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별한 지 삼 년째 되고, 아들이 둘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부부 사이가 안 좋아 아이들만 데리고 몰래 이사를 해버렸습니다. 큰아이와 달리 작은 아이는 상처가 되었던지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지난달에 제대하고 와서부터 식구들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바깥출입을 완전히 단절하고 혼자 지냅니다. 한번 돌아보세요. 질문하신 분 스스로 남편하고 사이도 안 좋았고, 남편을 놔두고 몰래 이사를 가버렸다고 하셨지요? 산 사람을 두고 몰래 이사 갔다는 것은 ‘다시는 안보겠다’는 뜻이고 또 ‘너 죽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래서 내 소원대로 상대가 죽었는데, 비록 내가 칼로 찔러 죽이거나 약을 먹여 죽이거나 그렇게는 안 했지만, 내
모든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고, 외로운 마음이 많습니다.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고, 실연당하면 우울해지고 폭식을 합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말도 없이 엄마와 이혼하고 사라진 것에 대한 원망이 있는데, 그래서 남자에게 집착하는지 궁금합니다. 또 아침저녁으로 천 배씩 하고 있는데 기도로 제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백일출가를 하고 싶기도 한데 과연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복학해서 빨리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질문하신 분이 이렇게 자기 생각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고 하는 식으로 세상을 사니 세상살이가 참으로 곤란할 겁니다. 무
스님께선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시는데, 나 이외 모두에게 무관심해지면 대인관계를 어떻게 할 수 있나요? 그러면 너무 무관심 속에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사랑한다 할 때, 나를 희생하고 자식을 돕는다,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 필요를 자식에게 요구한다면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기심, 욕망입니다. 불교에서는 집착이라고 합니다. 내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자식에게 집착함으로써 자식의 이익을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자식에 대한 집착을 놓아라’하면 부모는 내 자식인데 어떻게 집착을 놓을 수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니 제가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그
몇 해 전 시이모님께서 신내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굿도 가끔 하시고 본가에 신주단지를 모셔놓고 절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시이모님 댁에서 굿을 하셨다면서 가서 절을 하고 오라고 강요하셨습니다. 자식들 잘되라고 그리하셨겠지 생각하다가도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을 바른 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어머니 나름대로의 신앙으로 자식 잘되라고 하고 계시는 거니 어머니를 이해하고 그 뜻에 맞춰 드리는 게 바른 도입니다. 바른 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성지순례에 가거나 역사 유적지에 가서 성인의 자취를 만나면 절을 하잖아요. 남의 조상 묘에도 절을 하고, 외국에 가면 다른 종교의 신전 같은 데 가서도 절을 하듯이 신주단지 앞에서 절을 하면 되지 못
결혼한 지 8년쯤 됩니다. 남편은 재혼이었고 결혼할 당시에 9살, 10살 된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생모는 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거의 매일 싸웠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다투고 눈만 마주쳐도 싸웠습니다. 아이를 야단치는 정도가 심해져서 욕을 하고 손을 댔더니 아이도 제게 욕을 하고 때립니다. 남편과 헤어질 수는 없고 아이들과 같이 살자니 정말 괴롭습니다. 내 입장을 떠나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남자가 새 부인에게 푹 빠져서 아이들 돌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누구나 다 그 남자를 욕할 것입니다. 결혼하고 아내를 사랑하더라도 제 아이를 감싸고 보살피는 게 나쁜 일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낳아 키운 아이는 가끔 매를 든다 해도
서른 살 직장인입니다. 전에는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청빈한 삶을 살고 싶다는 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집안의 경제 문제나 앞으로 결혼하면 차나 집을 사는 것들도 고려하다 보니 돈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다시 돈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 건강에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음식을 먹는 것은 몸에 좋으라고 먹는 것인데,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하고는 다를 때도 많습니다. 입에는 맛있는데 몸에 안 좋은 음식이 있는가 하면, 입에서는 쓴데 몸에는 좋은 음식도 있습니다. 몸을 생각하면 먹고 싶더라도 때로는 먹지 말아야 되고, 때로는 입맛이 없어 먹기 싫지만 먹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몸이 중심이
1만배를 하면서 끝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며, 사랑받기 위해서 아주 많이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절을 하면서 나한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깊이 뿌리 박혀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갈구가 나한테 뿌리 깊이 박혀 있을까요? 이러한 현상은 비록 지금 기억에는 없지만, 어릴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 애정 결핍이 지금 이렇게 무의식의 세계에 남아 끊임없이 작용하면서 나이가 서른 살인데도 아직도 어린애 같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 상태로 결혼해서 남편한테 어린애 같은 마음을
