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강요하거나 권위적으로 지시하는 사람과 얘기할 때는 강한 반발과 분별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말투도 부드럽지 못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안녕히 계십시오’예요. 공연히 시간 들여서 이것을 극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껴 썼어도 차가 완전히 고장 났을 때는 폐차하는 게 나아요. 쓸 만한데 버리는 게 문제지요. 이렇게 말할 정도면 굳이 이것을 개선하려고 하지 말고 관계를 청산하세요. 만약 직장 상사라면, 현재 200만원 월급 받는 데서 100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직장을 옮기는 게 낫습니다. 아마 말은 안 했지만 부부지간이든 직장 상사든 피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질문했겠지요. 그런데 지금 말한 것보다도 다른 이해관계가
결혼할 시기가 좀 지났습니다. 다만 힘든 것을 극복할 만큼 강한 힘이 생겼을 때 결혼하고 싶습니다. “궁하면 열린다, 당하면 한다.” 이런 말이 있어요. 대부분의 부모들도 힘든 부모 역할을 극복할 준비가 된 뒤에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부모가 된 뒤에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게 극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몇 번 죽을 고비, 몇 번 이혼할 고비를 넘기며 세월이 한 30년쯤 흐르다 보니까 지금은 그냥 포기하고 같이 살거나 서로에게 적응해서 사는 거예요. 그러니 결혼하고 싶으면 이런저런 조건 따지지 말고 그냥 하세요. 그러면 살든지, 못 살든지 결론이 빨리 날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해 보고 이건 정말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나도 좋은 경험의 하나입니다. 앞으로는 결혼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을 테니까요. 결
여섯 살 난 막내가 특이한 병을 앓았습니다. 후유증으로 30년 후 심근경색이나 급사의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문제로 마음을 졸이고 가슴 아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 중 첫 번째로 겪는 것이 대개 부모의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게 배우자의 죽음이고, 그보다 더 큰 충격이 자식의 죽음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부모가 죽으면 그 충격이 굉장히 크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부모가 죽는 것보다 배우자가 죽으면 그 충격이 더 큽니다. 왜냐하면 현재 의지하고 있는 존재가 배우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식의 죽음은 내가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잃어버린 것과 같은 허
기도 중에 자기 마음이 올라오는 걸 보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느끼고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화를 내면 얼굴 표정이라든지 목소리라든지 몸의 동작이라든지 이런 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의 작용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화를 내는 마음의 작용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이 하나 있고 ‘화가 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걸 말하고, 화를 낸다는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걸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화를 낼 수도 있고 안 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반면에 화가 나는 것은 내 의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팔을 올리고 내리는 건 내 의지와 관계가 있지만
도반과 갈등이 있을 때 내 안으로 돌려 내려놓으려고 애쓰지만 돌아보면 참는 결과가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자기중심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특징이에요. 자기중심성이란 사물을 인식할 때 자기를 기준에 놓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 뒤, 좌, 우를 말할 때 실제 공간상에 앞이 있고 뒤가 있고, 좌가 있고 우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을 기준으로 한 앞과 뒤, 좌와 우가 있다고 인식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기준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남편은 남편 기준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자식은 자식 기준에서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럼 자기 기준을 왜 갖게 될까요? 사물을 인식할 때 자기를 중심에 놓고 인식
딸아이가 명상수련을 했는데 수행을 잘못했는지 미간이 상기가 되고 코로 숨을 잘 못 쉬고 잠도 깊이 들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수행과 수련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자들 1% 중에 99%는 수련을 수행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수련은 잘하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법이 아닙니다. 해탈로 가는 길은 아니란 말입니다. 수행은 자기 업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 다시 말해 카르마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하다가 부작용이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이나 단련은 하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게 되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기가 가진 돈을 세상에 필요한 데 쓰게 되고, 봉사하고픈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반면에 수련의 경우 힘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때 항상 불안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데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요. 심리상태가 불안하고 근심 걱정이 많은 것은 현재에 집중하지 않고 늘 미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은 좋은데 미래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불안해집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과 미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건 차이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로잡힌다 할 때는 그것이 머릿속에서는 현재로 인식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마음에서 불안, 초조, 근심, 걱정이 일어나는 겁니다. 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기억이 일어나는 것은 괜찮아요. 그런데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면 현재처럼 느껴
