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희평전’ “아이(손녀)가 한번은 내게 말했다. ‘저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으니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지 않으면, 너는 사탕도 과자도 못 먹는단다’라고 하자, 아이는 ‘할아버지가 계시면 저는 사탕이나 과자는 안 먹어도 돼요’라고 말했다.” 억지로 과장하거나 꾸며내는 곳 하나 없이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의 깊은 정이 소박하게 드러나는 이 글은 ‘민주와 인간해방을 외친 중국의 루소’로 평가 받는 황종희(黃宗羲, 1610~1695)가, 아끼고 사랑하던 손녀가 세상을 떠나자 애틋한 마음을 담아 묘전(墓)에 새긴 글 중 일부이다. 손녀에게는 이처럼 자상스러운 할아버지였지만, 황종희는 명(明) 말기 썩어문드러진 권력을 비판하
▲‘커피밭 사람들: 라틴 아메리카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나는 커피를 즐긴다. 직접 볶아서 내 나름의 맛과 향을 내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유명 상표가 달린 커피전문점보다는 내가 내려서 마시는 커피 맛이 훨씬 좋다’는 자신감은 있다. 커피 원두를 사게 되면 봉투에 표시된 원산지를 살피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코스타리카’·‘과테말라’·‘온두라스’ 등 중남미 국가 이름과 익숙해지고 가까워졌다. 이 책 ‘커피밭 사람들’은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이다. 지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원생 임수진이 ‘지역 연구’를 학위논문 주제로 정하면서 우연히(?) 선택한 곳이 중남미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였다. 그러나 저자와 코스타리카
▲‘잿더미의 유산’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최악의 테러리스트’로 지목하고 추적해오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장면이 TV화면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CIA!’하면서 그 능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CIA는 대단한 능력을 갖춘 조직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은 막연한 내 느낌도 아니고, 이 조직을 음해하려는 쪽에서 꾸민 모략도 아니다. 팀 와이너가 역대 CIA 국장들과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갖고, 비밀이 해제된 미 정부 문서를 꼼꼼하게 읽어낸 뒤 얻어낸 ‘사실 확인’일 뿐이다. “60년 동안 수만 명의 비밀공작 요원들이 수집한 정보들 가운데 정말 중요한 정보는 극히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ㄱ 동아시아 지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비교적 안정상태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망망대해에 솟아있는 작은 섬 몇 곳(釣魚島 또는 尖閣列島)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중일(中日)간의 영토분쟁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이미 양쪽이 국유화 조치와 상륙 시도 등으로 샅바 싸움을 시작하고 있고 서로 물대포를 주고받는 상황으로까지 이르러서 언제 어느 쪽에서 먼저 화약심지에 불을 붙일지, 그 불이 얼마나 클지 그리고 쉽게 꺼질 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위기 상황에다가 최근 중국이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를 공식 진수하면서 앞으로 대외 정책을 더욱 공세적으로 펼쳐나갈 것임을 국내외에 분명하게 선언하고
▲‘똥 살리기 땅 살리기’ 어렸을 때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근처의 과수원에서 정기적으로 학교 인분을 수거해가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재순환된다’는 자연의 법칙을 제대로 따랐던 것이지만, 당시 우리나라나 중국을 찾았던 서양인들은 이것을 비(非)문화적인 모습의 전형처럼 묘사하였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모든 분야에서 서양인들의 기준을 좇아가면서 이제 논밭에서 ‘똥 냄새’를 맡는 것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인분을 그대로 거름으로 뿌릴 경우 토양에는 유익한 영양분이 되지만 그 안에 남아있는 기생충과 갖가지 병원균들이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인분’은 아예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청음 김상헌의 증손자로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고 은퇴한 뒤 학문에 전념하며 일가를 이룬 농암(農巖) 김창협(1651~1708)에게는 운(雲)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학문이 뛰어나서 아버지의 기대를 온몸에 받다가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전에 아버지에게 “저는 여자라 후세에 이름을 남길 방도가 없으니,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 아버지가 제 묘지명을 지어준다면 그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하였는데, 결국 그 말대로 아버지는 앞서 간 딸의 묘지명을 지으며 “정말로 내 앞에 죽어서 내 손으로 네 묘지명을 짓게 하니 이제 시원하냐?”며 오열하였다. 그런가하면 천재시인 허난설헌은 “조선에서 여자로 태