보통 사람들보다 얼굴이 조금 큽니다. 얼굴 때문에 놀림도 많이 당했고 37년 동안을 괴롭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성격도 예민하고 소심해져서 친구가 거의 없고, 고민이 되어 밤에 잠도 쉽게 오지 않습니다. 돌아서서 사람들에게 얼굴을 한번 보여주세요. 질문하신 분의 얼굴은 전혀 크지 않습니다.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크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지 객관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 누군가에게서 “네 얼굴 참 넓적하고 크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서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따름입니다. 실제 얼굴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천하 만물 가운데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아주 커다란 복입니다. 얼굴이 크든 작든, 키가 작든 크든, 남자든 여자든, 신분이 무엇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기도 전에 온 신경이 그에게 쏠립니다. 되뇌어 생각하며 상상을 더해 마음을 점점 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커지면 괴로움도 같이 커지며 그의 사소한 행동에 감정이 휘둘리곤 합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보고 좋아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떤 가수를, 어떤 배우를, 어떤 운동선수를 좋아하는 일도 많지 않습니까? 꽃 한 송이를 보고도 좋아서 웃음이 나오는데 하물며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때를 생각해 봅시다. 지금 내가 장미 한 송이를 보며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면 이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그 좋은 마음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여러 가지 힘든 조건 속에서도 저희들을 잘 길러주셨습니다.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어머니가 저희에게 바라는 게 많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다 해드릴 수는 없으니 어머니를 만나고 나올 때는 울면서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좋은 마음으로 전화를 드리고도 끊을 때는 꼭 싸우게 됩니다. 어머니를 생각하지 말고 내 아기를 생각해서 결단을 내리시면 좋겠습니다. 내 아기에게 좋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겠지요? 아기를 낳기 전에는 무엇보다 내 아기에게 복이 되도록 보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내 아이를 위해 복을 쌓으려면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곳에 보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가까운 인연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작년에 과잉행동증후군(ADHD)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조절이 되지만, 약 기운이 사라지면 기본적인 생활에 지장을 받을 만큼 많이 산만합니다. 약을 먹으면 차분해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안 먹으면 너무 산만해서 아이가 미워지기도 합니다. 어떤 스님은 천도재를 권하기도 합니다. 약을 복용하면서 동시에 엄마가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약을 복용하지 않고 병증이 나타나게 놓아두면 그 증상들이 점점 습관화가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육체적인 문제로 생긴 증상이라도 정신적으로 습관화되면 나중에는 약을 먹어도 좋아지지 않거나 약을 먹더라도 많은 양을 복용해야만 효과가 나타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물을
외갓집에서 많은 배려를 받으며 이기적으로 자랐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면 그 사람 말에 복종하고, 구속을 당하는 느낌에 답답해하면서도 헤쳐 나갈 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은 두려워하고 다가오지 않으면 섭섭해 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문제를 삼아 그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문제 삼지 않아 아무것도 해결할 것이 없는 방법입니다. 문제를 삼아 부지런히 해결한다는 것은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 ‘살려 달라’며 아우성치며 부지런히 도망 다니는 것과 같고, 문제 삼지 않아 아무 해결할 일도 없다는 것은 눈을 번쩍 떠 꿈을 깨니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기에 아우성칠 일도 없고 도움을 청할 일도 없다는 것과 같
올해 대학 신입생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문과 공부를 했지만 취직이 잘되는 공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문과 출신이라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어렵고 교우관계도 원만치 않아서인지 대학생활을 힘들어합니다. 아들은 마음을 못 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죽고 싶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공부는 하기 싫으니까 다 그만두고 취직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까지 괴로워하면서 대학을 가야 할 필요가 없거든요. 옛날에는 10명 중에 1~2명이 대학을 가니 대학 나오면 다 취직을 했지만 지금은 10명 중에 8명이 대학을 가니 대학 나왔다고 다 취직이 되는 게 아니죠. 10명 중에 9명이 대학 나오는 시대는 대학 안 가는 게 오히려 취업이 쉬울 수 있어요. 공부하기 싫으면 대학 자퇴하
