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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사라진 국보 수두룩-6.25와 불교

기자명 김민경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폭격.방화로 상당수 사찰 소실...

증심사 신라 금동불 공비출현으로 경찰서 옮긴 후 행방불명

유래없이 참담한 전화였던 6˙25는 인명과 재산뿐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수많은 문화재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불교유물과 문화재의 피해가 아주 심했다. 서울이나 공공기관에 있던 문화재는 관계 기관의 보호조치에 의해 대부분 무사했지만 사찰이나 개인 소장 문화재는 전화에 큰 손실을 입었다. 국보로 지정됐던 보림사 대웅전과 송광사 청운당이 불타 없어졌고 그밖의 수많은 고찰들이 폭격이나 방화로 불타 없어졌다.

지금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성덕대왕 신종에 버금가는 신라의 국보급 유물이었던 정원(貞元) 20년(804년) 명문의 종도 월정사가 불타버릴 때 함께 녹아 없어졌다. 이 종은 6˙25가 일어나기 직전인 48년 한 촌부가 밭에서 발견해 발굴됐었다.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해서 땅속 깊숙히 파묻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햇빛을 본지 3년여 만에 다시 참화를 만난 것이다. 휴전선 근방의 강원도 간성 건봉사 소장 이때의 고려마지(高麗麻紙) 금역 화엄경도 전화에 없어졌다. 일제 때 이미 보물로 지정 되었고 해방후 국보 412호로 지정되었으나 절이 불탈 때 함께 없어졌다.

그밖에 수많은 사찰들이 포화로 사라졌다. 사찰은 수복후에도 공비들에 의해 점거되어 전쟁 중이나 후에도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국보급 불교유물들은 포화 때문에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막무가내로 시도되던 동산문화재들의 불법 해외유출은 막을 길이 없었다.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62년까지 문화재의 해외 유출이 어렵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외교관 파우치로 나갈 경우에는 정부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니 그 피해의 심각성을 알수 있다. 사라진 유물들은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관련학자들은 밀반출의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무등산의 고찰 중심사에 소장되어 있던 국보 211호 금동석가여래입상과 212호인 금동보살입상은 6˙25 직전 무등산 일대에 공비의 출현이 심할 때 안전을 이유로 인근 경찰서 금고에 보관되었다. 그러나 이 신라시대 국보들은 휴전 후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국보 리스트에서 삭제 되었다.


김민경 기자
mkkl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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