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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정론-한탄강 오염과 자비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이상의 `성천기행'에 보면 신청년인 그의 눈에 평남 성천은 권태롭기 이를데 없는 고을로 그려지고 있다. 푸르기만한 하늘, 녹색으로만 덮힌 산과 들, 심지어 아이들이 놀다가 대변을 보는 것까지도 이상은 견딜수 없는 권태의 풍경으로 잡고 있다. 이미 폐결핵이 깊어 찾은 산천이건만 신문이 안오고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대목도 있다. 몸이 피폐해서 그랬겠으나 지금 신세대도 아닌 30년대 청년이 잠깐의 산속에서 내내 경성만을 동경하는게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렇게 따분해서 몸부림 치던 기억이란 남아있지 않다. 도리어 요즘같이 우기로 접어들 때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 하루해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장대비가 그치기 무섭게 우리는 집집의 또래들을 들쑤셔 검은 구름이 걷
혀가는 동구밖으로 내달았다. 해갈을 고마워 하기도 전에 닥친 폭우로 어른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한데 그건 아랑곳 않고 아이들은 황토로 맥질한채 콸콸 내려오는 물의 용틀림을 보기위해 신작로의 회다리난간 위로 꼬여들었던거다. 일렬로 늘어서 재잘대는 조무래기들의 모습은 천상 전깃줄의 참새들이었다. 허리를 난간에 기댄채 으르릉거리는 냇물에서 눈을 뗄줄 몰랐으니 거친 물결이 대들보 돼지새끼 수박 교과서는 물론 자잘한 가재도구까지 쓸어안고 탕탕하게 흘러가는 광경은 불구경 이상으로 재미있었던 것이다.

흙탕물이 가라앉고 하늘이 빠끔해질 양이면 천렵나서기에 제격이었다. 개들은 눈오면 좋아한다지만 물고기들은 큰 물이 지나고 나면 꼬리에 힘이 붙었다. 어디 숨어있다 모였는지, 논배미를 실하게 채우고 넘쳐나는 물꼬 아래로는 미꾸라지 붕어 피라미 모래무치 등속이 몸부비며 물맞이에 바빴다. 하도 득시글하게 꼬이는 터라 한 번 망을 긁어 올릴 때마다 한 사발 이상 족히 채워졌다. 검정고무신 내동댕이친 패들은 짝지어 그물을 대고 혹은 흙탕치며 고기를 모는 사이 이 근처 연못에서는 청년들의 본격적인 투망질이 시작되어 잠시후 제방 느티나무 그늘 근방으로는 그럴듯한 냄새가 사방에 퍼져났다. 된장은 물론 애호박 풋고추 감자 등 갖가지 부재료까지 챙겨왔겠다, 맛내기에 일가견이 있는 형들의 부산한 손놀림을 보는 동안 우리 입안에는 이미 침이 고였다. 맵다 맵다 하면서도 입가를 벌겋게 물들이고 더달라 대들던 꼬맹이들, 아직 오염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 자연친화 시절의 빛바랜 흑백 사진이다. 그때가 그립다.

솔직히 말해 이 추억은 한탄강의 독물에 몰살된 물고기 사진을 보면서 되살아난 것이다. 사진에는 강 가장자리로 월척의 붕어 웅어 등속이 허연 배를 드러내놓고 수만마리가 몰살돼 있었다. 시커먼 독물은 변함없이 살벌한 배경을 연출하고 있고 독물에 취해 몸부림 치다 죽은 수만마리의 물고기들은 다시 파리떼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장 폐수 배출업자들을 욕하고 그들을 성토하는데 열을 올리고 나니 갑자기 내 자신이 머쓱해짐을 깨달았다.

이런사안을 두고 우리중에서 누가 면죄부를 누릴 수 있나. 그건 공장하는 사람
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하나하나 짚어가자면 다 공범자에 해당할 것이다. 강을 죽이고 바다를 죽이고 하늘을 오염시켜 먹을 것은 있으되 목에 넘길건 없게된 작금의 상황은 근본을 모르고 생각없이 살아온데서 연유한다. 만물이 지닌 생의 가치와 뜻을 왜곡한, 아니 타자의 생을 무시해버린 데서 생긴 필연이다. 가난을 적으로 알고 참으로 열심히 일한 덕에 등따습고 배가 부르게 되었는가 했더니 과식한 너머지 이제 다이어트에 정신들이 없다. 정신적 궁핍이 지나치다 보니 희극만 성해간다. 자비심을 베풀 아량들을 회복하는게 소중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나만" "우리집만" "남한만" "인간만"하는 식으로 이기심의 날을 세워선 안된다.

신라적 혜공스님은 어느날 원효스님과 물고기 새우등속을 천렵해 드신후 서로 법담을 나누다가 같이 용변을 보게 되었다. 일보면서 혜공스님이 바위아래를 가리키며 혼자 낄낄대길래 옆을 훔쳐보았다. 순간 스님도 허리를 쥐고 웃어제꼈다. 퐁당퐁당 변이 떨어질때마다 그것들은 물고기로 변해유유히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만물이 다 존귀함을 불교적 자비로 보듬고자 하는 이 설화는 웃음보다 더 날카로운 경구가 되어 머리를 후려 때린다. 불교적 이적도 그만 두고, 방생은 그만두고, 그저 산 물고기를 더 이상 몰살시키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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