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돌려 내 안에서 참다운 행복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서옹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던 ‘참사람 운동’이기도 하죠. 여름과 겨울, 일시적으로 하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두 달에 한번씩 정기적인 참선 프로그램을 실시하려 합니다.” 2월 19일 첫 7박 8일간의 수련회를 실시하는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사진〉은 “주 5일제 근무를 비롯해 웰빙 바람을 타면서 현대인들의 명상과 수행에 대한 욕구가 크게 늘어났다”며 “한국의 전통적인 수행을 통해 자기발견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시적인 참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금강 스님은 지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연 인원 5000명이 참여한 내·외국인을 위한 미황사 템플스테이를 모범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동양사학자겸 불교학자로 큰 족적을 남긴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사진) 선생이 2월 1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1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민영규 선생은 이후 일본에서 사학을 공부하고 위당 정인보 선생을 만나 양명학의 학맥을 이어받은 국학계의 거목이었다. 선생은 1945년부터 80년 정년퇴임까지 35년간 연세대를 비롯해 미국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도서관협회 이사 및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서지학회 창립(1945) 멤버이자 국내 최초로 연세대에 문헌정보학과(1957)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선생은 지난 65년 「인조당집인(景印祖堂集引)」이라는 논문을 통해 전대미문의 선종자료인 『조당집』을 발굴, 초기 선종사의 법계문제를 새롭게 규명했다. 또한 일본 교토
2000년 1월 28일 입적 한암 스님 은사로 출가 해인사 안거 이후 40안거 동산-고봉 등과 선맥 이어 비룡 스님은 평생을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참선정진과 중생교화에 전념하며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특히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맹정진에 나섰는가 하면 후학들에게 지계를 강조함으로써 종단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다. 비룡 스님은 1907년 4월 개성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그의 나이 22세 되던 1923년 강원도 인제의 한 사찰에서 열린 법회에서 ‘도 닦는 공부하는데 부처님 가르침말고 다른 것은 다 소용없다’는 한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교에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한암 스님의 법문에 깊은 감동을 받은 비룡 스님은 한암 스님에게 자신이
1월 29일 오전 도봉산 부근의 한 빌라를 찾았다. ‘걷는 스님’ 원공 스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2002년 도봉산 천축사에서 내려온 후 이곳을 선각원(蟬覺院)이라 이름 붙이고 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수행자의 공간은 여염집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흔한 가구나 달력, 그림 한 점 없었으며 단지 큼직한 대한민국전도가 그 공간의 유일한 장식품이었다. 스님은 찻잔 대신 컵에 녹차를 가득 부어 한 잔 권한 후 ‘인간과 자연 및 편리와 수행’을 주제로 법문을 들려주었다. 편집자 내가 걷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무문관을 나오면서부터야. 막힌 곳에서 한 6년 정도 있다보니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 또 옛날 스님들도 공부하러 많이 걸어 다녔잖아. 물론 그 당시에는 차가 없었으니까 걸을 수밖에 없었겠지
스리랑카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대부분 바위 위나 동굴 내부에 사원을 세웠다는 것을 발견했다. 담불라 (Dambulla) 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동굴 사원들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는 이러한 독특한 스타일을 잘 표현한 훌륭한 예가 아닐까 싶다. 다섯 개의 동굴 사원에 가려면 바위를 다듬어 만든 150 미터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이 곳 사원들의 인테리어는 불교 미술의 조각과 그림에 있어서 걸작품들이라 할 수 있는 것들로 장식되어 있다. 우리는 동굴 안에서 부처님을 그려 놓은 그림들을 150여 점 넘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스리랑카로 꽤 여러 번 여행을 다녔고 매번 120만 인구가 거주하는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콜롬보를 방문할 때면
헐리우드 스타 리차드 기어가 붓다에 관한 서사적인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영화의 원작은 영적인 구루 디팍 초프라의 서술에 근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마하보디회 B. K. 모디 회장은 “이 영화의 목적이 불교 철학과 사랑과 자비, 중도에 관한 붓다의 가르침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데 있다”고 밝혔다. 리차드 기어가 제작자로 나선 이 영화는 총 1억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2006년 붓다의 열반 2550주년을 기념해 개봉될 계획이다. 영화 배역은 볼리우드스타 비벡 오베로이와 아쉬워리아 레이가 주요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와 인도 영화 산업의 스텝들이 함께 제작에 동참할 계획이다.
