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친구를 사귀게 됐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고 있는 친구이고, 제가 보기에는 성격도 좋고 배울 것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예전 남자 친구의 좋은 조건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십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첫 번째 사람과 성격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두 번째 사람이 성격은 좋으나 재산이 없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선 본 남자가 직장이 좋은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내 욕심’입니다. 부모가 권유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인물, 성격, 재산, 학벌이나 집안 배경 등을 모두 갖춘 남자가 있다면 질문하시는 분에게는 번뇌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 보통 한 눈에 반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한 눈에 반한다
한 가지 일을 하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 하나에만 몰두하여 신경을 씁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으면 옆에서 다른 사람이 불러도 잘 듣지 못합니다. 친구가 몇 번씩 불렀는데도 알아듣지 못한다며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내가 질문자에게 큰 못을 하나 주면서 이 못으로 바늘을 만들라고 하면, 큰 못을 갈아서 작은 바늘로 가늘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 작은 바늘을 여러 개 주면서 이것으로 큰 못을 만들라고 하면 여러 개를 함께 묶든지 전부 녹여서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만들려고 해도 힘들고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만드는 일도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작은 것은 바늘로 쓰고 큰 것은 못으로 쓴다면 고칠 것이 없어 힘들 일도 없습니다. 솜은 부드러워서 좋고 쇠는 단단해서 좋습니다.
종교가 천주교입니다. 지난해 위암 수술 받고 송사에도 얽히는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을 겪었습니다. 퇴마사라는 사람이 내 몸에 귀신이 둘 씩이나 있다고 당장 쫓아내지 않으면 해코지를 한답니다. 천주교 신자라고 하시니까 먼저 종교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질문하신 분은 믿음이 부족하네요. 천주교인으로서 믿음이 강하다면 “사탄아, 물러가라. 내 신앙을 시험하지 마라”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신앙에 중심이 없어서 그런 말에 흔들리는 겁니다. 천주교인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뭔지 알아야지요.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그분의 삶이 어땠는지,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살펴보세요. 그분은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여, 저
파이는 하나인데 그 파이를 나누어 먹기 위해서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이 불행해져야 되는 상황이 힘듭니다. 부처님께서는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십시오”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늘날 우리들의 행복이라는 게 다 이렇습니다. 내가 시험에 걸렸다고 기뻐할 때 누군가는 떨어져서 슬퍼하지요. 내가 선거에 당선됐다고 축하 받을 때 누군가는 떨어져서 낙담하지요. 내가 입찰에서 걸렸다 할 때 누군가는 떨어져요. 이게 세상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승리의 기쁨만을 바라고 패배하는 사람의 고통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생의 한 면만 보지 말고 양면을 다 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생의 현실을 꿰뚫어보는 지혜로 고통 받는 사람을
직장에서 다면평가라고 해서 직원들이 서로 평가하는 게 있는데, 제가 거기에서 2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이성적으로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받아들이지 못해서 힘듭니다. 객관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4명을 두고 10명한테 평가하라고 하면 어차피 다 1등으로 평가할 수는 없고, 1, 2, 3, 4등으로 평가해야 하잖아요? 1등을 한 사람은 10명이 모두 1등으로 평가를 하고, 2등을 한 사람은 10명이 모두 2등으로 평가를 한 건 아니지요. 어떤 사람이 1등으로 평가한 사람을 다른 사람은 3등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4등으로 평가한 사람을 다른 사람은 1등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 각자가 받은 점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때
60대 때 IMF를 맞게 되어 투자했던 것들도 휴지 조각이 되고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만혼인 자식의 혼사까지 문제가 되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가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질문하신 분이 재산도 많이 모으고 사회적 지위도 누리며 살다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오십 대에 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재산도 잃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칠십 세까지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일찍 죽은 경우에 비하면 복 받은 일 아니겠습니까? 재산을 잃고 그 대가로 지금의 건강과 수명을 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재앙이 아니고 굉장한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두 눈이 있어서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서 들을 수 있고, 두 다리가 있어서 걸을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이라는 말은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상이란 것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기준이고 에너지고 추진력이라 봅니다. 