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해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뇌사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차도는 전혀 없고 환자의 고통이 너무 심하니 보조기구를 빼자고 했고 형제들은 반대했습니다. 결국에는 두세 달 더 형제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제가 주장해서 보조기구를 뺐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님에게 불효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안락사니 존엄사니 이런 생각하지 말고 태어났으면 사는 데까지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죽으면 됩니다. 자살하면 안 됩니다. 또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됩니다. 또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사람을 억지로 살리려고 지나친 약물 치료를 해서도 안 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도 반생명적인 행위이지만, 일정한 신체의 명이 다해서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와 둘이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키우느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드셨고 저는 참 많이 별난 아이였습니다. 지금도 당신 기준에 못 미치는 자식이라며 아주 못마땅해 욕까지 하십니다.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두들겨 패서 키웠든 욕을 하면서 키웠든 아무튼 나를 키웠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모두 부모의 은혜를 입고 컸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만 갖는 게 제일 좋습니다. 키우는 과정에서 옷을 덜 사줬다든지, 학교를 덜 보내줬다든지, 말 안 듣는다고 매를 때렸다든지 하는 건 부차적인 것입니다. 만일 길 가는 사람한테 나 좀 두드려 패도 좋으니 키워달라고 하면 키워줄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딸이 임신 6주고, 며느리도 아이를 가지려고 합니다. 세상 이치가 인연법에 의한 것이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은 인연으로 좋은 자식을 낳을 수 있는지 딸과 며느리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설령 자식이라도 남의 인생에 상관하지 말고 내 인생을 똑바로 살아나가면 됩니다. 자식들이 아이를 어떻게 낳든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어머니의 태도입니다.인연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딸이나 며느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일입니다. 정말 아이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다면 처음 시집 왔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남편한테 참회기도를 하세요. “오늘의 내 모습은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라는데, 시집와서 사는 동안 당
자식을 키울 때는 먹고 살기 어려워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자식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지 못했습니다. 지금에 와 자식이 저를 원망하는데, 서운합니다. 자식들은 어릴 적에 부모가 어떤 음식을 해주었는지, 얼마나 비싼 기저귀를 채웠는지, 어떤 좋은 옷을 사 입혔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식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가 가난과 고생 속에서도 자기를 사랑으로 보살펴주었다거나, 아플 때 부모가 자신을 들쳐 업고 병원까지 뛰어갔던 일, 이런 것들이지요. 이런 기억들은 감동으로 남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자신이 고생하는 것을 아이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생 속에서
재물, 이성친구 등에 대한 욕심이 자꾸 생깁니다. 애인이 있어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보이면 그쪽으로 눈이 갑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좋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해서 다 욕심이 아니에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지요. 노력은 안 하고 그것이 공짜로 떨어지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죠. 그건 인과법칙에 어긋납니다. 노력하지 않으니 이루어질 수가 없고, 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데 이룰 수가 없으니까 화가 나고 괴로워집니다. 이렇게 욕심은 화와 괴로움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라는 거예요. 내가 100m 높이의 산을 오르고 싶으면 슬리퍼를 신고 올라가도 돼요. 그
최근 남자친구가 굳은 의지로 결혼하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그 후로 너무 무서운 마음이 들어 도망쳐 버리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힘든 결혼생활을 보며 자랐습니다. 수행 이전에 먼저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한 후에 다시 결혼을 생각해 볼 것인지 그 선택을 먼저 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 남자친구를 사귀더라도 가볍게 친구로만 사귈 뿐 결혼은 하지 않겠다, 평생 혼자 살겠다, 결혼이라는 것이 정말 싫다는 생각이 분명하고 흔들림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남자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나는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어릴 때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결혼에도 자신이 없
아이가 백일이 지났을 때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까지 친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를 ‘아이 딸린 혼자 사는 여자’로만 보는 것 같아 힘이 듭니다. 아이가 아직 일곱 살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자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할 때까지, 그러니까 적어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엄마 자신보다 아이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굳이 순서를 정한다면 여자로서의 권리보다는 엄마로서의 책임이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남편이 살아있든 죽었든 이혼을 했든 같이 살든 상관없이 엄마가 끝까지 아이를 책임지려 한다는 믿음을 아이가 가질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싶겠지만, 그런 것은 되도록 최소화하고 정신을 온통 아이
