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서 오랫동안 저의 관심은 내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 나의 독창성을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많은 훌륭한 예술가에게 영향을 받아왔는데, 그 영향을 너무 오랫동안 지녀온 것 같습니다.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세월이 흘러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그 스승의 예술 세계를 계승하든지, 둘째 일찍 독립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스승의 영감을 받아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걸 떠나 자기대로 하고 싶어 한다면, 이런 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지금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 없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부모는 나를 보살펴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나를 속박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보살핌은 받고 속박은 안 했으면 좋겠다’
아들과 딸이 30대입니다. 그런데 둘 다 취직 시험 공부를 4년씩 하고 있는데도 취업에 매번 실패합니다. 성실히 공부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둘 다 결혼을 시키고 싶어 합니다.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길이라고는 기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에게는 정을 끊어주는 게 자식에게 도움이 됩니다. 나는 자식을 위해 기도도 하고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러한 나의 행동이 자식한테는 억압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됩니다. 취직 시험을 보든 말든, 결혼을 하든 말든, 스무 살이 넘었으니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게 내버려두세요. 애정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라 간섭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른 집 애들 보면 벌써 그 나이에 사고 쳐서 감옥 가 있
절에 다니기 전에는 항상 복이 와주기를 바랬고, 지을 생각은 전혀 못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 귀의하고부터는 복을 지어서 받을 수만 있다면 복을 지어서 받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복을 받고 싶다, 이것은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복은 받고 싶다고 해서 받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이,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된다는 겁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만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는 않고 거두려 할 때 거둘 게 없으니까 괴로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복을 받으려거든 복을 짓고, 복을 짓지 않았으면 복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을 짓지도 않고 복을 받으려고 하거나, 또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입니다. 확실하게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영상 편집이나 사진도 좋아하고 봉사하는 것도 좋아해 선재수련도 다녀왔습니다.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해보면서 좋아하는 걸 찾으려 했는데, 뭘 하더라도 좋아합니다. 왜 꼭 ‘나는 무엇을 해야 된다 하는 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부터 난 뭘 하겠다, 뭘 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 이렇게 결정이 되면 결정이 되는 대로 좋은 것이고, 그런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도 좋습니다. 사람은 다 다릅니다. 때문에 ‘나도 남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나도 남처럼 무언가가 되어야 할 텐데,
직장에서 싫어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금방 싫은 표정이 나타나면서 말수를 줄이게 됩니다. 또 회사에서 일 년에 두 번씩 업무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평가를 할 때 상사에게 아부하는 직원 때문에 일의 잘잘못이 바뀌고, 평가 결과가 뒤바뀌는 걸 보면서 억울하고 분합니다. 어떤 직원은 말이 많고 어떤 직원은 능력이 없고 어떤 직원은 남 험담하고…. 얘기를 들어보면 다른 직원들은 다 본인보다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질문자는 그들보다 먼저 승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보다 못한 사람하고 같이 일을 한다는 건 내가 승진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일입니다. 다른 동료가 나보다 일도 잘하고, 인격도 고상하고, 나보다 저런 면에서 더 낫고. 본인이 보기에 어쨌든 다 문제가
서른이 넘은 고시생입니다. 20대 중반부터 고시 공부를 했는데 그땐 지혜롭지 못해서 경계에 많이 끄달리고 심신이 불안정해 자기 관리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서는 많이 안정이 됐고 고시에 합격하겠다는 의지도 변함이 없는데 지나치게 나태해지고 강도 높은 공부를 못 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고시공부를 그만 두면 좋습니다. 고시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한 번 해봤으면 됐습니다. 고시공부 못 해본 사람 많이 있지요? 그러니까 자기 생각에는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점이 실패한 게 되지만 다른 사람이 생각해 볼 때는 고시 공부를 해봤다는 것도 인생의 성공에 들어갑니다. 저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다가 정복 못 하고 내려왔다고 하면 그 사람은 실패라고 합니다.
