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입니다. 졸업을 앞두고 공사 중인 건물 탐방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내가 이런 건축 일까지 알아야 하는 걸까? 이 일이 정말 내게 맞는 걸까?’하는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사회 명사들이 청년들에게 조언하는 책을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런 게 정말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적성이라는 게 있는지, 아니면 제가 적성이라는 걸 찾아서 좀 더 편하게 살려는 욕심을 내는 것뿐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성이란 건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 되는 것이 꿈이었고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래희망에 종교인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종교인의 길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원래 과학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게 되었는데 더 이상 심리학을 공부할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심리학에 대한 회의가 드는데다가 공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면서는 제대로 공부하기가 힘이 듭니다. 휴학하고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을 때 다시 공부할 것인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자퇴하고 심리학 관련 자격증을 따서 그쪽으로 취업하는 게 좋을지 고민입니다. 본인의 실력이나 경제적 상황으로 볼 때 어느 편이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까? 무엇이든 그걸 선택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의 자세로 본다면,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 나중에 공부한다는 건 허황된 생각입니다. 본인이 꼭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굳건하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주말에 막
결혼 7년차 주부입니다. 그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는데 법문 들으며 불법을 공부하다 보니 괴로운 마음도 사라지고 아이가 없었던 게 오히려 부처님 보살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성격이 몹시 예민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며 긴장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자주 다투시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어린 시절에서 연유한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삶을 천방지축 함부로 살아갑니다. 지금이라도 돌이켜서 어리석음을 참회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옛날 얘기라서 잊어버렸다고 말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속에 남아있는 상처가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보이지 않게 살짝 덮여있을 뿐이지 하나도 없
어릴 적부터 늘 야단맞고 지적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만은 똑똑하게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다그치고 몰아세웠습니다. 격려하고 믿어주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제가 가장 많이 아이를 비난합니다. 아이가 저처럼 무능력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랄 것 같아 불안합니다. 지적당하지 않으려 긴장하고, 자책하고, 우울하고, 화나는 마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내 아이는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 질문자도 부모님과 똑같이 자식을 지적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게 업의 흐름입니다. 군대 가서 신입 졸병일 때는 상사가 되면 절대 기합주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기합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나중엔 더 심하게 굴곤 합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런 중생의 흐름에 따라 자기가 배웠던 그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교대에 가려고 세 번이나 수능에 도전하고 있는데, 자꾸 실패하다 보니 이게 정말 제가 원하는 일인지 아니면 주변 환경에 떠밀려 도전하는 건지 혼란스럽고 자신감도 떨어집니다. 부모님도 몸이 아프셔서 앞으로 제가 집을 책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찾아서 제 삶의 주도권을 쥐고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우선 교사는 포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갈수록 초등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교육대학을 나와도 선생님 되기가 어렵고, 더구나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하는 실력으로는 교대를 졸업한다 해도 교사가 될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그래도 기어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면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옳고 그름이란 본래 없으니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요? 또 스님께서 새만금 방파제나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말씀하신 걸 보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게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서울 가는 길을 부처님께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인천 사람이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 하실 테고 수원 사람이 물으면 북쪽으로 가라 하시겠지요. 질문하는 사람의 위치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라면 서울 가는 방향 자체가 정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치를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 합니다. 서울 가는 길을 오로지 한 가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천 사람에게는 동쪽이고, 춘천 사람에게는 서쪽이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남편과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미수금도 늘고 얼마 전에는 여러 거래처들이 부도가 나다보니 남편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남편을 보는 저 또한 많이 힘이 듭니다. 사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괴로워하고 힘들어 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나요?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건강만 해치게 되고, 사업에도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남편이 회사 일로 괴로워하는 것이나 그런 남편을 보고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괴로워하는 게 남편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데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것이 있습니까? 남편의 괴로움이 그의 인생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해만 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생각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보세요. 내가 지금 남편이
