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불당) 안쪽에 부처가 앉아있다. 연꽃자리가 놓인 높고 큰 받침에(불단, 수미단), 그리고 그 위 보꾹(반자, 천장)엔 놀랍게 잘 꾸며진 지붕이 붙어있고 이 반자에 걸린 지붕을 오늘날 우리 닫집이라 부른다. 어찌 또 보개니 산개, 천개라고도 하나보다. 그래서 집 나설 때나, 높은이를 나타내는씌우개 치레거리였던 것이 이리로 자리 잡았다는 거다. 그러나 그 이름이 닫집이란 집이라면 한갓 위쪽의 씌우개로 떨어질 것이 아니다. 보다시피 집이니 자리(받침)와 기둥이 모두 살아 있고 그 위에 지붕이 있지않는가 말이다. 집 속에는 부처가 앉아있고. 때문에 불단이나 수미단으로 부르는 받침은 바로 닫집의 바닥이지 따로의 뭐가 아니다. 닫집이란 이름은 돋집 곧 도드라낸 집 또는 당집, 바로 높이 달려
성철은 산짐승들과 친해지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운부암 주변 팔공산 자락에는 꿩과 노루가 많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산짐승들이 성철을 무서워하지 않고 따랐다. 운부암 시절부터 성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무를한짐씩 하고 난 후 참선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그가 나무를 하고 있으면 노루 한마리가 찾아와 놀다 가곤 하였던 것이다. 노루가 찾아오는 곳은 일정했다. 은해사 산내 암자인 백흥암(百興庵)과중암암(中巖庵) 사이의 숲속으로 여름이 되면 송이버섯 향기가 솔솔 풍기는곳이었다. 성철이 지게를 받쳐놓고 잠시 불경을 외우고 있으면 앞에 앉아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였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는지성철이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외우고 있을 때도 그랬다. 1. 몸에 병
제9장 철조망 암자(1) 팔공산은 의외로 산이 높고 골이 깊었다. 대구의 뒷동산 정도로 생각했는데, 산자락이 영천까지 멀리 뻗어 있었다. 따라서 팔공산에는 큰절만 해도 동화사·파계사·은해사 등이 있고, 백흥암·운부암·거조암 등 많은 암자들이 계곡과 산자락에 박혀 있었다. 정 검사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성전암(聖殿庵)은 파계사의 유일한산내 암자였다. 행정구역은 최근에 대구시로 편입되어 있지만 농촌이나 다름없었다. 십수년 전만 해도 아주 한적한 농촌이었을 것 같았다.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가든'자가 붙은 음식점들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서 절로 가는 관광객들을 호객하고 있었다. 초입의 네거리를 지나 산길을 들어서는데 꼬부랑 노파가 정 검사가운전하는 승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