구청 세무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업무 특성상 세금에 대해 설명하면 대부분은 수긍하시지만 열에 한둘은 조세저항을 하거나 아주 강한 항의를 합니다. 법에 따라서 행정적인 일을 할 뿐인데 그런 일이 반복되니 스트레스도 받고 두렵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오래된 직업이 몇 가지가 있는데 세금 걷는 것도 그렇습니다. 조세저항이라는 것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어요. 그래서 사회가 부정부패해지면 세금이 불공정해집니다. 세금이 불공정한 것에서 비롯한 조세저항은 주로 세리한테 1차적으로 다가옵니다. 성경에도 나오잖아요. 세리가 얼마나 독한 사람으로 묘사됩니까? 적이 많단 말입니다. 그래서 폭동이 일어나면 세리들이 제일 먼저 맞아죽습니다. 조선시대 삼도민란이 일어날 때도 백성들이 일어나서 제일 먼저 때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제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깊은 고민도 없이 엄마가 이 대학 가라면 가고 임용고시 준비하라면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매번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선 엄마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놓고 의논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옛날에는 스물여덟이면 시집가서 자식이 서넛은 되는 나이입니다. 애들을 책임져야 되니 세상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이였습니다. 그럴 나이인데도 너무 오랫동안 엄마 그늘에서 살다 보니 자립심이 무뎌지고 의지심이 커져서 엄마의 그늘에서 탈출하려는 반발심은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못 잡아서 헤매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인공사육으로 새끼 곰을 키워
12년 동안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 두고 네 달 전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라 잘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잘 안 되고, 초기 자본금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투자금이 계속 늘어나니 초조함과 조바심에 힘이 듭니다. 어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경기가 호경기로 돌아설 때 시작을 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지 이렇게 불경기일 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일단 사업 시기를 잘못 선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해서 쉽게 될 것 같으면 사람들이 왜 직장을 다니겠어요? 종업원으로 있으면 사업주가 자본을 모으고 밤새도록 궁리하는 건 안 보이고 큰 책상에 앉아 지시하는 것, 이익을 많이 챙기는 것만 보이니 경영이 얼마나
아이가 고3 인데 고1 까지는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였는데 고2 올라오면서 많이 변했습니다. 부모에 대한 원망도 큽니다. 정신과 진료 결과 청소년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영어 수업을 하고 오는 날은 굉장히 예민해지고 밥도 안 먹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방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사람을 대하면 많이 불안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 듣고 싶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싫어도 자식을 위해 자식이 좋다면 뭐든지 할 마음을 내야 합니다. 자식에게 좋은 일이라는데 그 일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안 한다면 자식이 우선입니까, 내가 우선입니까? 엄마인 내가 자식보다 나를, 내 생각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말입니
여든이신 어머니에게 늘 사랑받지 못했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서른인 아들이 왜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냐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로 괴로워하다가 법문을 듣고 아들도 내 마음 같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불자로 만들고 싶어서 열성적으로 권유도 하는데 잘되지가 않습니다. 논을 한 마지기 가진 사람과 99마지기 가진 사람이 누구에게 논을 달라고 하는 줄 아세요? 99마지기 가진 사람이 한 마지기 가진 사람보고 달라고 합니다. 100마지기 채우려고 그럽니다.그것처럼 본인이 부처님 법 만나서 깨우쳤잖습니까? 팔순 어머니에게는 사랑을 안 준다고 불만이었고, 아들에게는 다 컸는데 왜 나에게 사랑을 요구하느냐고 불만이었는데, 어머니를 향한 나의 불만스러운 마음이 아들
16살 고등학생입니다. 욕심도 많고 질투심도 많고 바라는 마음도 굉장히 많아요. 그럴수록 제 자신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기가 힘듭니다. 그걸로 인해서 인간관계나 학업, 다른 활동에서도 심하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여기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는데, 이걸 집고서 “어떻게 하면 놓습니까?” 하고 묻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뜨거워 죽겠어요, 어떻게 놔요?” 답은 “그냥 놔라”. 우리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건을 집었다가 “앗! 뜨거!” 이러면서 그냥 내려놓잖아요. 근데 이걸 쥐고 뜨겁다 고함치면서도 어떻게 놓느냐고 자꾸 묻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덜 뜨거워 아직 쥐고 있을 만하든지. 또 하나는 뜨겁지만 갖고 싶든지. 그러니까 첫 번째는 덜 뜨거우면 좀 더 뜨거울 때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법문을 듣고 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많이 보내던 학원을 그만두고 저와 공부하거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영어를 안 시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는 주변 엄마들의 염려에 제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렇게 키우는 것이 우리 아이만 뒤처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지금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 아이를 보는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는 학원을 보내도 문제가 없고 보내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데, 학원을 보내놓고 스님 법문 들었다는 것을 빙자해서 자기 걱정하고, 집에 놔놓고는 또 주변 엄마 말 빌려가지고 내 걱정하고 있는 것이지 애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지금 얘기는 “나의 번뇌다” 이 말입니다. 나의
