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① 존우론과 숙명론 그리고 우연론을 비판하면서 부처님이 새롭게 제시한 것이 `연기론'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차별적으로 태어나게 되고, 거기에 따른 갖가지 고통이 있게 마련인데,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힌 것이 연기설이다. 이 연기설에 관해서는 위에서 이미 누차 설명한 바 있기 때문에 구태여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연기설에도 몇가지 종류가 있고, 특히 지금 우리들이 공부하고 있는 이 십이연기설을 `업감연기설'이라 부르기 때문에 `업'에 관해서 좀더 살펴보아 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차별적으로 태어나고 거기에 따른 행.불행이 있게 마련인데,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추구하여 얻은 결론을 경에서는 `유'라 설하고 있다. 즉 `유로 말미암아 생이 있다'고 설
컴퓨터의 매력 중에서도 가장 큰 매력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방법은 전화선을 이용하는 것인데 지금부터 그 요령을 배워본다. 우선 준비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전화선과 모뎀이다. 전화선이야 없는 댁이 없을테지만, 컴퓨터에 따라서 모뎀은 없는 경우도 있고 있더라도 성능과 가격이 차이가 난다. 모뎀이란 놈이 생긴 모양은 별수없이 밤색 조각에 몇개의 칩이 달려있다. 이녀석이 하는 일은 전화선과 컴퓨터의 사이를 서로 통하게 해주는 통역인 셈이다. 무슨 뜻이냐면, 우선 컴퓨터는 디지탈이라고 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전화는 아날로그방식을 사용한단다. 그러니까 컴퓨터랑 컴퓨터랑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는 상관이 없는데, 그 사이에 전화선이 개입을 하게 되므로써 전달이
완연한 가을이다. 붉은빛으로 온통 물든 가을산은 보는이의 마음을 절로설레게 한다. 더불어 올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신부들의 설레임이야말로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24일부터 음력 9월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윤달을 이유로 미뤄왔던 결혼식이 러쉬를 이루며 본격적인 결혼시즌을 맞았다. 평생 단 한번뿐인 결혼. 불자라면 불교식으로 치러야할 것이다. 절에서 치를 때는 물론 일반 예식장에서도 스님을 주례법사로 하고 불교의 화혼의식에 따라 여법하게 행한다면 이는 곧 부부로서 인연맺음과 동시에 진정한 불자로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남녀의 결혼을 화혼이라고 한다. 사회자가 식의 시작됨을 선언하면서 화혼식은 시작된다. 이어서 주례법사가 등단하고 화동과 화녀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난 잊지못할 악몽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야했다. 혹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었고 하기에 따라서는 지옥이바로 우리곁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결국 하루하루를 바르게 사는것이 내생의 선업을 쌓는 길임을 새삼 느낀 계기이기도 했다. 에피소드 하나. 지방에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광주를 가기 위해 전철을타고가는 도중 낯 뜨거운 모습을 목격했다. 지하철 안에서 50대로 보이는 한전도자가 자신이 전도하고자 하는 분의 모습이 그려진 조끼를 입은 30대 여성을 보좌하고는 간증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낯 뜨거운 간증의 내용인 즉슨 이랬다. "자기는 어려서부터 친오빠와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후 사촌동생들과 간음을 했으며 결혼 후 남편을 놔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내 어린 시절의 서정이었던 사찰 통도사는 오늘도 거기 양산의 영축산에 있을 것이다. 웅자를 숙인 채. 진리의 상징인 부처님 앞에 무릎꿇고 나의 번민과 시름을 잠시 잊어보고자했으나 그도 내 몸이 맑지않으니 마음뿐으로 초파일이 저물고 있다. 부처님은 복을 비는 대상의 신이 아님은 익히 모두들 아는 일일 것이다. 업장소멸을 이루어주는 구원의 신은 더욱 아니다. 다만 그를 통하여 마음을 닦고 자기의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요, 그렇게 그가 그렇게 했듯이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저마다 성숙한 의지적 작용이 가능하여 선업을 남기게 될 것이다. 고뇌에서 벗어나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이상이며 부처의 마음일 것이다. 가끔은 고뇌의 무게를 주체할 수 없을 때
금선암은 행정상으로는 산북면 김용리 운달산 정상 근처있는 김용사의 부속암자로 되어있다. 그 절 자리는 뒷날 김용사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 운봉사의 터로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하는 대승사와 더불어 유서가 멀고도 깊다. 애초 이절은 금선암이 아닌 운봉사였다.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가 지을 때는 그렇게 명했으나 절 아래에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절을 지어 제금내면서 운봉사란 이름은 지워지고 금선암이란 이름이 대신 붙여진듯 하다. 차제에 또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새 절은 김용사라고 따로 부르게 되지 않았나도 싶다. 운봉사의 개산조로 알려진 운달조사에 딸린 이야기는 확인되는게 없어 안타깝거니와 여기서는 운봉사가 김용사로 왜 바뀌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일러주는 명칭연기만 살
