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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콩과 사찰음식

기자명 김유신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만주
불교에선 음식 넘어 교화 방편
삼국유사, 신병치료 설화 전해

우리 음식의 근원을 더듬다 보면 대표적인 식재료로 콩이 나온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효음식인 된장이나 두부 등의 원료이기도 하고, 전체 곡식을 상징하는‘오곡(五穀)’중의 하나이기도 하여 콩을 빼고는 우리 음식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하여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콩을 귀하게 여겼는데 새해 들어 처음으로 오는 쥐날(子日)인 ‘상자일(上子日)’에는  곡식을 축내는 쥐를 경계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큰 솥에 콩을 볶으며‘쥐알, 콩알 볶아라’라는 주문을 외었다.

한편 그렇게 볶은 콩을 주머니에 담아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는데 이에 유래하여 대궐에서는 오색실을 매단 주머니를 만들어서 나눠주었다. 이 날 뿐만 아니라 새해 첫 돼지날(亥日)에도 콩을 볶아 한 알씩 종이에 싸서 주머니에 넣은 후 이를 종친들에게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이 모두 콩의 신이함을 믿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절에서도 콩을 단순히 먹는 음식으로만 여기지 않고 교화의 한 방편으로 삼기도 하였는데  ‘동국세시기’의 ‘초파일조’에 평소 염불을 하며 숫자를 헤아릴 때 썼던 검은 콩에 소금을 넣고 볶아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이를 ‘인연맺기’라고 하였다는 기록이나, 청나라 세시풍속기인 ‘제경세시기승’에 초파일날 소금에 절인 콩을 나눠줬는데 이를 ‘보결랑연(普結良緣)’, 즉 두루 좋은 인연을 맺는다고 하였으니 우리와 다르지 않은 풍속이라 하겠다.

또한 ‘삼국유사’의 ‘혜통항룡(惠通降龍)’조를 보면 혜통국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하던 시절 교룡(蛟龍)이 일으킨 공주의 병을 치유할 때 흰 콩과 검은 콩을 신병(神兵)으로 화하게 해서 교룡(蛟龍)을 쫓아냈던 일화가 나오는데 이 또한 콩을 범상치 않게 여겼던 상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음식문화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불교 교화의 주요 수단이기도 한 콩의 고향은 우리나라와 만주일대이다. 그래서 수천종의 다양한 콩들이 이 땅에전해져 왔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비잡이콩, 푸른콩, 어금니동부, 호랑이강낭콩, 줄강낭콩, 작두콩, 제비콩, 흰양대, 귀족서리태, 오리알태, 개골팥 등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토종 콩들이 지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콩 자급율이 약 5%정도이고 9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수 천종에 달했던 토종콩 보존 종자 수도 약 1100여 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늦게 재배를 시작해서 불과 200여년 만에 세계 콩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대두콩만 약 1만7000여 종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 중 3700여 종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하니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미국식 단일품종 대량농업방식의 폐해를 막고 다양한 토종종자 보존을 위한 노력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데 세계 최대 종자보존시설인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 씨앗 저장고’라든지 1996년도부터 ‘슬로푸드국제협회’에서 토종자원 보존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맛의 방주’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맛의 방주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4000여종이, 우리나라는 제주도 푸른콩과 어금니동부콩을 비롯해 약 55종이 등록되어 있다.

콩은 한자로 원래 ‘숙(菽)’이라 하였다. 우리가 흔히 숫기가 없거나 어리숙한 사람을 ‘숙맥’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콩과 보리도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콩 한 톨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주적 질서가 작용하기에 한 알의 콩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우리는 삼시세끼마다 우주의 경이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 한 톨이 지닌 진정한 무게를 알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숙맥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유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발우공양 총괄부장 yskemaro@templestay.com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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