중국 돈황연구원의 영문 사이트가 오픈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월 3일 보도했다. 돈황연구원 학예사 쭈앙 유안린은 이 사이트에 돈황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와 동굴에 관한 자료, 여행자 정보 등 광대한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네티즌들에게 빠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돈황연구자료 조사기관이 발족될 예정이다. 60년전 설립된 돈황연구원은 현재 돈황 석굴 연구와 보호에서 있어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관이다. 사이트 주소는 www.dha.ac.cn이다. 이 사이트에는 중국어도 함께 제공된다.
미국의 이슬람 단체는 1월 22일 남아시아 쓰나미 수재민들을 위해 모금된 성금을 선교기금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미국 전 국무부 장관 제리 파월을 고소하고, 부시 행정부에 그의 처벌을 요청했다. 이 단체의 대변인인 아브라힘 후퍼 씨는 “‘파월의 친전’이라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통해 쓰나미 성금이 기독교 선교자금으로 활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는 집을 잃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의 뜻까지 저버린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파월 재단의 홈페이지와 리버티 대학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리버티 대학 학생들을 매년 남아시아 지역으로 (선교) 임무 여행을 보낼 것”이라며 “음식물과 의약품 공급과 함께 수천권의 복음서 보급이 팀의 주요한 작업”이라는 글이 올라가 있다.
네팔 정부, 달라이라마 사무소 폐쇄 시킴, 라닥 사찰…“까르마파 손떼라” 사무소 폐쇄에 저항하는 티베트인, 달라이라마 사무소 전경, 중국대사관, 추방당하는 티베트인들(시계방향) 지난 1월 28일 네팔 정부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위치한 티베트 달라이라마 사무소를 폐쇄했다. 네팔 비서관 챤디 프라사드 쉬레스타는 「카트만두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수십년간 불법적인 활동을 펼쳐온 달라이라마 사무소를 폐쇄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쉬레스타 비서관은 “우리는 중국의 정책이 올바르다고 믿는다. 네팔에서 중국에 반대하는 어떤 정치적인 활동도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티베트 난민사무소는 달라이라마 망명정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의 복지를 위해 일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의 비호 속에 수십년간 유지돼온 ‘불교기득권’ 태국승가 목죄는 덫으로 기능하나 탁신 총리의 선거운동 현장 “정부를 비판하려면 승복을 벗고 정당에 가입해라.” 탁신 시나왓 총리가 승려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총리에겐 신중할 의무가 있다. 경솔한 말 한마디가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곧장, 치앙마이에 있는 체디 루앙사원의 수도원장이 맞받아 쳤다. 이 ‘설전’은 지난 해 6월 중순, 텝낏띠 빤야 스님과 그 동료들이 라디오 설교를 통해 탁신정부의 카지노 허가 계획을 비판하자 태국 국영 라디오 타일랜드가 방송을 금지시키면서 비롯되었다. 라디오 타일랜드는 “그이들이 정치적 사안을 즐겼기 때문이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시민 대다수는 그런 정치적 설교에 거부감을
일엽스님 삶 다룬 연극 ‘사랑을 사르다’ 22~25일 퍼포밍아트홀 여류 문인이자 신여성의 삶을 살다가 불현듯 출가하여 당대를 들썩이게 했던 일엽스님의 출가이야기에서부터 지난한 수행과정,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연극 ‘사랑을 사르다’〈사진〉가 2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퍼포밍 아트홀(옛 마포문화체육관)에서 공연된다. 극단 독립극단(대표 원영애)의 창단 25주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다. 오유경 씨가 연출을 맡고 극작가 권재우 씨가 일엽 스님의 작품과 행적을 바탕으로 하여 희곡을 썼다. 일엽 스님은 1896년에 평안남도 용강군의 한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나이에 많은 형제들과 양친을 잃고 외할머니의 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07년에 발표한 국문시