나는 어린시절이 그리워지면 곧잘 앨범을 꺼내보곤 한다. 그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것은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내가 사찰 입구에 서 있는 사진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어머니는 그 당시 다니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자란오빠와 나를 데리고 여러 사찰을 다니셨다.-사찰의 부처님 앞에서 하는 예절과 절하는 방법 역시 그 시기에 알게 되었는데 지금도 어린 꼬마들이 절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 띄우게 된다-이렇게 다니기 시작한 사찰의 분위기를 나는 꽤나 좋아하게 되었다.그런 영향인지 사찰은 지금도 나를 평화롭게 만드는 한 장소로서 그리고 혼자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저절로 부담없이 발걸음 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 불교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불교에 입문한지 어언 30년이 흘렀다. 절이 좋아 절에 갔고 부처님이 좋아서이절저절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능인선원에 가게 되었다. 신도분들의 신심이 남다르다고 여긴 나는 이곳 불교대학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하게됐다. 말로만이 아닌 뼈에 사무치는 불법의 가르침에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여겼던 모든 것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불교대학을 마친 나는 동기들과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할 것이 없나 궁리하던끝에군불교를 위해 헌신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인연이 된 것이 육군 특수전학교다. 특수전학교에 처음 나간 것은 2월께였다. 당시만 해도 초라한 가건물 법당에는연등하나 제대로 걸려있지 않았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법당에는 수요일과일요일법회에 서너명이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종교의 자유' 보장된 사회맞나? 불교탄압 전담반 구성…주인의식 가져야 불교 탄압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종교편파행정, 사찰방화,훼불, 대통령 국방부 일요예배, 사찰 주변 기독교 전도에 이르기까지 종류도다양하다. 이번에 또 육군 특수전학교에서 장교가 사병에게 기독교를 강요하고,법당에 가는 사병에게 반성문을 쓰게 한 일이 신문에 보도됐다. 더욱이 부처님 오신날을 얼마 남기지 않고 법당 앞에 인분을 뿌린 사실에는 불자의 한사람으로 심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군복무를 마친 불자라면 군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쯤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청주에서 방위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그당시 대대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
하루는 급한 용무를 보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개 두 마리가 나타나 내 앞을 지나치더니 차도로 내려섰다. 그런데 지나던 차의 운전자가 미처 개를 보지 못하고 그 중 한 마리를 치었다. 물론 쇠로 된 차야 상관이 없었지만 개는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나는 급한 용무가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없이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용무를 마치고 나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다시 가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마리의 개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 개는 차가 오면 얼른 피했다가 다시 죽은 개에게 다가가서 냄새를 맡고는 얼른 일어나라는 듯이 끙끙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광경을 목격하면서 부끄러움을 얼른
“스님, 다시 부처님을 믿어야겠어요. 부처님이 좋아요. 염주 하나주세요.” 노환으로 치매단기보호소에 입소하여 지내는 노인들의 말씀입니다. 노인들은 주위의 권유로 다른 종교에도 다녀보았지만 별 재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인이나 무종교인이 불교로 돌아오는 현상을 보고 참으로 복지관 포교의 역할이 큼을 봅니다. 소외받는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공동체 나눔의 장을 발원한지 십수년 만에 복지법인을 만들고 어린이집과 노인복지관을 개원한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어려운 점도 없지는 않지만 앞서와 같이 이용자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불교에 귀의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끼게 되고 꼭 이일은 해야한다는 신념이 생기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전통적인 가족구조의 변화, 의술의 발전으로
`불교계 큰 일꾼 모임'(공동대표 하춘생˙박상필)은 불교계언론사 대항 `불교계 큰일꾼 체육대회'를 6월21일 동국대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했다. 이날체육대회에는 한국불교기자협회, 불교방송, 불교텔레비전 등 3개팀 소속회원2백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