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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때 선운사 불탈뻔 했지요”

기자명 이창윤

50년 12월 ‘방화명령 거부’ 고찰지킨 김재환 옹

“당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요. 그때 군부대의 지시를 따랐다면 천년 고찰을 불태운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썼을 것 아니예요. 많은 사람들이 선운사를 참배하는 것을 보니 그때 내가 한 일이 정말 잘한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돼요.”

선운사 경내를 둘러보는 노옹의 눈에는 절박했던 50년 전 상황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김재환 옹(75·전북 부안군 부안읍)은 5월 4일 고창 선운사 주지 법현 스님으로부터 뒤늦은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군부대를 설득해 선운사 소각을 막은 공로 때문이었다.

김 옹이 선운사 소각 명령을 받은 것은 1950년 12월 15일. 당시 고창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모사단은 공비소탕 작전에 지장을 주므로 선운사를 포함한 산내 암자를 모두 소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운사는 인근한 심원면이 전북에서 가장 늦게 수복될 정도로 치안 유지와 공비토벌이 어려웠던 지역이었다.

선운사 인근의 반암출장소 주임(소장)을 맡고 있던 김 옹은 “산에 숨어 있는 공비 토벌은 시간 문제인데 한 순간을 못참고 조상들의 얼이 서려 있는 고찰을 불태울 수는 없다”고 군부대를 설득해 선운사를 소각의 위기에서 지켜냈다.

“내가 명예를 바라고 소각을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고창 지역에는 이렇다할 역사·문화유적이 없어서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선운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공비들도 군 1개 대대만 투입하면 소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태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김 옹은 당시 주지였던 진호명 스님을 잊지 못한다. “나는 늙었으니 죽어도 좋다”며 사내 대중들을 모두 피신시키고 홀로 선운사를 지키던 스님은 경찰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공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김 옹은 “당시 선운사 주위를 순찰했을 뿐 정보를 들은 바 없는데 스님이 억울한 죽임을 당해 안타깝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창 이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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