남편이 보증을 서서 집까지 날리게 된 일로 크게 다투면서 아들에게까지 심한 말을 했더니 아들이 그길로 집을 나가서 결혼도 했지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남편과 아들에게 참회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그때 발 벗고 나선 덕에 집이라도 잃지 않고 남긴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서 전 재산을 날리게 된 마당에 내가 그나마 온 식구와 싸워가며 나선 덕에 집 하나라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잘한 일인데 왜 참회를 하려고 합니까? 참회 기도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방법을 일러준다 해도 질문자는 지금 참회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잘한 일에 대해서는 참회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원하는 것은 참회기도가 아니라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3년 전 진로에 대한 발원으로 열심히 기도 정진했습니다. 회향 후 한 동업자를 만나 동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큰 시련으로 다가왔고 정신적 물질적 손실이 컸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기도 믿고 사업을 벌였더니 사업이 안 됐다는 이야기인데, 학생이 대학 가려면 기도를 열심히 해야 됩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까? 학생에게는 ‘대학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하고 열심히 절하는 게 기도가 아니고, 대학시험에 합격하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게 기도입니다. 만약 저 위에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내려다본다면 대학 가겠다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게 예쁠까요, 공부는 안 하고 하느님만 찾고 부처님만 찾는 게 예쁠까요? 신이나 어떤 영험한 존재가 있어서 돌봐준다고 하더라도 예뻐할 만한
친척이 3년 전에 돈 200만 원에 농장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습니다. 5년 계약인데 있을 데가 없으니 농장 옆에 하우스를 짓고 살겠다고 해 보기 딱해 농장에 딸린 집에서 살라 했습니다. 그런데 제 딸이 방이 필요해져 집을 비워 달라 하니 못 비워주겠다고 합니다. 법대로 하라고 합니다. 좋은 마음을 내도 어리석으면 괴로움이 따릅니다. 괴로움은 착한가 악한가에 따라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고 어리석으면 괴로움이 일어나고 지혜로우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착한 마음을 내기는 냈지만 어리석었기 때문에 화를 자초했다는 말입니다. 일가친척 간에 돈을 빌려줄 때 이자 없이 빌려주거나 이자를 아주 작게 빌려주면 돈을 못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채무자가 돈을 갚을 때 이자 높은 것부터 먼저 갚는 게
오랫동안 절을 해오다 무릎에 문제가 생겨서 요즘은 경전 암송과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염불로는 일심은 이룰 수 있으나 무심에는 이를 수 없다. 참선이 무심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시더군요. 제게 적합한 수행 방법이 무엇인지요? 불교 안에서도 가치관이 서로 다를 때가 있습니다. 경전을 중요시하는 불자라면 경전을 믿고 경전을 이해하고 경전에 근거해서 수행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에게서는 경전적 근거 없이 얘기한다면 그것은 외도입니다. 하지만 선에서는 “경전은 문자다. 어떻게 글자로 진리를 검증할 수가 있느냐? 진리는 내가 직접 경험해야 되는 것이다”라는 관점에 섭니다. 그러니 어느 게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관점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래
남편이 사업 거래처 수금이 너무나 안 되서 한숨으로 퇴근하는 날이 많습니다. 잘될 거라고 위로하지만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공장을 지어서 제품을 생산해 놓으니 날개 돋친 듯이 팔리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가 주식을 사면 계속 오르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애가 학교에 가서 공부 일등하고 서울대 들어가고 고시공부해서 한 번에 척 붙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이세상이 그렇게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럼 내가 바라는 대로 안 되는 게 정상인가요, 비정상인가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정상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어도 괴롭지가 않아야 됩니다. 안 되는 게 정상인데 안 되는 걸 갖고 괴로워하면, 인
불교대학에 입학하려다 남편이 완강히 반대해 일 년 동안 나름대로 내조를 잘한 뒤 올해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수업 일정표를 남편한테 보여주니, 시간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라면서 반대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속으로는 ‘당신 생각이 틀렸어’라며 겉으로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하면 이것은 복종이고 비굴입니다. 또 남편이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내 고집대로 한다면 이것은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나를 내세우지 않고 공손하고 겸손하게 사는 게 좋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지 내 갈 길 간다, 이렇게 당당하게 사는 게 좋은 겁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자는 교만과 비굴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비굴하게 살다 보니 남편에게 반발이 생기고, 그러다가 ‘내 맘대로 하겠다’하고 고개를 쳐드니 또 어느새
남의 인생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나도 이 정도면 괜찮지 하는 마음으로 돌이키기도 합니다. 늘 가족이 먼저고 자식이 먼저고 옆 사람이 먼저였기에 남이 나를 칭찬해 주어도 나에 대한 긍정이나 자부심이 적었습니다. 사람이 자꾸 비교하면 끝이 없습니다. 죽 먹을 때는 옆에서 라면 먹는 것만 봐도 부럽고, 라면 먹을 때는 밥 먹는 것만 봐도 부럽고, 밥 먹을 때는 고기반찬 먹는 게 부럽지요. 이렇게 먹는 것 가지고 부러워하다가 먹는 게 해결되면 그 다음엔 옷 입는 게 부럽고 이 문제가 해결되면 또 그 다음엔 집 가지고 부러워하고 집 문제 다 해결이 되면 그 다음엔 차가 부럽듯이 이렇게 끝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고뇌가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이 보면 어떻습니까? 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