친정어머니를 만나면 자꾸 답답하고 화가 올라옵니다. 중학생인 큰아이를 보고 학원 다니는 게 불쌍하다 하고 작은아이에게는 초등학생 땐 그저 놀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정작 어머니 자신은 저를 키울 때 아주 심하게 공부해라 닦달하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 말을 들으면 그런 기억이 떠오르고 제가 아이들 키우는 방식에 자꾸 간섭하는 것도 화가 나서 결국 언쟁 끝에 좋지 않은 마음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이런 제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아이들이 이런 저를 따라 할까봐 두렵습니다. 나는 내 성질대로 다 하면서 아이에게 아무리 입이 닳도록 본받지 말라고 타일러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만날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아이들 보고 9시까지 들어오라고 하면 아이들이 겉으로 “예” 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아이들이 좋아 교사 직업을 선택했지만 성격이 내성적이고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30여명의 학생들을 통솔하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요즘 교사 자격이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꿔 통솔력 있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직업을 잘못 선택해서 생긴 고민입니다. 아이들이 좋아서 가까이 하고 싶다면 자기 아이를 낳아서 기르든지, 아니면 고아원이나 아동복지기관 같은 데서 봉사하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고민이 생기지 않겠지요. 우선 한 가지 방법은 교사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봐야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남의 자식을 30명이나 모아놓고 나쁜 영향을 준다면 죄를 짓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남편이 집에 들어올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전화합니다.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남편은 비참해진답니다. 전화하기 전에 미리 연락을 주면 제가 기다리지도 않고 저녁 준비도 하지 않을 텐데, 남편은 이제까지 몇 십 년이나 같이 살아왔으면서 자기를 그렇게 모르냐고 오히려 저를 타박합니다. 보통 새벽 1~2시는 돼야 들어오고 4~5시에 오는 일도 많습니다. 남편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자꾸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제 말이 웃기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한번 기도해보십시오. “우리 남편은 참 착합니다. 너무 일찍 집에 들어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녁에 들어온다는데 우리 남편은 새벽에 들어옵니다.” 내 생각을 하루만 뒤로 돌리면 됩니다. 하루만 뒤로 돌려주면 내 남편은 다른 남편들보다 일찍 들어오는 사람이 됩
가톨릭 신자인데 얼마 전부터 불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깨달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들이 세 살 때 병원에서 성장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못할 거라고 말했지만 다행히 치료가 잘 돼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 나고 마음 아팠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간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것도 깨달음이라 볼 수 있는지요? 현재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과거 일이 잊힌 것이지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관점입니다. 아이가 여전히 환자임에도 ‘아, 이 아이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라고 생각이 바뀌면 병을 낫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하기보다 오히려 이런 아이를 보
5년쯤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감정이었고 남자친구도 제가 다시 돌아오기를 원해서 저도 마음을 접고 다시 잘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남자친구가 그때의 상처로 인해 제게서 마음이 떠났다고 합니다. 저는 그동안 함께 느낀 행복을 모두 슬픔으로 바꾸어놓은 나쁜 여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준 것이 마음 아프고, 그런 자신이 용서 되지 않고, 앞으로 그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이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이 사람 좋아하다가 다른 사람 나타나면 그 사람이 좋아질 수 있고, 그에게 갈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그 사람이 싫어질 수도
불교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49재나 천도재 같은 것들을 지내곤 합니다. 요즘 세간에서는 수천만 원을 들여 재를 올리기도 하고 심지어 살아계신 분의 천도재를 미리 지내는 일까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의식들이 꼭 필요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죽는 즉시 장례를 지내지 않고 대개 3일이나 5일 뒤에 장례를 치릅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람이 죽는 것도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자연 현상일 뿐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것도 낙엽 지는 것을 쳐다보는 것처럼 특별히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한 중생이다 보니 부모나 형제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현실적으로 슬픔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3일장이나 5일장 풍습은 이런