“현장 지원 우선-불미전 발전 적극 도모” 불교중앙박물관 개관기념전 北 성보 참가 조계종 문화부 (부장 성정 스님)의 행보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문화부는 지난 1월말, 긴긴 장고 끝에 2005년도 주요 대내외사업을 담은 새해 운영기획안을 내놓았다. 기획안의 앞 머리는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는 9월경 개관하는 불교중앙박물관의 개관 준비현황과 개관 기념행사이다. 이외에 북한불교문화재와 불교무형문화재 조사, 불교문화행사 정보시스템 구축, 불교미술 인물과 단체의 인프라 구축이 조계종문화부가 밝힌 2005년도 주요 사업이다. 문화부가, 개별적인 행사들의 개최주체로 남기보다는 불교문화현장이 제대로 잘 돌아가는 시스템과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부서로 앞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불
유랑적 기질을 발휘하여 시간만 나면 쏘다니곤 해서 계절에 따라 두어 번 들른 곳도 여럿 있건만 어찌된 셈인지 해인사는 그 뒤에 다시 가보지 못했다. 대학 4학년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12월의 끝이었다. 진학을 하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여행이라도 떠나야겠다고 그나마 마음을 다잡았다. 겨울에는 물론이고 여름에도 늘 볼이 발그레해 연꽃 같았던 불심 깊은 선배가 소개해주어 해인사를 찾을 수 있었다. 잘 아는 스님이 해인사의 회계 스님으로 내려가 계신데, 찾아가면 원하는 만큼 묵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 기억에는 그해 겨울도 여기저기 얼음이 꽝꽝 얼고 고드름이 추녀에 드리운 매서운 추위였다. 동안거에 들어간 산사의 한적한 경내에 거칠 것 없이 휘몰아치던 바람이
무심히 그려넣은 선 깨달음의 정점인 듯 적멸의 순간인 듯 부처의 미소는 화두다 모든 미소의 절정이며 모든 미소의 극치다 김은현이 도조로 만들어 놓은 인물상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만들어지고 조각된 것이라기 보다는 살아서 몽상에 잠긴 듯한 미소다. 미소란 사전 정의에 의하면 “소리내지 않고 가볍게 웃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감정을 표출한다. 눈, 입, 관자놀이, 입아귀 등이 관련된 신체적 움직임인 미소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인간적인 표현일 것이다. 인류가 가진 특수한 기호이자 사람들마다 고유하게 나타나는 표현인 미소는 언어와는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인류가 가진 특수한 기호 침묵 속에 감춰져 있는 바를 무언의 표정으로 드러내는 미소는 살아가는 내내 우리
장년의 호걸스러운 기운이 넘쳐 업을 지음에 좋고 나쁨을 모를 때에 능히 장부의 뜻을 세워 위없는 도를 배우려하니 숙세(宿世)에 심은 선근(善根)이 깊지 않으면 어찌 이와 같으리오. 축하하고 축하하노라.그러나 도(道)란 본래 꾸밈이 없어 향하는 바가 없으매 실로 배울 수 없음이라. 만약 도를 배운다는 생각이 있다면 문득 도를 그르치나니 다만 그 사람의 한 생각 진실함을 요구함이니라. 또한 누가 도를 모를까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스스로 멀어지게 되느니라.시끄럽다고 고요한 곳을 구하거나 속됨을 버리고 참됨을 향하지 말지니라. 늘 고요함은 시끄러운데서 구하고 참됨은 속됨 속에서 찾으라. 구하고 찾는 것이 가히 구하고 찾음 없는데 도달하면 시끄러움이 시끄러운 게 아니요, 고요함이 고요한 게 아니며 속됨이 속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암자로 가는 길』, 『인도기행』 등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불서를 통해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사진작가 김홍희 씨가 알려주는 ‘사진을 즐겁게 찍는 방법’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즐겁게 찍으라’는 조언에 가깝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돈을 위해 찍느냐 즐거움을 위해 찍느냐” 단 한 가지라는 작가는 “프로는 돈이 되지 않으면 밥을 굶어야 하지만 아마추어는 즐거움을 위해 밥을 굶어가며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책은 인터넷 사진 동호회에 ‘날 때부터 프로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과 글 솜씨가 돋보인다. 사찰과 불교 관련 사진을 다수 촬영한 작가의 시선이 포착한 산사의 일상들도 편안하고 솔직한 모
