 우리 입장에서는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지만, 부처님 입장에서는 우리 앞에 부처님이 모습을 내보이시는 것입니다. 관상(觀想)은 부처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주시는 것을 보고자 하는 수행입니다. 나타나셔서는 우리가 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것을 일러주십니다. 그것이 수기(受記), 즉 수기(授記)입니다.
“이러한 (관상을) 두루 (부처님의) 모든 색신(色身)을 관상하는 것이니, 아홉 번째 관찰이다.” 제9관의 이름을 이 부분에 의거하여 편관일체색신관(遍觀一切色身觀)이라 하는데, 당나라 선도대사는 ‘관경소’에서 진신관(眞身觀)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올바른 관찰이며, 만약 이와 다르게 관찰하는 것은 삿된 관찰이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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