가족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소한 일에도 자꾸 짜증을 냅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정리정돈을 잘 하지 않고 어질러 놓기만 하는 그런 것들이 많이 짜증스럽습니다. 짜증을 내니 남편과 아이들이 정리정돈을 잘하게 되었습니까? 본인 마음만 괴롭고 답답할 따름이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자신에게나 가족들에게나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행동을 왜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을 되풀이한다면 그 사람은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임이 틀림없는데도 왜 자신이 그런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금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 그 깨달음이 가슴 깊이 탁 꽂힌다면 그동안의 어리석음은 오늘, 지금 길로 즉시 고쳐질 수 있습니다. 또다시 같은 어리석
아버지께서 집안일에 무관심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집안일을 자주 저와 의논하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와 갈등이 잦습니다. 미리 걱정하고 부정적일 때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어머니의 근심걱정과 잔소리에 화가 날 때, 모두 팽개치고 집을 나가고 싶은 때가 있지요? 아버지의 심정이 바로 그랬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아버지에게 참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데 대해서 죄송한 마음으로 잘못을 참회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뿐 아버지의 심정과 입장을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불평과 미움과 원망이 많았던 것입니다.
출산 후 몸이 몇 해 동안 많이 아프고 안 좋았습니다. 때때로 컨디션이 안 좋거나 아플 때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자꾸 몸에 집착하는 생각을 놓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원인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몸이 안 좋은 경우입니다. 정말 몸이 안 좋을 때는 쉬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병원에 가서 양의한테 검사를 해 보고 별 이상이 없다면 한의사한테 가서 진맥을 해 봐야 합니다. 이렇게 늘 몸이 안 좋은 경우는 몸 기능 자체보다는 우리가 말하는 카르마, 즉 업식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업병이라고 합니다. 업병인 경우에는 양방 병원에 가서 아무리 검진을 해도 이상이 없다고 하고, 한방에 가서 진맥을 해서 약을 몇 재 먹어도 별 효험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수
딱히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후회하지 않을 만한 무언가를 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항상 저 자신을 볶아대며 삽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고 인생은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불안하고 초조하고 후회스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인생은 저 길가에 피어 있는 풀 한 포기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숲 속에 뛰어다니는 다람쥐와 우리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닌 줄을 알게 되면 이러한 문제는 다 사라져버립니다. 우리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을 확연히 알아버리면 우리는 확실히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생일인데도 남편은 당직한 후 전화 한 통 없고, 저녁 같이 먹자고 했던 것도 잊었는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특별히 서운함을 느끼는 편이 아닌데, 남편이 무심한 것에는 많이 섭섭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이 볼 때 약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단지 어떤 점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것이 약점이 되는 것이지요. 상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바꾸면 됩니다. 아니면 그 약점을 수용하든지요. 남편에 대한 섭섭함을 참기 어렵고 자신에게는 무엇보다도 다정다감함이 가장 중요하다면 남편과 헤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편의 성격은 고쳐지기 어렵고 애정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닌 데다 그것
남자 친구가 감옥에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빌려서 그 친구에게 준 돈도 있었는데, 이제 그 돈 갚는 것도 제 몫이 되었습니다. 남자 친구가 걱정돼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는데, 이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에 정토행자 한 분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습니다. 아직 자식도 없는데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인과 형제들까지 있으니 모두들 슬퍼서 울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해 주고 나서 “슬퍼서 울 일이 아니니 울지 마시고 웃으세요. 그래야 좋은데 갑니다”하고 말했지만, 이게 어떻게 웃을 일이냐며 다들 슬퍼하셨지요.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몸이라는 것은 내가 걸치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옷이 다 떨어져서 속살이 보일 지경이 되었는데도 계속 입
