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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국어 교사가 ‘나랏말싸미’ 추천하는 이유는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9.08.06 15:30
  • 수정 2019.08.08 21:04
  • 호수 1500
  • 댓글 32

기고-전 한국어 교사·자유기고가 안상현씨

전 한국어 교사 안상현씨가 8월6일 법보신문에 ‘영화 나랏말싸미를 둘러싼 역사왜곡 논쟁 너무 안타까워’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외국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면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으며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영민하지 않은 평범한 이들도 불과 2~3주 만에 한글 자모음을 깨치고 곧바로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을 몸소 체득하였다”며 “글 쓰고 책 읽는 것이 가장 즐거운 취미이며 고로 한글창조에 공헌한 모든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편집자

한글은 세종의 애민정신과 신미대사 헌신 있었기에 탄생

여름휴가 때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요즘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려서인지 내가 거주하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조기 종영되었다. 바로 ‘나랏말싸미.’ 줄거리는 대충 다음과 같다. 권력층이 지식과 문화를 독점하는 시대에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금 세종은 모든 백성이 쉬이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그 글자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고 세종은 연일 고민과 고뇌에 빠져드는데 이 때 스님 ‘신미’가 나타나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둘은 마침내 우리의 위대한 글자 한글을 창제해낸다. 세종의 진정한 애민정신과 신미대사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 ‘한글’의 탄생이 불가능했음을 영화는 그려낸다.

역사왜곡을 한 졸작이라고 혹평하는 댓글들은 대부분 불교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인용해본다. ‘불교신자가 불교머니로 만든 역사왜곡 영화다. 불교는 근거를 대지도 못하는데 지들끼리만 불교가 한글을 창제했다고 우김.’ ‘진행과 구성은 엉망이고 오로지 불교계를 위하여 만들어진 영화 아닌가?’

나는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어떤 부분에서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인가? 한글 창제가 오로지 세종대왕 혼자 이룩한 대업은 아니지 않은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공동 노력으로 한글 창제는 가능했고 역사책이 공식적으로 담아내지 못한 숨은 공로자들은 얼마나 더 많았을 것인가? 그리고 실제로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신미대사를 가까이 하고 각별히 예우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신미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복천암의 사적기(事蹟記)에는 "세종께서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信眉大師)로 하여금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스님의 속가 집안인 영산김씨 족보에도 신미대사가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학문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신미대사의 친동생 김수온은 당시 집현전 학사로 일하고 있었으니 신미대사가 한글창제 과정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음은 그 누구라도 능히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은가?

도대체 왜 이렇게 이 영화를 헐뜯고 비난해대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유교를 숭상했던 시대 미천한 신분일 수밖에 없는 일개 스님이 세종 앞에서 할 소리는 하고 감히 왕과 동격인 양 수없이 맞장을 뜨는(?) 부분이 한국사에서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인 성군(聖君) 세종대왕을 깎아내려 버렸기 때문인가? 한글 창제의 주도자가 세종대왕이 아니라 신미대사로 그려진 점이 역린을 거슬리게 했음은 분명해 보이나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다’라는 편한 마음으로 봐주면 안 되는 걸까?

이 영화가 역사를 심히 왜곡했다고 비난받아야 한다면 2016년에 개봉했던 ‘덕혜옹주’는 수많은 허구를 사실인 양 짜깁기하고 적당히 포장하여 만든 삼류수준에 불과한 영화다. 덕혜가 징용 조선인들을 위로한 장면, 덕혜가 상해 망명을 시도하는 장면, 조선어 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피력하는 장면 모두 거짓임에도 영화 ‘덕혜옹주’의 누적 관객은 무려 560만에 달했고 이번 영화 ‘나랏말싸미’처럼 역사왜곡 관련으로 극심한 비난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물론 영화 ‘덕혜옹주’도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덕혜옹주에 대하여 잘못 알 수 있다는 소위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랏말싸미’가 불교계 위해 특별 제작된 영화라니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 논란으로 인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아니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을 넘어 전국 각지에서 더 널리 인기리에 상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역사에 근거하여 제작되는 영화가 오로지 100% 사실만을 담아내어야 한다면 그리하여 허구와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면 모든 영화계 종사자들은 다른 직업을 알아보아야 하며 전국에 있는 극장은 당장 다 문을 닫아야 한다. 한국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서라도 영화 ‘나랏말싸미’는 필히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

둘째, 영화 ‘나랏말싸미’의 주인공이 스님이므로 불교계만을 위하여 특별 제작된 영화라고 혹평을 하고 영화를 보지 말자고 캠페인을 펼치는 특정 종교인들의 편협하고 불순한 의도가 오히려 세인(世人)들의 관심을 자극하여 흥행에 기여하고 있다. 내가 거주하는 곳에서는 종영되었지만 나는 이 영화를 주위에 더 널리 알릴 것이고 조만간 타 도시로 가서 같이 봐보자고 권할 것이다. 참고로 나에게는 현재 종교가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셋째, 세종대왕의 고결한 인품과 학문을 숭상했던 생애를 헤아려볼 때 그 누구든 학자적 입장에서는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존중받았을 것이며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 능통했던 신미대사 앞이라면 더더욱 그 어떤 비판과 조언도 다 받아들였을 것이다. 세종대왕과 맞장 뜨는 장면, 왕 앞에서 속 시원히 할 소리는 하는 장면이 나는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넷째, 당시는 유교가 주류이고 불교는 비주류이므로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 조력했음이 알려진다면 당시 기득권의 ‘불교 말살 혹은 불교 억압’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불교계를 보호하고자 세종이 신미대사의 공을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고 가정하거나 상상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누가 한글 창제에 주(主)된 공헌을 했음은 별개로 상부 권력층만 독점하는 지식과 문화를 누구나 똑같이 누리게끔 하고 싶었던 세종대왕의 고뇌와 노력은 민본주의(民本主義)정신의 발현이며 전 세계에 널리 자랑할 만하다. 세계 그 어느 군주가 전 계층이 쉬이 배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지식과 문화를 평등하게 누리는 시대를 만들려고 하였나? 그것도 15세기에 말이다.

이제 감정적 비난 아닌 건전한 비판이 있기를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본 후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이 영화에는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창조의 순간을 코앞에서 목격하는 짜릿함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극장을 나서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기 위해 핸드폰의 한글 자판을 하나하나 두드릴 때, 세종이라는 고독한 천재를 향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 할 수 있는 한글이 실은 너무나 유약한 한 인간의 고뇌와 성찰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우리가 가슴으로 느끼게 되고 영화를 보고 나서 나만의 이익만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동체의 행복이 무엇인지 한번쯤 자문해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정말 제 역할을 다한 셈이고 우리 역시 무한의 값어치를 얻게 되는 셈이다.

안상현
안상현

다시 말하지만 영화 ‘나랏말싸미’는 한국사의 역린을 건드린 불순 영화도 아니고 역사를 크게 왜곡한 저질 영화도 아니다. 아무쪼록 감정적인 비난이 아니라 건전한 비판이 있었으면 하고 영화제작의 본래 취지가 잘 받아들여져 흥행에 꼭 성공했으면 한다.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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