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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신림동 고시촌 포교 현장'

기자명 심정섭

법조인 꿈꾸는 6만명 운집…사찰 단 두 곳

10월 22일 오후 1시 서울시 관악구 신림 9동. 서울대와 지하철 신림역을 잇는 큰길에서 안쪽으로 10여 미터 가량 들어가면서부터 골목마다 고시원 간판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100여 미터를 더 올라가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고시원들이 벽을 잇대어 즐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역이나 사람의 이름을 딴 고시원 간판이 즐비한 사이로 샬롬·에바다·○○교회 등 예사롭지 않은 간판이 보였다. 한 골목에 하나씩 만 해도 그 수가 적지 않을 것 같은 예의 고시원 간판들을 뒤로하고 관악산 줄기로 이어진 가파른 골목길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대한불교 조계종 등룡사'라는 현판을 볼 수 있었다.

강남 능인선원이 고시촌 포교를 목표로 지난해 개원한 사찰이다. 혜각 주지 스님은 '교회에서 직접 고시원 운영을 시작하면서 개신교를 상징하는 간판이 늘어나고 있다'고 그 예사롭지 않았던 간판들이 생겨난 배경을 설명했다. 그동안 거리에서 선교를 하고 교회를 건립해 찾아오도록 했던 개신교단이 정책적으로 고시촌 운영을 통한 직접선교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다.

고시 준비생인 이동진 등룡사 청년회장은 '이 지역 교회들은 여름철에 연합으로 '고시촌 예수축제'를 열어 고시생 선교에 나설 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인재불사를 강조하는 조계종의 무관심을 이해할 수 없다'며 말끝에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공무원 시험을 관리하는 총무처 추산에 따르면 고시 준비생 10만 명 가운데 6만 명 이상이 신림동 지역에 운집해 있다. 법조인을 비롯해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쉽게 흔들리고 방황하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종교시설을 찾고 성직자를 찾는다. 등룡사에 앞서 94년부터 고시생 포교에 나선 약수사(주지 광옥 스님)에서 청년회원으로 활동했던 조영선 변호사는 '매주 1000배 정진으로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으며, 참선과 포행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는 유용한 시간이었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조 변호사는 또 '법조인들은 시시비비를 가려기 위해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론내리는 것이 중요한 만큼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법조인 포교는 인재불사 외에도 사회정의구현을 이끄는 한 방법'이라고 법조인 포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법조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인 고시촌 포교에 손길을 내민 사찰은 약수사와 등룡사 단 두 곳뿐이다. 개신교계가 고시원 직접운영을 통해 적극적 선교에 나선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고시촌 포교의 맥을 잇고 있는 약수사와 등룡사의 공통점은 고시생을 중심으로 구성한 청년회 운영이다. 두 사찰은 불교를 의지처로 삼은 이들이 정신을 바로할 수 있도록 고급 강사들을 초빙해 매주 일요일에 법회를 열고 있다. 특히 등룡사는 200여 명의 회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법당을 24시간 개방하고 스님이 상담을 하면서 고시를 준비하면서 겪는 심적 갈등을 해소해주고 있다.

종단적 관심이 전무한 상황에서 약수사는 사찰 불사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포교방법을 구상중이며, 등룡사는 인근에 부지를 확보, 법당과 강의실을 갖춘 지하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 신축을 계획하고 있다. 등룡사는 또 현재의 법당자리에 고시원을 세워 고시촌 포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법조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보금자리 고시촌은 지금 개신교의 적극적 선교에 밀려 불자들이 정신적 여유를 찾고 쉼 쉴 수 있는 공간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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