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당선작] 불교방송 사장상 - 이상복
[신행수기 당선작] 불교방송 사장상 - 이상복
  • 법보
  • 승인 2019.05.07 15:36
  • 호수 14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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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인연으로 삶을 바꾸고 심장이식으로 새 생명 얻어

가족을 떠나 40년 방랑생활 중
정목 스님 방송 듣고 불교 인연
‘상구보리 하화중생’ 삶 다짐 후
장애인 시설서 생활교사로 재직

심장병 발병 후 수술·시술 반복
점차 악화돼 정상생활 힘들어도
불연 감사하며 순례·봉사 지속

병원서도 사경하며 기도 전념
뇌사자 기증으로 새 생명 얻어
부처님 가피 봉사로 회향 발원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혜림님의 첫 돌을 축하합니다.’ 

예순 네 살의 나는 50여 봉사자들이 부르는 노래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사랑 파주공동체’ 장애인들도 함께 울었다. 2018년 1월31일 심장이식 수술로 새 생명을 받고, 2019년 2월1일 첫 돌을 기념한 잔치다. 

철없던 시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천방지축 살아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 집을 떠나 40여년을 방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한 친구와 사소한 의견 충돌로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심신이 엉망이 되어 숙소에 돌아와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음악방송을 듣는데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차분한 목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무것도 없는 종이 위에 산을 그려도 바람은 그릴 수 없어. 법을 향하여 찬송하는 임의 모습 그려도 마음은 그릴 수 없네. 솔바람 우 우 우~~~~” 

정목 스님의 ‘바람 부는 산사’라는 찬불가였다. 가사도 가사지만 스님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스님을 찾아 나섰다. 스님을 뵈러 절에 가는 것이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것처럼 떨리고 설렜다. 그렇게 ‘마음고요 선원’을 찾아 법문을 들었다. 불교를 처음으로 접하고, 불자로 태어나 나의 삶을 바꾼 순간이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불교를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조계종 선다암에서 혜림(慧琳)이라는 법명을 받고 수계도 받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이라는 단어에 전율을 느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 이를 실천에 옮기리라 다짐했다. 

나를 일깨우기 위해 명지대 평생교육원 사회복지사 과정을 수강했고, 파주 ‘울타리공동체’라는 장애인 시설을 찾아 갔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처음엔 쉽지 않았으나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적응이 되었다. 다음카페 ‘합장하는 사람들’에 가입해 순례도 다니면서 불교공부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된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도 잠시 뿐, 또 다른 고통이 다가왔다. 심장에 병이 생겼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심해져 일상생활이 어려워 병원을 가니 수술을 권했다. 친지들 도움으로 처음 인공심장판막수술을 받았다. 이때부터 심장판막수술 1번, 관상동맥우회술 등 두 번의 개흉(開胸)수술과 수차례의 스탠스 시술 등을 위해 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 다녀야 했다.

그러던 중 ‘합장하는 사람들’에서 108산사성지순례 공지가 올라왔다. 1일 삼사순례 형식으로 40여개월 동안 108산사를 다니는 순례에 동참 의사를 밝히고 간절히 기도했다. 장애인시설 생활교육 선생님으로 들어가 장애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는 내가 순례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달리, 카페지기 혜정 스님과 도반들 도움으로 순례를 마쳤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례는 강화 보문사였다. 마애관음보살좌상 앞까지 열 계단 오르고 한 번 쉬고,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함께했던 도반들이 박수와 함성을 보내주는 사이로 관음보살님이 ‘어서 오라’며 자애로운 미소로 맞아 주셨다. 눈물 속에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용기와 격려 속에 무사히 순례를 마쳤고, 순례 때마다 찍은 108개의 사찰 낙관지는 보물 1호가 되었다. 

그러나 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혜정 스님은 약사순례 일정을 잡았다. ‘유리공덕회’라는 순례단 이름을 붙이고 2년에 걸쳐 전국 24곳 약사도량을 선정, 순례와 기도를 통해 중생 아픔을 구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하지만 점점 쇠락해져 동행이 어려웠고, 2014년엔 가슴에 물이 차서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되었다. 다음카페 ‘합장하는 사람들’에서 알게 된 일산 동국대한방병원 수간호사 자원님으로부터 순환기내과 교수님을 소개 받았다. 교수님은 진찰 후 보호자와 같이 오라고 했다.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그 마지막이라는 단어와 그동안 살아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가정도 이루지 못하고 술로 방황하며 보낸 시간들, 뒤늦게 불교를 만나 봉사하고 순례를 다녔던 순간들, 해맑은 웃음으로 아픈 나를 위로하는 장애인들, 걱정과 우려로 나를 사랑했던 가족들, 특히 10년 넘게 형님 병간호를 하면서도 나를 미소로 맞아주신 부처님 같은 형수님 얼굴이 떠올랐다. 