상을 가지지 말고 보시하라든지 뭘 하라고 한다면 이 세계의 발전이나 변화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내가 좋은 것이 마음의 성질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거든 남을 좋아하고 사랑하라는 겁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데 산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산을 미워하게 되지는 않지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바라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회사에 가려고 하면 너무 괴로워서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자신이 처량하기도 하고 가슴도 답답합니다. 그만두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요즘처럼 취업이 안 되는 시기에 그런 대기업에 다시 들어가기 힘드니 버텨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담배를 안 피우는 친구한테 “이 담배 좋으니까 한 대 피워봐라”라고 말합니다. 그 친구가 피워보니 목구멍이 따갑고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옆에서 자꾸 좋은 담배라면서 부추기니 또 피웁니다.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기침도 콜록콜록 해가면서 피웁니다. 안 피우면 되는데, 너무 좋은 담배라고 하니까 아까운 거예요. 안 피우기는 아깝고 피우려니 목도 따갑지만, ‘괴롭다, 괴롭다’하면서 계속 피웁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지금 다른 사람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부러워하며 그
어릴 때부터 상대방이 좋아하는 일을 미리 알아서 해드리고 항상 칭찬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결혼 후 알아서 해주니까 신랑도 좋아하고요. 남들에게 싫은 소리나 행동을 안 하고 살아서인지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굉장히 힘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내놓더라도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은 버리더라도 권력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며, 어떤 사람은 돈과 권력은 버리되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질문자는 이 셋 중에 어디에 속하냐 하면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힘이 좀 더 들고 내가 고생을 좀 더 하더라도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이것도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과 똑같이 그냥 인간의 이기심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돈을
남편이 여섯 살 아들과 네 살 딸에게 달래거나 타이르지 않고 명령조로 이야기하거나 아이들한테 무관심해 화가 많이 납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 이 문제를 개선하고 싶다면, 혼자서 속으로 끙끙대지 말고, 화내지도 말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본받고 자라는 것인데 당신이 이렇게 자주 화를 내면 아이들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해주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면서 더 이야기해 보십시오. 정말로 진지하게 거듭거듭 이야기했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이것은 고쳐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입니다. 고쳐질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일을 계속 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너무 많고 눈치를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싫은 소리도 소화해 내지 못합니다. 남편에게 먼저 싫은 소리를 해 보았는데, ‘이기적인 사람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사람이 아니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자기는 남을 배려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언제나 손해 보는 인간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이 안 나는 겁니다.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본인이 상대를 배려해서 그런 게 아니고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상대에게 어떤 얘기를 하면 상대가 내 말을 꼭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거예요. 그래서 눈치를 보면서 안 들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말을 안 하는 거예요. 이건
절을 하면서 지나간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부끄럽고, ‘지금 착하게 산다고 해서 그런 것에서 다 벗어날까, 인과가 없어지는 게 아닌데’하는 생각에 참 두렵습니다. 불법 만나기 전에 어리석어서 나도 모르게 온갖 못된 짓을 많이 했으면, 인생살이에 여러 가지 재앙이 따르겠지요. 부처님처럼 위대하신 분도 성도하신 뒤 45년 동안이나 중생을 교화했는데도 세상에서 부처님 비난을 많이 했어요. 온갖 욕을 다 얻어먹고 살해 위협도 받고 자기 친족이 살해당하는 일도 생겼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깨달아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비난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여여하셨어요. 그러니 나쁜 짓을 하고 비난받는 것 정도야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마음을 내
위기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역할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상담할 때 가슴이 벌렁거리고 떨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상담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 선택한 길,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분이 하는 일은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도와서 그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니 참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좋은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힘이 들까요? 그건 자기가 이 아이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일이 부담스러운 거예요. 신도 중에 의사 선생님이 있는데, 이분은 환자를 만날 때마다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곤 했어요. 그런데