서옹당 상순대종사 입적 1주기를 맞아 스님의 글을 모은 추모집이다. 조사선을 통해 자각의 깨침을 얻음으로써 ‘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생구제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한 스님은 무차법회 등 수 많은 법석과 옥고를 통해 대중에게 감로의 법을 전했다. 책에 수록된 글은 참깨달음의 세계, 선과 현대사상, 참사람의 길, 불교와 종교 등 네 분야로 크게 나눠 정리-수록돼 있다. 스님의 세납 쉰 살 무렵의 어느 한 낮 백양사 물 내려가는 여여한 소리에 문득 깨닫고 외쳤던 오도송과 법석에 울려 퍼지던 법문 게송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전해진다. 각종 언론매체에 수록됐던 스님의 글에서는 동, 서양을 넘나들면서 선의 정신을 회통한 스님의 발자취가 발견된다. 깨달음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펼쳐 보여 한 사람이라도 더 참
“우리가 나를 지우고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항상 그대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억만 년을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서 세상의 변화를 보는 바위에게 무슨 무상에 대한 슬픔이 있겠는가.” 지난해 5월 무중력요트로 태평양횡단에 성공한 전 법주사 주지 지명 스님이 그 동안 『중앙일보』를 비롯해 주요 일간지 등에 자신이 연재했던 칼럼들을 책으로 엮은 『無로 바라보기』를 발간했다. 스님은 이 책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통해 현대인들의 병폐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간결하면서도 맛깔스러운 문체로 엮어나가고 있다. 특히 스님은 행복, 사랑, 성공, 승리 등을 끊임없이 추구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에 적용해 살아있는 오늘
『중국 조각사』는 선사시대부터 명청시대까지의 중국 5000년 조각의 큰 강줄기를 우리에게 내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조각의 흐름을 한 권에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조각사를 굳이 약술해 본다면 선진과 진한은 중국 고대조소의 형성·발전기이고, 위진수당은 성숙·흥성기라 할 수 있으며 송원명청은 정체·퇴락기다. 둔탁함과 과장기가 보이는 진한 시대를 거쳐 위진남북조 시대에 접어들면 이전과 비교해 조소의 예술적 가치가 한눈에 보아도 천양지차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조소 정점에 바로 불교조각이 자리하고 있다. 뚠황(敦煌)석굴, 진타스(金塔寺)석굴, 윈깡(雲崗)석굴에 조성된 장엄한 불상 조각들이 이 시대의 심미적 요소와 신앙심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위진남북조를 지나 수당에 이르면 조소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면 또 하나의 문을 만나게 된다. 이 문을 통과하면 기초과정을 끝내고 숲 속 수행에 들어간 사람들의 처소가 나온다. “미얀마 불교는 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니 왜요?” “스님들이 왜 분홍빛 승복을 입고 다니는 건가요?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무슨 수행을 한단 말인지, 원.” 차창 밖을 유심히 보던 일행의 입에서 문득 나온 말이다. 얼굴이나 형색은 분명 비구니 스님 같은데 붉은 가사 장삼 대신 분홍색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들을 보며 나 또한 적잖이 의문을 품고 있던 차였다. “아! 저 사람들은 스님이 아니에요. 미얀마 말로 ‘틸라신’이라고 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사미니 정도 되겠네요. 미얀마에는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정식 스님이라 볼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