교수님 소개로 만난 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님은 ‘이미 심장 근육들이 섬유화 되고 있어 심장이식 외에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심장이식수술’, 그 말을 듣고 동국대병원 5층 법당을 찾아 약사여래부처님만 빤히 쳐다보았다. 살려달라는 애원조차 나오지 않았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입원해야 할지도 모를 수술을 해야 한다니 당장 수술비도 걱정이었지만 돌보던 장애인들도 걱정이었다. 

가족회의 끝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장애인들은 자원봉사자님들이 돌봐주기로 했고, 수술비는 누님과 형수님께서 보태 주셨다. 무엇보다 ‘한국심장재단’ 도움이 컸다. 준비를 마치고 불연을 맺게 해준 정각사를 찾아 ‘마지막이 될지 모를 수술이 잘되기를, 혹시 잘못되더라도 불교를 알게 해주신 부처님께 감사 드린다’며 진심으로 기도했다. 

심장 기증은 심장 크기와 혈액형에 따라 대기 순서가 달라진다. 3개월을 기다리자 9번이라는 대기번호가 정해졌다. 보통 6~7개월을 입원해서 기다려야 기증받을 수 있다고 했다. 오랜 기다림 중에 찾아오는 인연들은 참으로 감사했다. 그 중에서도 준용님이 준 ‘숫타니파타’ 사경 책은 많은 도움이 됐다. 매일 염주를 돌리며 사경을 하는 동안, 독실한 불자인 형수(대혜심 보살)님은 명산대찰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기도했다.

그렇게 6개월의 기다림 속에 죽어가던 나는 대기번호 1순위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금식하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제주에서 뇌사자가 발생해 장기이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염주를 움켜쥐고 “약사여래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 고맙습니다. 지장보살님, 저에게 심장을 기증해주시는 분의 극락왕생을 바랍니다”라고 기도했다

제주에서 인천까지 비행기와 구급차로 이어진 600㎞의 심장수송은 신속 정확하게 이뤄져야 했다. 심장을 건강하게 이식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껴야 했다. 우선 내가 먼저 개흉(開胸)을 하고 준비를 해야 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찾았다. 계속되는 염불 속에 마취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 아련히 마취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취가 되는 것을 느끼며 부처님을 찾다보니 어느 큰 사찰의 법회장소에 와 있었다. 사람하나 겨우 올라갈 만한 계단을 타고 2층 법당에 올라가니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맑게 빛나는 보살님이 어서 올라오라면서 내 손을 잡고 가슴을 쓸어내려 주시는데, 그때까지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재채기 하듯 터져 나오면서 막힌 것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곁에 있던 보살님들이 박수를 쳐주고 건네주는 물을 마시는데 생전 처음 마셔보는 꿀맛 같은 물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취에서 깨어나니 법당이 아닌 1평 남짓 무균실이었다. 순간 내가 몽중가피를 입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옴에도 다시 부처님을 찾았다. 내 몸에 건강한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니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6개월 동안 누구보다 걱정했던 형수님과 조카들이 무균실 유리창 밖에서 합장하며 함께 울고 있었다. 

그곳에서 7일간 치료를 마치고 일반 무균실로 옮겨서 재활을 시작했다. 몸은 날로 좋아져 하루에 만보를 걸어도 문제가 없고 계단을 오르내려도 힘이 들지 않았다. 심장 공여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혜정 스님께 부탁드려 심장적출 49일째 되는 날 49재를 모셨다. 

그렇게 병원생활 7개월 만에 퇴원을 하고 ‘한사랑 파주공동체’에 들어오니 장애인 친구들이 서로 와서 안아 주었다. 부처님 가피로 새 생명을 얻었으니, 그 은혜에 꼭 보답하고자 발원했다. 매달 조금씩 들어오는 장애연금과 후원금으로 붕어빵 기계를 사고, 장애인 친구들과 전국 복지시설을 찾아 붕어빵 봉사를 하기로 했다.

죽음의 끝, 새 생명의 시작에서 찾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가르침을 가슴깊이 되새기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이생보다 나은 내생을 위하여 오늘도 붕어빵 기계를 싣고 나의 소중한 심장을 어루만지며 복지관으로 떠난다.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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