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컨대 저에게 해탈의 문을 열어주시고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기필코 해탈의 문을 열게 하소서.” 선재동자의 발원은 간절했다. 문수보살은 자비로운 눈으로 말했다. “깨달음의 높은 뜻을 일으켜 선지식을 구하고 보현행원을 닦아 마침내 성불에 이르라.” 이에 선재동자가 금강(金剛) 같은 불퇴전의 발심으로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기나긴 구도의 길을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해탈의 문을 열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재동자의 구도 여정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답다. 한 줄기 빛처럼 해탈의 여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은
이심중애(離心中愛) 시명사문(是名沙門), 불연세속(不戀世俗) 시명출가(是名出家). 이 내용은 ‘초발심자경문’ 중에서 원효 스님이 쓰신 ‘발심수행장’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초발심자경문’은 불문에 입문한 사미승이 가장 처음 배우는 책으로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 야운 스님의 ‘자경문’ 등 3편으로 구성돼 있다. 원효 스님의 말씀을 풀이하면 “마음에서 애욕을 여읜 사람을 사문이라 이름하며, 세속의 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부른다”라는 뜻이다. 수행자의 자격과 출가의 의미를 이토록 단순 명
올해도 부처님께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후로 우리는 매년 음력 4월8일 아기부처님을 맞이합니다. 올해로 2640년입니다. 천년이 두 번 지나고 또 천년의 반이 흘렀습니다. 무수한 세월, 부처님은 이렇게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룸비니 울린 부처님 탄생게진리 주체가 인간임을 선언화려한 의식 매몰되지 말고참다운 불자 되길 서원해야 부처님오신날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수많은 아기부처님이 새로 탄생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불자들은 이날 절마다, 거리마다 연등
언제부터인가 약자들의 피맺힌 절규 현장에는 ‘어버이연합’이라는 정체 모를 단체가 출몰했다. ‘중북’이나 ‘빨갱이’를 입에 달고 정부가 불편해 할 시위현장에 득달같이 나타나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둘렀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어버린 어버이들의 한 서린 단식 현장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며 조롱을 일삼았던 그들의 행동에서 이들이 일반적 어버이들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최근 ‘어버이연합’이 온갖 추문의 중심에 서 있다. 퇴직경찰관의 모임 ‘경우회’와 경제인들의 모임 ‘전경련’에서 억대의 뒷돈을 받아 시위 때마다 일당을 주고 수천 명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정혜결사문’에 인인지이도자(人因地而倒者) 인지이기(因地而起)라는 명언이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人因地而倒者), 땅을 딛고 일어나라(因地而起)”는 말이다. 지눌 스님은 무인이 칼로 세상을 다스리던 폭압의 시절, 함께 타락해 권력을 탐하던 불교에 묵직한 주장자를 내리쳤다. 절에 재물이 넘쳐나고 거드름 피우며 현학적인 지식을 자랑하던 불교를 떠나 멀리 변방에서 새로운 불교를 일으켰다. ‘정혜결사’였다.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결사는 깊은 산속에서 치열한 수행과 계율로 고려불교의 바른 길을 제시했다.지눌 스
단식중생(但識衆生)하면 즉능견불(卽能見佛)이요 약불식중생(若不識衆生)하면 멱불만겁(覓佛萬劫)하여도 불득견야(不得見也)이다. 육조혜능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육조법보단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풀이하면 “중생을 알면 능히 부처를 볼 것이요, 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토록 부처를 찾아도 보지 못할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즉능견불(卽能見佛)은 “능히 부처를 볼 것이다”라는 뜻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중생을 알면 그렇다는 의미다. 중생을 안다는 것은 중생이 바로 부처임을 알라는 의미다. 중생이 곧 부처이기에 중생을 떠난 부처란
4·13 총선이 목전에 다가왔다. 국민의 소중한 한 표가 모여 민의를 대변할 국회의원 300명을 선출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여당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에 따른 줄 세우기 공천이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절망을 주고 있다. 국민의 뜻을 살펴 정책을 내놓기보다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인연을 강조하는 후진적인 선거문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는 충격적이다. 국민들의 비판이 쇄도하자 후보들이 느닷없이 길거리에서 떼거리로 무릎을 꿇고 마음에도 없는 사죄를 표명하며 표를 구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는 말이 있다. 여실(如實)은 ‘있는 그대로’, 지견(知見)은 ‘알고 본다’는 뜻이다. 풀이하면 진리의 참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안다는 의미다. 의미로만 본다면 깨달음 혹은 견성(見性)과 다르지 않고 실천행으로 본다면 팔정도의 정견(正見)과 궤를 같이 한다.정견은 바르게 보는 것이다. 실상을 바르게 봐야(正見) 바른 사유(正思惟)가 생기고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알아차림(正念) 바른 선정(正定)이 가능하다. 팔정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실지견은
스님들이 신발을 벗는 댓돌 위에 흔하게 걸린 주련이 조고각하(照顧脚下)다. 풀이하면 자기 발밑을 비추어 보라는 의미다. 세간에서 각하(脚下)는 ‘발밑’으로 해석하지만 불교에서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의미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조고각하는 진리를 밖에서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의미다.그래도 흔히 조고각하는 너의 행동을 돌아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사회는 자신의 허물에는 관대하고 남의 잘못에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조고각하는 삼불야화(三佛夜話)라
육조 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 대중들이 울며 세상에 더 머물러있기를 간청했다. 이에 육조 스님이 말했다.“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열반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이다. 오면 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몸 또한 반드시 가야한다.”그러자 대중들이 물었다. “스님께서 지금 가시면 언제 오십니까?” 육조 스님이 말했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내가 오더라도 아무 말이 없을 것이다.”‘육조단경’ 부촉품의 내용이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은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낙엽은 결국 뿌리로부터 시작됐다. 현상이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있다.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공이 되라는 뜻이다. 입처개진(立處皆眞)과 함께 쓰이는데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공이 되면((隨處作主) 서 있는 그곳이 항상 진실하게 된다(立處皆眞)는 가르침이다. 임제 스님은 “큰 그릇이라면 결코 남들에게 미혹 당해서는 안 된다.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공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항상 진실하게 된다. 그대가 한 찰나라도 미혹된다면 마구니가 마음에 침입하게 될 것”이라고 경책했다.그러나 수처작주의 의미를 처한 상황의 분위기에 잘 맞추거나 주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임
불가에 견월망지(見月亡指)라는 표현이 있다. 원문을 풀이하면 달을 봤으면 달을 가리키는 손을 잊으라는 뜻이다. 본질을 깨우쳤으면 수단들은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능엄경’은 견월망지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보인다면 우리는 손가락이 향한 곳을 따라 달을 보게 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의 손가락을 달의 본체로 여기게 된다면 우리는 달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손가락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우여곡절 끝에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다수파의 횡포를 막기 위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