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가 다른 책에서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여러 책에서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에게서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였던 이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이다. 조르바는 어떤 사람인가. “배고파 본 적도, 죽여 본 적도, 훔쳐 본 적도, 간음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겠어요? 당신 머리는 순진하고 살갗은 햇빛에 타보지 않았어요”라면서, 순진한 ‘먹물’로 하여금 “섬
▲‘조선 공주의 사생활 조선 왕실의 은밀한 이야기’ 나는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을 아주 좋아한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 UNICEF의 친선대사로 아프리카 소말리아를 찾아 헐벗고 굶주리는 어린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희망의 씨앗을 키워내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던 말년의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준 깜찍하고 청순한 이미지가 여전히 내 머리와 가슴 안에 남아있어서 더욱 그를 좋아할 것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보듯, 오늘날에도 왕실 가족 그 중에서도 공주로 살아가는 데에는 제약이 아주 많다. 세상에 태어나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그건 안 됩니다!”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야
▲‘커피가 돌고 세계史가 돌고 : 역사를 돌아 흐르는 이슬람의 검은 피’ 술과 차, 그리고 커피는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기분 좋게 나누는 데에 아주 유용한 음료이다. 그 가운데 커피는 아프리카 북부와 아라비아반도에서 재배·음용하면서부터 그것이 지닌 각성(覺醒) 효과 때문에 이슬람 은둔수행자인 수피(sufi)에서 시작해 가톨릭 수도사들과 개신교인들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얼핏 기호품으로 보이는 커피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의 정치 경제의 흐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매일 즐겨 마시는 커피에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수탈과 지배,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는 것이다. “혼자서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홍대용 선집’ 최근 한국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다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은 “공자·맹자와 퇴계·율곡의 주옥같은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분이 어떻게 저런 일을…” 하면서 안타까워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벌써부터 터질 일’이었다 여기는지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미 수백 년 전에 “슬픈 일이지만 유학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되었소”라며 ‘유학(유교)의 사망 선고’를 내린 학자가 있었다. ‘18세기 동아시아 사상계를 빛낸 뛰어난 혜안을 보여 준 학자’인 담헌 홍대용(湛軒洪大容, 1731~1783)이 그 주인공으로,
유럽의 중세를 일컬어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그때도 낮이면 해가 뜨고 밤이면 달이 떠서 세상에 빛을 주었을 터인데 왜 ‘암흑’이라고 할까.가톨릭교회가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가로막았고, 혹 자기들의 교리 해석에 어긋나는 내용을 입 밖으로 내놓는 사람이 있거나 심지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가기만 해도 ‘신성 모독’이라는 죄를 뒤집어 씌워 고문을 하고 사형을 시키는 일이 아주 흔했기 때문이다.그러면 이 ‘암흑시대를 끝내겠다’고 외치고 나온 개신교 운동가들은 ‘생각의 자유’를 용인했을까. 그러나 ‘신악(新惡)이 구악(舊
▲‘자백의 대가: 크메르 루즈 살인고문관의 정신세계’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였던 3년 8개월 20일 동안, 캄보디아는 황폐해졌고 170만 명이 넘는 주민이 학살당하였다. 그 미친 시절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았던 ‘S-21교도소’는 “전날 밤만 해도 혁명의 일원으로서 일했던 간수가 하루아침에 죄수 신세가 되는”곳이었으며, 고위층에 있었던 인물이 ‘미제와 베트남의 앞잡이’라는 의심을 받아 갑자기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죽어갔던 ‘죽음의 수용소’였다. 이 S-21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만 몇 천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간 인물이 이 책의 주인공 두크(Duch)이다. 그의 범죄 행위는 증거가 확실하였다. 그래서 쉽게 중형이 선고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야 마땅하