이틀에 한 번 정도,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립니다. 이틀을 넘기게 되면 어머니는 바로 전화를 하십니다. 그런 날은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나며,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집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곳인 동시에 우리를 속박하는 곳입니다. 집, 고향, 부모가 똑같습니다. 떠나면 그립고, 그래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그렇지만 돌아오면 속박을 느끼게 됩니다. 집에서 나오고 싶고, 고향에서 나오고 싶고, 부모 곁을 떠나고 싶어집니다.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어릴 때 집이 가난했든지 부모의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았든지 해서 한편으로 나를 보살펴 준 부모의 고마움과,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너무 억압하고 속박한 부모에 대한 거부 반응이 지금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는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무의식적으
남편이 5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며 구속된 후 회사 여직원과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1년 후면 남편이 출소하는데 제 마음 속에는 미움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이 얘기에서 원리를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남편이 회사 여직원하고 몇 년 살림을 살았는데, 그때는 내가 몰랐기 때문에 하나도 괴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그 여직원과 살지 않고 감옥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도 나는 괴롭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괴로움이 ‘남편이 그 여자하고 살고 있느냐 아니냐’에서 온 게 아닙니다. 괴로움은 다 내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문제 삼지 않았으니까 괴롭지 않았고 지금은 문제 삼으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시어머님은 어려움 속에 살아서인지 사납고 거칠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절에 다닌다고 사주가 바뀌느냐며 절에 가는 것도 반대합니다. 시어머니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랐는데 결혼해서 남편까지도 잃었어요.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해서 보호받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억척스럽게 오직 생존의 본능으로 살았습니다.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싶었고 결혼해서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 키우면서 아들로부터도 뭔가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강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심리현상으로는 아들이 아들인 동시에 부모이고 남편입니다. 때로는 아들을 부모삼고, 때로는 아들을 남편삼고 살았기 때문에 그 아들에 대한 집착이 엄청납니다. 이런 것들을 잘 살피
절에 오시는 분 중에 주부나 연세 드신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왜 그럴까요?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깨달음이나 종교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일까요? 첫째, 낮에 여성이 많은 것은 지금 우리나라에 직장에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녁 법회에 오면 남성들도 많습니다. 둘째, 남성들은 인생살이를 살 때 힘들고 어려우면 그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여성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반면 여성은 뭐가 안 되면 남한테 의지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원래 불법은 이렇게 의지한다고 해서 누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절에 여성이 많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자기 인생의 고민이 있
딸만 여섯 낳은 어머니를 아버지는 무시하고 늘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불쌍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머니가 자꾸 미워집니다. 옛날부터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 된다는 말이 있지요. 따라 배우거든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보고 자라면 ‘엄마를 구박하면 안 된다. 아버지가 나쁘다. 우리가 엄마를 잘 보살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식 또한 자라면 엄마를 구박합니다.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카르마, 업이라는 겁니다. 아버지가 어릴 때 술주정을 하면 아이들이 자랄 때 그게 싫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안 해야지’ 하는데 그 아이가 자라면 또 술주정을 합니다. 부모가 이혼을 해서 그 밑에서 고통을 받으면 ‘나는 결혼하면 이혼만은 하지 말아야지’
남편은 술버릇이 나빠서 술을 마시면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또 행패를 부릴 것 같으면 가족 모두 집을 나와 남편 눈에 뜨이지 않으면 됩니다.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할 때 효과가 없으면 안 합니다. 남편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도 없으면 행패를 부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살림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어야 부수는 재미가 있고, 저항하는 사람이 있어야 행패를 부리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하든 무슨 소리를 하든, 더한 폭력을 막기 위해 남편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당신이 왕입니다.” 숙이기만 하면 절대 주먹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남편들이 말로 부인