어릴 적 엄마가 저에게 했던 욕이나 폭력 등이 생각나 펑펑 웁니다. 어떤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봐야 하나요.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는 게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자식이 어리다고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때 어머니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거나,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리고 삶이 너무 고달파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한 것이지요. 말은 엄마지만, 그때 엄마는 나이가 겨우 서른 몇 살밖에 안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서른 몇 살이면서 애 한둘 낳아 키우는 여성들을 보면 온갖 눈물과 하소연을 하고 삽니다. 그 나이가 그렇게 사는 나이 아닙니까? 그러니 애가 울고 떼를 쓰면 두들겨 패기도 하고, 야단도
얼마 전에 가출 청소년 두 명이 갈 데가 없다고 해서 집에 데리고 와서 재웠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찾아와서 또 재워주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얘기해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세요. 길거리에서 굶어죽든 얼어 죽든 놔두고 그냥 다니세요. 그런데 ‘아, 정말 안 됐다’해서 마음을 낼 양이면 그냥 보살펴주지 간섭하지 마세요.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잠잘 데가 없다고 하면 그냥 재워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을 주는 겁니다. 오늘 잘 데 없다고 오면 재워주고, 내일도 잘 데 없다고 오면 재워주고, 모레도 잘 데 없다고 또 오면 또 재워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벌써 ‘한 번만 재워주겠다. 나는 너한테 딱 한 번만 도움을 주겠다’며 세 번째에
저는 한 3년 동안 부지런히 정진했습니다. 행복에 잠겨 있던 순간, 3년 공덕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지 화가 올라오고 잘 돌이켜지지도 않습니다. 화가 나면 한번 실컷 화를 내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나한테 이로운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마치 마약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은 것처럼 화를 벌컥 내버리면 일시적으로는 좋습니다. 그러나 부작용이 따르죠. 시간이 경과되면서 그것이 도로 몸을 해치거든요. 이게 나한테 돌아오는 과보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아서 화가 나도 화를 안 내고 참으면 이것 또한 내가 괴롭죠. 스트레스를 받아서 목이 뻣뻣해지고 눈이 침침해지면서 괴로워집니다. 이렇게 참다가는 화를 더 크게 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화를 내버리면 당장에는 속이 시원합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사장님은 컵라면 물도 다 부어서 가져다 드려야 되고 먹던 것을 그대로 두고 나가면 다 치워야 하고 커피까지 가져다 드려야 됩니다. 자꾸 마음이 가라앉고 기운이 없어집니다. 질문하신 분이 괴로운 것은 자기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가 그리고 있는 어떤 상상에 빠져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혼자 있는 게 아마 그것을 더 부채질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해결책은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입니다.첫째 결혼을 하든지 결혼을 못 하면 남자친구나 애인이 있어서 연애하는 재미라도 좀 붙이면 직장에서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그러면 자신의 형편을 비관하지 않게 됩니다. 정말 그 돈이 필요하다면 라면 끓여주고 커피 끓여주는 그게 뭐 그리 대수겠어요. 시간이 남으면 이렇게 앉아서 불평하지 말고 공부를 하세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니까 부딪히는 문제가 생기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잘 자라게 될까요?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어머니의 순수한 소망이지만 한편으로는 욕심입니다. 욕심으로 애를 키우면 잘 클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욕심으로 애를 키우는데 어떻게 애가 잘 클 수 있겠습니까? 애를 잘 키우고 싶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보세요. 자식은 어차피 부모를 닮습니다. 자신을 닮으면 아이들이 훌륭하게 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사춘기 아이하고 부딪히는 수준이라면, 그 수준의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식을 훌륭한 성인으로 키우고 싶으면 부모가 그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부터 변해야지요.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려면 지금부
남자친구에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는데 오해를 사서 헤어졌습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이러저러한 현실 때문에 그에게 다가가기가 두렵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말할 시기 너무 고르지 말고 먼저 전화 걸어서 만나서 얘기 좀 하자고 해 보세요. 만나기 싫다고 하면 전화로라도 얘기할 테니 시간 좀 내라고 얘기해 보고 그것도 싫다면 끊고, 얼마 있다가 또 한 번 더 해 보고 그 때도 싫다고 하면, 얼마 있다가 또 해 보세요. 이렇게 끙끙 대며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실제로 시도해서 한 3분 보내는 게 시간을 훨씬 효과적으로 쓰는 겁니다. 우리는 대부분 끙끙 대는 데 시간을 다 보내요. 해명하고 싶은데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상대의 의사를 당연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