밖에서는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지만, 가족들은 비난하기만 합니다. 이젠 제가 무섭다고 아예 떨어져서 살자는 말까지 합니다. 밖에서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바깥에서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적절히 자기 성질을 죽이고 연극을 할 수가 있고, 그럼으로써 좋은 평가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화가 나도 웃을 수 있고, 없는 돈을 보시할 수도 있고, 잘 차려 입고 나가 예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밖의 사람들은 내게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에 약간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면 대부분 나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일은 화장 지운 맨 얼굴을 보여주는 것과 같고 옷을 벗은 알몸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원래 성격과 습관이 그
밤만 되면 허전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직장 역시 다닌 지 3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계속해서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자꾸 두려움이 생깁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생긴, 일종의 애정 결핍증이 중요한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늘 채워지지 않고, 사랑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에 사람이든 직장이든 무엇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믿어줄까’, ‘저 사람이 나를 두고 가버리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일어나서 스스로를 먼저 방어하려는 것입니다. 그만두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두려 하고, 상대가 나를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늘 불안합니다. 사랑을
절에서 “부처님 가피로 세세생생 복을 누리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가피란 무엇인가요? 대부분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피를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부처님의 무한한 힘으로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피를 여러분들이 바라려면 기도를 간절하게 해야 합니다. 간절하게 한다는 말은 하늘이 감동할 만큼 간절해야 된다는 겁니다. 하늘이 감동할만한지 아닌지는 옆에 있는 사람이 감동하는지 안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남편이 감동을 하든지, 부모가 하는 걸 보고 자식이 감동을 해서 그들의 인간성이 바뀌어 버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먼저 사람이 감동해야 하늘이 감동합니다. 이해하는 것은 의식의 세계가 움직이는 것이고 감동을 하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가 움직
열세 살짜리 아들이 지난해부터 폭력을 가끔 쓰더니 올해는 집에서 꼼짝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 아이를 보살펴야 할까요? 제일 좋은 것은 직장을 다니고 계시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럴 형편이 못되면 남편한테 지극 정성으로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뼛속 깊이 뉘우쳐야 됩니다. 내가 완전히 마음이 숙여지느냐, 정말 남편이 부처님 같고 하느님처럼 받들어지느냐? 그게 아이 병이 낫느냐 안 낫느냐의 징표입니다. 아이에 대해 책임 의식이 있으면 그렇게 하고 그게 싫거든 아이를 못 고치니 아이의 과보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평생 아이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도 행복하고 자식도 행복하고 남편도 행복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지 2년여, 남편은 이혼을 원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시댁 일도 챙겼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두루 갖추어 놓고 살고자 합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입니다. 선과 악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의 심리가 일반적으로 그러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만족시켜 줄 것처럼 보이는 결혼 상대를 구하려고 하지만, 살아보면 현실은 기대했던 것과 달라 실망합니다. 결국 마음에 드는 사람과 살기 위해 이혼하고 다시 다른 사람과 결혼하든지, 또는 불만족스러운
아들이 한 달 전에 훈련소에 입대했습니다. 3일 쯤 후에 소대장님께서 전화하셔서, 아들이 대인 기피증이 심하고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너무 걱정됩니다. 걱정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 되지 않아참회기도하며 아들 스스로 극복하게 도와야 아들이 사람을 회피하는 것이 쓸데없는 행동으로 보이는 것처럼, 엄마가 아이를 걱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행동입니다. 엄마 자신부터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만, 아이도 엄마를 따라 배울 수 있습니다. 아들이 정상적이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엄마가 그 아이를 임신하거나 키우는 과정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놀림을 당했다고 해서 누구나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심리적 충격
맞벌이를 하는데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가 않고 늘 살기가 빠듯합니다. 백 년이나 천 년 전 생산력의 수준이 지금과 비할 수 없이 낮았던 시절에도, 삼십 년 전쯤 국민소득이 1000불이 채 되지 않았을 때도, 우리는 나름대로 잘 살았습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는 사실 자체보다,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맞벌이를 하는 데에도 집안 살림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지출이 늘어났거나 원하는 살림살이가 너무 높거나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집에서 살림을 할 때,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저런 잔심부름까지 시키며 큰소리를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남녀 성역할의 차이라기보다 남자가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