최근에 결혼을 약속한 사람의 어머님이 아들과 저의 궁합이 나쁘다며 결혼을 반대하여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점보는 일을 금하셨다고 하던데 이렇게 궁합을 맹신하는 것이 온당한 건가요.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 말이 오가면 어머니들이 성, 본, 재산, 학벌 등을 놓고 따집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을 갖고 반대하고 어떤 사람은 궁합이 나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어떤 사람은 학벌이 처진다고 반대하고 어떤 사람은 인물이 못하다고 반대합니다. 다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가치에 따라 따지는 것입니다. 궁합도 그런 기준의 하나일 뿐인데, 유독 궁합을 보는 것만 문제 삼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가난한 집 자식이라고 퇴짜 맞았다든지 학벌이 좋지 않다고 퇴짜 맞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런 경우는 억울하지 않고 궁합이 나빠서 퇴
많은 사람들이 질병, 사고 등으로 죽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죽으면 천당에 간다든지 지옥에 간다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당과 지옥이 정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있다는 주장과 없다는 주장만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이런 건 ‘맞다, 틀리다’ 하고 따질 가치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불법은 진실을 가르치는 가르침입니다. 불법의 가르침에 따라 살펴봅시다.질문자가 죽은 후에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불교에서는 저렇게 말하고 유교에서는 또 다르게 말하지요. 이렇게 대답이 다른 이유는 서로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례 치르는 방법도 다 다르잖아요. 티베트 사람들은
제 의식 세계는 남편을 이해하는데, 어떤 때에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불쑥 생겨남이 알아차려 집니다. 그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제가 답답합니다. ‘내가 남편을 무시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저 깊은 마음속에서는 늘 무시하고 외면하는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구나’ 하고 내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걸 자꾸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데 안 되니까 답답한 겁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알아차림이 지속되면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한 발 한 발 가면서 도달하는 거지 도달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마음이 너무 앞서가고 있는 거예요. 그냥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내 마음 밑바닥에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걸로 끝내
욕심이 많습니다. 공짜로 제공되는 것도 두 개를 받아야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현상은 제 삶의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책이나 영화, 음반 등 각종 자료들도 제 것이 되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이것은 욕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병입니다. 중독성이 강한 병입니다.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은 단계를 넘어서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가 되어서 필요하든 안 하든 무조건 사야만 마음이 진정된다면 이것은 쇼핑중독에 속합니다. 밥 먹고 나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혼미하고 손이 떨린다면 이것 또한 중독에 해당합니다. 중독일 때의 치료법은 무조건 끊는 것입니다. 점점 끊는다거나 줄이는 것은 치료법이 아닙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무조건 마시지 말아야 하고 담배
아이를 가지려 합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기 전에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요. 아기를 가졌을 때에는 다음 몇 가지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음식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둘째, 아이가 생기고 4주가 되기 전, 즉 각 부분으로 세포분열이 일어나기 전에 신경을 과도하게 쓰게 되면 아이의 이목구비의 형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유전인자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데도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청각장애라든지 시각장애라든지 심장이 약하다든지 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는 엄마의 과민한 신경에 영향을 받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은 아기를 뱃속에 갖고 있는 동안 나쁜 마음을 내지 않고 아주 좋은 마음만 냈습니다. 그것을
범죄를 저지르는 등 나쁜 일을 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화가 미치나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죄는 인간이 나빠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무지해서 일어납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처음에는 피우면 좋은 줄 잘못 알고 시작합니다. 무지로 인해서 시작했는데 그것이 한 번, 두 번 계속되면 습관이 되어서, 이제 나쁜 줄 알아 그만 멈추고 싶어도 그 습관 때문에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경우, 두 가지 과제를 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무지를 알아차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알아도 개선되지 않으니 지속적으로 꾸준히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미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순간순간에 깨어 있어라. 깨어 있지 못해 일을 저질렀을 때는 뉘우쳐
몸이 피곤해지면 화와 짜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집니다. 아들이 많은 집안 딸이란 이유로 일이 많고 이것이 나중에 분노와 억압으로 쌓인 것 같습니다. 피곤하면 누구나 다 짜증이 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피곤하지 않도록 일을 조절하는 방법밖에 없지요.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이렇게까지 일할 거 있나.’ 이렇게 좀 편안하게 생각하고 살아보세요.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정말 힘들게 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짜증이 나지만 정말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싶으면, 책상 앞이나 눈에 잘 띄는 곳에다 이렇게 써 붙여 놓으세요.“나는 몹시 피곤할 때 짜증과 화가 난다. 그것도 폭발할 때가 있다.” 이렇게 하면 피곤해지기 시작할 때 몸이 먼저 경계를 하면서 자신을 지켜보기 시작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