▲‘이매창 평전-시와 사랑으로 세상을 품은 조선의 기생’ 전북 부안에는 매창(梅窓)이라는 기명(妓名)으로 알려진 기생을 기념하여 세운 ‘매창 공원’과 ‘매창 시비(詩碑)’가 있고, 매년 청명절에는 지역민들이 그를 위한 제사를 지낸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는구나.” 그가 남긴 유일한 시조로 널리 알려진 「이화우(梨花雨)」를 통해 그의 이름을 진작부터 알기는 했지만, 내가 매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개인적인 데에서 비롯하였다. 우리 집안에서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인 직계 조상 한 분이 김제군수로 재직할 때에 매창과 사랑하는 사이였고 이 사실이 허균의 입을 통해 세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나는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들어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말레이시아, 이 두 이슬람 국가에서 4년 반을 근무하면서 이슬람 문화와 신앙 태도 등을 직접 보고 무슬림(이슬람교도)들과 친구로 지내기도 하였다. 그들의 최고 성지인 메카(Mecca) 근처에 근무할 때에는 전 세계에서 온 하지(Hajj) 순례 행렬을 직접 목격하는 소중한 경험도 하였다. 이렇게 그 문화를 접촉하고 이해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래도 막상 ‘이슬람 세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긴 나뿐 아니라 세계의 대다수 사람들이 특히 이슬람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고 있거나 무지
▲‘맥아더와 한국전쟁’ 더글라스 맥아더와 관련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의 특별한 추억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큰형님이 월부로 들여온 ‘세계의 인간상’ 전집에 들어있는 맥아더 전기를 읽고 형님에게 짧은 독후감을 내서 칭찬을 받았던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해 가을에 이제는 없어진 수여선과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인천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자유공원에 올라 맥아더장군 동상을 보고 선생님에게서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 장군의 ‘영웅적인 설화(또는 신화)’를 들으며 감격했던 일이다. 그 뒤로는 이 인물에 대하여 특별히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일 없이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5학년 초등학생이 감격적으로 바라보았던 그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려 부수겠다는 쪽과 지키겠다는 쪽
▲'침묵'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와 ‘깊은 강’을 통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가톨릭을 주제로 다루지만, 가톨릭 독선주의에 흐르거나 ‘무조건 가톨릭을 지켜야 한다’는 호교론(護敎論)을 내세우지 않아서 나와 같은 비(非)가톨릭 이웃종교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침묵’은 포르투갈 선교사와 일본 가톨릭 신자들의 순교(殉敎)를 다룬 소설이지만, ‘순교’를 소재로 한 종교 문학작품이 범하기 쉬운 ‘거룩하게 만들기’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포르투갈 신부인 주인공은 자신에 앞서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하느님을 배신했다’고 전해진 동료 선교사의 배교(背敎) 사실 확인을 위해 왔지만, 본인도 체포·투옥되어 처형을 기다린다.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법보신문’에 ‘책’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큰 행복을 맛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짐이 되어 마음이 편치 못할 때도 있다. 어떤 책을 선택하고 읽어가면서 ‘좋다’는 느낌이 드는데 너무 두꺼워서 마감일까지 완독하지 못하고 쩔쩔 맬 때에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할까?’하면서, 연재를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데 책의 두께가 가치와 비례할까. 얇은 책은 상대적으로 내용도 가볍고, 그래서 수준 높은 독자들에게는 추천할 수 없을까. 내 경험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이 책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야말로 ‘두께는 얇지만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좋은 책’을 대표할 것이다. 이 책은 전 인류에게 ‘평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분위기가 이어져서 여성의 초상화가 제작되고 왕·왕비나 지방 수령들이 베푸는 노인잔치(養老宴·耆老宴)에서 남녀를 구별하기는 하되 차별하지는 않았음이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고 난 뒤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게 되면서 여성의 초상화가 사라지고, ‘계회(契會)’와 ‘기로회(耆老會)’ 등의 ‘놀이’와 ‘서당’의 학습 장면처럼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회화에서도 여성은 노동을 하거나 남성들의 시중을 드는 부속물로 등장할 뿐이다. 이것은 곧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졌음을 반영하는 변화”이고 “회화에서도 유교적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