10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데 2년 전 헤어졌다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헤어진 이유는 저희 집이 재혼 가정이라서 남자친구 어머니가 좋지 않게 생각하셨고 그걸 남자친구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남자친구와 한번 그렇게 헤어져보니까 이제는 뭔가 확실한 답을 받고 싶기도 하고, 부모님 말에 헤어질 정도면 차라리 지금 헤어지는 게 나을 거 같기도 합니다. 우선 백일기도를 시작하세요. 매일 108배를 하면서 친부모 새부모 따지지 말고 그저 “부모님, 감사합니다” 이렇게만 기도하세요. 감사기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해야만 내가 부모님 싸움에 상처 입지 않게 됩니다. 남자친구가 자기 어머니 반대 때문에 헤어지자 했다고 해서
기도를 하면서 제가 바라는 것만 원했는데 스님 법문을 들은 뒤로 잘못됐음을 알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이 많이 원망스러웠는데 이제 원망하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아이가 어릴 때 큰 수술을 받은 뒤로도 자주 아파 몇 번의 수술을 더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위험해 보이는 걸 못 하게 금지했던 게 많습니다. 오히려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아이를 위해서도 기도 하고 싶습니다. 본인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바꾸었다고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도 내용만 달라졌지 바뀐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자기를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이가 내 마음에 들도록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바뀐 게 없기
아들이 고3이 되고부터 우울해하고 걸핏하면 울면서 심한 무기력증을 보입니다. 학교에 가도 친구가 없어 하루 열 마디도 안 한다면서 자기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비하를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도 상위권을 유지했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장래 계획도, 대학을 어떻게 할 건지 물어도 말을 안 합니다. 엄마가 자기 자식을 보는데, 인물이 잘났다 공부를 잘한다 하고 껍데기로 보고 있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세상 남자 보듯이 얼굴로 보고 학벌로 보고 능력으로 본다면 이미 엄마가 아니지요.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엄마가 아들의 껍데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쉬워하며 아이가 어떤 아픔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는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껍데기를 보더라고 엄마라면
남편이 사업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올해 초 남편은 해외 시장에 나가 사업을 한다면서 베트남에 공장을 차렸습니다. 아들은 유학 중이고 딸은 음악을 전공하다 보니 교육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남편의 무거운 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떨어져 살기 싫어서 반대를 했지만 남편의 의욕을 꺾을 수 없어 따르기로 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베트남으로 가려고 했는데 딸아이의 학업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남편도 아이 대학 갈 때까지라도 한국에서 아이를 돌보라고 합니다. 지금 남편은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면서 사업을 하고 있고 두세 달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옵니다. 남편에게 힘을 주고 싶습니다. 어떠한 마음으로 수행 정진을 해야 하나요? 삶의 원칙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부부라면 떨어져
남편이 술만 많이 먹는다고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불행은 남편 때문이라 생각하면서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절에 가는 것도 반대하며 삼보를 비방합니다. 남편을 위해 부처님께 참회하고 삼보에 귀의하라 말하며 기도했지만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편 건강이 아주 나쁩니다. 이제라도 어떻게 참회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큰아들에게도 문제가 많습니다. 매일 술만 먹는데다 집에서 화를 많이 내서 며느리도 아무 말을 못 하고 손자는 늘 기가 죽어 있습니다. 질문자는 지금도 계속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남편만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술 먹지 말라고 했던 것도 그렇고, 남편을 변하게 하고 싶어서 절에 다니며 기도했던 것도 그렇고, 이제 또 남편 건강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도
깨달음이 무엇인지, 아라한이 되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 같은 궁금증은 서울 가는 차를 타는 게 중요하지 서울에 대해서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게 중요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면 서울은 저절로 눈에 다 보입니다. 그러니 너무 궁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내가 이곳에 있을 때 이곳을 제대로 알고 저곳에 가면 저곳을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한데, 이곳에 있으면서 이곳에는 무지하고 저곳에만 관심 있다면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걱정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는 삶을 만끽하는 게 좋습니다. 이것을 일러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살아
편법을 써서 자신의 목적이나 이익을 달성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납니다. 아직도 그런 것이 통하는 사회에 불신감도 생기고, 뭔가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것 같기도 해서 속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작은 아이가 공부에 대한 욕심이 아주 강합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번번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일이 쌓이다 보니 아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말수도 줄어들며 신경질적으로 됩니다. 아이가 공부에 대한 욕심 있는 게 아니라 성적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겁니다. 성적에 욕심이 있다는 것은 노력은 적게 하고 결과는 크게 얻으려고 한다는 말이지요. 공부에 욕심이 있다고 해서 괴로운 게 아니라 성적에 욕심이 있어서 괴로운 거지요. 이렇게 노력한 것 이상을 바라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