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당선작] 법보신문 사장상- 허정애
[신행수기 당선작] 법보신문 사장상- 허정애
  • 법보
  • 승인 2019.05.07 15:39
  • 호수 14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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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과 비용 기꺼이 선사하는 것

부처님께 기도하는 나에게
보시는 손톱만큼 했으면서
복은 거나하게 받길 바라니
이것이 도둑놈 심보 아닌가

30년 무의탁노인 식사봉사
이만하면 됐다며 자만심도
그럴 때마다 하심하면서 절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지만
자연스레 정으로 이어진다면
포교도 어렵지않게 이어질 것
빈자일등처럼 전법에 정성을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시방 법계에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니 아무리 작고 좁은 절이라도 부처님은 계실 겁니다. 겨울 한 철 나기가 곤란스러워 보이는 절이 보이면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서 절을 올립니다. “부처님! 이 절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며 절을 올리고 나면 절의 살림 걱정이 덜 됩니다.

부처님의 슬하에서 69년을 살아온 재가불자로서는 약간의 시주와 기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삼배를 마친 손자는 묻습니다.

“할머니! 부처님은 6년 동안이나 고행을 하셨다는데 왜 저렇게 뚱뚱해요?”
“네가 본 부처님 상(像) 만이 부처님이 아니라 여러 시대 여러 장소의 부처님이 다 부처님이지. 뼈만 남은 고행 중인 부처님상도 있느니라. 네가 좀 더 자라고 나면 너도 많은 부처님 상을 뵙게 될 것이야. 그리고 네 눈동자 속에 비치는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을 눈부처라 부른단다. 거꾸로 그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너도 눈부처가 된단다. 그러니 얼마나 고귀한 존재들이냐? 아가! 네가 웃고 있으면 웃고 있는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네가 찡그리고 있으면 부처님도 널 따라 찡그리고 계실 것이다. 너는 어떤 부처님이 좋으냐?”
“웃는 부처님이요.”
“부처님?” 

저는 늘 부처님께 여쭙니다. 
“제가 기도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세상의 이익을 쫓아 욕심이나 다를 바 없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보시’라고는 손톱만큼 해놓고 ‘복’은 거나하게 받기를 원하는 도둑의 심보는 아닌지요?” 

무의탁 노인 분들을 위한 식사자원봉사를 30년째 해 오면서 어쩌면 저는 그것 하나로 선행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한 번씩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저는 하심하며 절을 했습니다. 악도 선도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 그 어떤 경계에도 ‘머물지 말라’는 생각이 기도 중에 문득 떠올랐습니다. 선을 행함에도 선을 행한다는 의식없이 ‘Now and here’(지금 여기에서) ‘오직 할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걸림없이 제 주위의 사람들을 만나서 ‘나 홀로 포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절에 그래도 연금이 나와서 돈 걱정은 안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부처님의 가피이니 저도 무언가 부처님께 보답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선 저 자신이 바로 살고 맑게 살아서 모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사랑은 행동이지 말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한 동네에 사는 민이 엄마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민이 엄마는 종교가 없던 터라 마침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민이 엄마! 우리 같이 절에 다니자.”
“아이고 형님! 저도 알고 보면 불교 신자라니까요. 어릴 때 할머니 따라 절에 가서 떡도 먹고 밥도 먹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안 다니는 거잖아. 오늘 한 번 가보자.”

순둥이 민이 엄마는 선선히 따라 주었습니다. 율곡사라는 절에는 단청이 없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새가 부리로 자신의 깃털을 뽑아서 알록달록 단청을 수놓고 있었는데 그 절의 처사가 문풍지를 뚫고 훔쳐보는 바람에 새는 아주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께 절도 올리고 스님이 내어주시는 차도 마셨습니다. 돌아오는 길, 민이 엄마는 대웅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을 향해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제가 내일은 바빠서 못 오고요 모레 꼭 다시 오겠습니다.”