이혼한 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실상을 알려주고 싶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첫째도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고 둘째는 제 성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고소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도 됩니다. 남편을 미워할 때 자식에게 끼칠 영향을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남편과 헤어지더라도 아버지에 대해 훌륭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면 아이들의 무의식에 자기 부정으로 남아 아이들이 훌륭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 때문에 앞으로 속 썩어야 할 일은 남편 때문에 속 썩는 것에 최소 열 배는 넘는다는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자식은 앞으로 반드시 엄마 곁을 떠납니다. 남편이 떠날 때 도저히 너하
어릴 때 아버지가 성적이 나쁘다든지 해서 언니를 혼내는 걸 보면 많이 무서웠어요. 집이 빚에 넘어가고 난 뒤로는 큰집에 가서 살면서 아버지가 엄마에게 폭언을 하셨는데, 그 속에서 굉장히 무섭고 두렵고 눈치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이제 결혼해서는 남편이 하는 말들이 다 질책으로 와 닿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지금 그 정도로 자기 상태를 점검하고 있으니 일단 출발은 좋습니다. 너무 고치려고 애쓰지 말고 우선 지금 자신의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그다음에 조금씩 고쳐나가면 됩니다. 지금 상황을 파악하려면 기도를 조금 더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 눈치 보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긍정적이라고 보입니다. 그러니 또박또박 남편한테도 할 말이 있으면 해보세요. 그런데 남편에게 이야기할 때에는
누구나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이 좋아 부처님 법 만난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결혼할 때에는 남편과 이 속세에서 보살도를 이루면서 좋은 도반이 되어 잘 살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어렵고 지금까지도 해결이 안 됩니다. 질문하신 분은 남편하고 도반으로 재미있게 살고자 했는데 40년이 되도록 잘 안 된다고 하셨지요?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덕 높은 스승 만나기를 아무리 소원해도 아마 지금처럼 하시면 죽을 때까지 못 만날 겁니다. 오늘 본인 기분에 스님 덕이 높아 보이는 것일 뿐이지 나한테 싫은 소리하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거예요. 그래서 남편을 품었다가 놨다가 하듯이 스님도 ‘이 스님이다’ 했다가, ‘이 스님 아니다’ 했다가 그렇게 살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불법을 만나
학교에서 인기 있는 학생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나에게 어떻게 대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세요. 친구들이 좋아하는 사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사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어울릴 때는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학생을 좋아하지요. 또 공부 잘하는 학생도 인기가 있지요. 그런데 노래도 잘 못하고 춤도 잘 못 추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인기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상대의 말에 면박주지 않고 귀 기울여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또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도 인기가 있고,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나 자기 것 잘 챙기는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나면서도 ‘나는 저렇게 못한다’는 무기력한 마음이 듭니다. 여섯 살 때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는데 새어머니는 잘해주셨지만 저는 남동생과 자꾸 비교하면서 피해본다는 생각이나 원망하는 마음이 많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기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하고, 남편뿐 아니라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라는 것 속에도 이기심이 작용합니다. 그것이 중생입니다. 이러한 실상을 알아버리면 다른 사람이 이기적인 것에 대해서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 또한 이기적인 존재임이 사실인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 무지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하느라 힘
친구가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쓸 사람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를 믿고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습니다. 그런데 9개월 만에 사기당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남을 고발할 일이 생전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발을 하게 됐습니다. 평생 힘들게 번 돈을 갑자기 잃게 된 일도 괴롭고, 중간에서 소개해 준 친구도 원망스럽습니다. 돈을 못 받으면 집이 경매에 들어갈 형편입니다. 추석이나 설에 가족들 데리고 고향을 방문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다 죽었다는 기사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의도하거나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다가 비행기가 추락해 죽는 경우도 있고, 놀러가다가 교통
스무 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지금 마흔이 넘었는데도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밖에 나오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긴장을 하니까 안 피는데, 집에만 가면 혼자 있고 싶고 아이들도 가까이 못 오게 하고 담배를 피웁니다. 9개월 전부터 천천히 금연 시도를 해보는데 하루를 못 넘깁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범법 행위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흡연이 무슨 큰 잘못도 아니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전체 분위기가 점점 흡연자가 줄어드는 추세니까, 질문하신 분은 나쁜 일은 아니지만 시대에 뒤처지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자로서 수행을 하는 것은 어째든 해탈을 하기 위해서지요. 자식으로부터, 배우자로부터, 이 경계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 수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