▲‘동물의 감정: 동물의 마음과 생각 엿보기’ ‘죽은 새끼를 등에 업은 채 여러 시간을 헤엄치는 고래의 모정’, 지난 7월 중국에서 촬영되어 인터넷에 유통된 동영상 한 편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것이 우발적인 사건이었을까.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동물의 감정’의 저자 마크 베코프에 따르면 “동물들도 친지의 상실이나 이별에 대해 엄청난 괴로움을 경험한다. 슬픔에 빠진 동물들은 밖으로 끌어내려는 동료들의 권유도 물리치고 무리에서 벗어나서 혼자 떨어져 지낸다. 그들은 먹지도 않고 한곳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허공만 쳐다본다. 죽은 동물을 살려내려고도 하고, 며칠 동안 시체 옆에 머물기도 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천문기록에 담긴 한국사의 수수께끼’ 신문 서평 등을 통해 ‘좋은 책’이라는 판단이 서면 일단 그 책을 사고 본다. 그런 식으로 사서 서가에서 몇 년씩 묵다가 아예 읽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묵어가는 책도 가끔 눈에 뜨인다. 어떤 경우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문득 눈에 띄어 기분을 좋게 하는 책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 때 이 책을 사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나?’하고 안도하면서, 중독에 가까운 내 ‘도서 구입 버릇’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박창범의 책도 그런 경우이다. (구입날짜를 보니 2002년 11월 17일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저자는 우리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1994년 4월부터 세 달 만에, 중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다수를 이루는 후투족 정권의 ‘인종 말살 작전’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100만 명 가까운 투치족이 학살되었다. 후투 극단주의자들의 주도면밀한 여론 조작에 따라 광기(狂氣)에 휩싸인 후투족이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며 사이좋게 살아온 투치족을 상대로 잔혹한 ‘인종 청소’를 자행했던 것이다. 지성인 그룹에 속했던 의사나 ‘영혼의 구원자’ 역할을 맡고 있던 가톨릭과 개신교 성직자들도 이 미친 짓을 방관하거나 적극 가담하였으니, 어느 한 곳에서도 멀쩡한 정신을 가진 집단을 찾기 어려웠다. 후투와 투치, 이 두
▲‘권력과 인간: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250년 전인 1762년 7월4일(음 윤 5월13일), 엄연히 다음 왕위 즉위 자격을 갖춘 세자 자격으로 부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던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창경궁 휘령전 앞에 놓인 뒤주에 보름이나 갇혀 고통을 겪다가 죽었다. 7월의 여름 무더위에 사방팔방으로 꽉 막힌 뒤주 안에서 그가 겪었을 마음과 몸의 고통이 마치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나는 요즈음 창경궁 앞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가 왜 아들을 그처럼 잔인하게 죽여야 했을까?…’ 깊은 상념에 잠기곤 한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불륜(不倫)을 둘러싸고, 사건 직후부터 그 원인과
▲‘가이아의 복수’ 지난 6월 6일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제5차 지구환경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인구증가와 지속 불가능한 경제 성장으로 지구 생태계가 재앙과도 같은 변화를 갑작스레 맞을 수 있다.(…) 우리가 가만히 손 놓고 앉아 기다리며 자녀세대가 지금보다 나쁜 환경에 살도록 둘지, 아니면 행동을 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심각한 경고를 보낸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차이는, “지구는 본래 더워졌다가 다시 추워지는 역사를 반복해 왔으니 앞으로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낙관하는 쪽과 “온난화로 지구에 닥칠 재앙이 그리 멀지 않다”면서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쪽으로 나뉠 뿐이다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 “머리숱은 가을 짐승처럼 성글고/ 얼굴은 고목나무 껍질처럼 메말랐네/(…) 해진 승복 한 벌/ 손수 거듭 깁네/ 바늘귀에도 꿰맨 실에도/ 모두 하나의 부처가 있네.” 천재로 태어났지만 미천한 신분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의 병을 깊이 앓다가 불교에 귀의하고, 스물일곱(27)에 요절한 역관 이언진(1747~1766)이 죽음을 앞두고 쓴 시(병 끝에; 病餘)에서 그린 자화상이다. 사상과 신분체계가 경직된 사회에서 신분 차별 타파와, 사상·문학의 혁명을 꿈꾸었으니 그는 시대의 이단아였다. 그래서 박희병은 그를 일러 “조선 시대에 속해 있으되 조선 시대 너머의 세계를 사유했다”고 평한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