민이 엄마의 순정에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절에 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끔 어르신들이 하시는 대로 향을 사르고 촛불을 켜는 것을 따라 했을 뿐 절이 좋다거나 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은 절에 가서 살아도 될 만큼 불심깊은 불자였습니다. 남편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108배를 올렸습니다. 중국으로 간 여행에서도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 벽을 보며 108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구 갓바위는 수시로 다녀왔습니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남편은 부처님 전에 소상히 아뢰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지극한 불심에 저도 깊이 감화되었습니다. 남편은 이산혜연선사 발원문과 ‘반야심경’, ‘천수경’을 읽어보라며 주었습니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읽고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의 어느 발원문이, 세상의 어느 서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흉년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고 제아무리 칼산지옥도 제가 가면 연꽃이 된다니, 세상의 어느 발원문에서도 이런 구절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알면서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하나하나를 반성하며 부처님 저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어느 날, 김해 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저는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말쑥한 신사 한 분이 제 옆의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다른 빈 의자도 많았던 터라 순간 저는 약간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표시는 낼 수 없었고 저는 단주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그가 내민 조악한 신분증에는 모 은행 지점장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지갑과 핸드폰을 도둑맞아서 비행기 표 값이 없지 뭡니까? 이 다이아 반지도 깨진 거라서 금은방에서는 안 받아준다 하고, 아주머니께서 저를 한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저씨, 저기 경찰 보이시죠? 이름이랑 주민등록번호 조회하셔서 일단 서울로 가시면 되잖아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제가 경찰을 불러드릴까요?”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공항 밖으로 사라져갔습니다. 그 순간 제가 느낀 감정은 씁쓸함이었습니다. 저렇게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사기를 치려하다니. 만약 제가 아직도 선악의 경계에서 끄달리고 있었다면, 저는 비행기 표 값만큼 그에게 돈을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도와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자비임을 압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번 더 새기면 이 세상에는 모두 다 좋은 것도 없고 모두 다 나쁜 것도 없습니다. 그 사기꾼 아저씨는 비록 나쁜 사람이지만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우리를 일깨우는 ‘역행보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평생 남을 속이고 살아왔지만 결국은 빈털터리가 되어 공항 주변을 떠돌 뿐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여래사에서 오래토록 들어온 주지 스님의 법문이 이제는 저의 일상에서도 녹아나는 것 같습니다. 주지 스님은 옛날에는 섬 어린이들을 100명씩 초청하여 육지 구경도 시켜주시고 하셨는데 지금은 생일을 맞으신 독거노인 분들을 위한 생일잔치도 열어 주시고 재소자들의 교화에도 애쓰고 계십니다. 스님의 눈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향해 있습니다. 불교와 인연이 닿은 친구들은 말하지 않아도 초하루 법회와 보름 법회를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할 것 같은 친구들이 절에 나오지 않아 차츰 만남이 소원해졌습니다. 

“아~하! 이것이 그들에게는 강요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절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절에 오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만나자고 했습니다. 아직도 부처님과 인연이 닿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니까요. 친구들과 만나서 우리는 어느 약이 좋더라는 이야기와 어떤 크림이 좋더라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친구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그러나 슬픈 일이나 나쁜 일이 일어나면 꼭 저에게 전화할 수 있을 만큼의 우정은 쌓아놓았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기는 수미산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말입니다. 매일 새벽 다섯 시, BBS불교방송을 켜면 저의 아침도 시작됩니다. 저는 방석을 앞에 두고 같이 예불을 시작합니다. 북을 두들겨 세상 온갖 가죽 있는 짐승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종을 치며 구천을 헤매는 지옥 중생까지 제도하고, 목어의 텅 빈 뱃속을 두들겨,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깨어있으라고 수도자들을 일깨웁니다. 

‘무엇을 하기’보다 ‘무엇을 안 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더구나 현대 사회에서는 무엇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는 더욱 더 어렵습니다. 이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10분만이라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칠대로 지쳤어도 욕망만은 가득한 내면의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자신의 내면 또한 그리 깨끗하지 않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이 종교의 시작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 혼자라면 너무도 쓸쓸했을 길을 부처님과 동행하며 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들은 모두 가슴에 묻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늘 웃음으로 대했습니다. 그래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은 부처님 법을 공부하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빈자의 등’ 하나가 밤새 꺼지지 않았던 이유는 가난한 여인이 가진 한 닢의 전 재산으로 켠 등불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늘 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먼저 주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가장 큰 원에는 이미 작은 원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를 넘어 더 큰 원을 세운다면, 작은 원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과 비용을 기꺼이 낭비하는 것이다.” 라고. 올해는 결코 꺼지지 않는 빈자의 등처럼 많은 등불이 여기저기서 타 오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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