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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교수의 나랏말싸미 비판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8.10 01:16
  • 수정 2019.08.12 13:56
  • 호수 1500
  • 댓글 21

불교계 진영 영화로 간주
사찰 단체관람엔 “종교편향”
‘톨레랑스’ 지향과는 딴판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발송한 이번 주 뉴스레터(586호)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무너져가는 영화 나랏말싸미를 애도하며’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종교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연구소로 이곳에서 매주 보내는 뉴스레터는 종교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고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글들을 자주 싣고는 했다.

이번 필자는 한신대 김윤성 인문콘텐츠학부 교수였다. 한신대는 개신교에서 설립한 대학이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을 정도로 진보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더욱이 김 교수는 종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종교학자였다. 19세기 후반 시작된 신생 학문인 종교학은 종교라는 오래된 분야를 다루지만 어느 학문 못지않게 열려 있고 개혁적이다. 기독교적 시각으로 다른 종교를 평가하고 판단하던 기존의 틀을 깨고 각 종교와 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근대 종교학의 아버지라는 독일의 막스 뮐러가 “하나만 알면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던 말은 지금도 종교학의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나랏말싸미’의 역사왜곡 논란 이면에 세종대왕을 완전무결한 성군으로 바라보려는 종교성이 깔려있다거나 다종교사회에서 영화에 스님들이 등장하고 세종이 불교옹호자로 나오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폐쇄성이 거론됐었기에 이 또한 종교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김 교수의 글을 읽어가며 호기심은 곧바로 안타까움으로 바뀌었고, 벽창호처럼 꽉 막힌 고리타분한 종교인과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영화를 ‘진영’ 논리로 몰고 간다. ‘이 영화는 일부 진영의 견해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 일부 진영이란 창작계와 불교계를 말하며, 역사학과 국어학 등의 학계와는 무관하다’ ‘불교계 진영은 나랏말싸미의 제작과 개봉을 매우 반겼다’ 등등 시종일관 이쪽과 저쪽, 불교계와 비불교계로 나눈다.

그는 영화 자체가 역사 왜곡이라고 단정하며, 역사적 개연성이 있을 수 있음도 끝내 외면한다. 원고지로 30매는 됨직한 긴 글에서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왜곡됐는지는 서술하지 않는다. 다만 유일신을 믿는 이들이 절대자 권위를 내세우듯 그도 ‘학계’ 혹은 ‘역사학계와 국어학계’의 권위 뒤에 숨어 ‘세종의 단독업적이나 일부 집현전 학자들의 협력’이라는 기존의 통설과 다른 견해들에 대해선 가차없이 학계와는 무관한 진영의 논리이거나 학문적 검증을 거치지 않는 개인적 견해쯤으로 취급한다.

한글 창제 연구의 권위자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나 김광해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그리고 최근 신미 스님이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펴낸 국어학자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한글과 불교와 관계를 연구한 숱한 학자들의 성과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태도다. 김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그는 한글 창제 후 언해된 게 대부분 불경이라는 것, 세종이 궁궐 안에 법당을 짓는 등 숭불했다는 것, 신미 스님이 언해 및 언해본 보급에 큰 역할을 했던 것, 오랜 세월 한글이 범자나 파스파문자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나왔던 것 등등 역사적 사실조차 거짓으로 여기거나 불편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뿐만 아니다. 그는 ‘불자로서 감독의 종교적 욕심이 과했다’ ‘감독이 불교계 관람독려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런 점을 들어 감독의 창작동기를 불자로서 그의 욕망으로 환원했다’ 등등 견해를 줄줄이 얘기한 뒤 정작 자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슬쩍 발뺌하는 것도 때리는 시어머니는 아닐지라도 말리는 시누이 같아 곱게 비춰지진 않는다.

그는 사찰과 불교단체들이 이 영화를 찾는 것에도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이를 ‘불교계의 관람독려 운동’이라고 명명한 그는 ‘그 운동이 오히려 이 영화의 정체성을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껍질 속에 박제해버리지는 않을지, 그래서 이 영화가 스스로 자초한 역사 왜곡 논란에 더해 특정 종교 편향이라는 또 다른 논란에까지 휘말리며 정말로 영영 무너져버리게 되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고 말한다.

왜곡 논란은 학계가 아닌 언론이 주도했고 개신교 언론도 이 문제를 확산시키는데 한몫 톡톡히 했다. 그로 인해 대다수 영화관에서 상영을 중단했고 상영하는 곳도 새벽이나 밤 시간대여서 일반인들이 보기는 쉽지 않다. 그의 말처럼 손익분기점 330만명은커녕 100만명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찰 스님과 불자들이 어렵게 영화관을 찾아 단체 관람하는 것에 대해 “종교편향” 운운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불교를 다룬 영화에 불교계조차 냉담해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라면 ‘벤허’나 ‘이집트왕자’ 최근 개봉한 ‘천로역정’을 기독교인들이 단체 관람해도 “종교 편향” 운운할 것인가. 이 영화는 ‘진영’에 의해 만들어졌고 역사왜곡을 했으니 비판받아 마땅하고 자신은 이미 ‘애도’했으니 어서 막을 내리라는 것인가.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대해 유니클로 일본 본사 임원이 “불매운동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실적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처럼 “염려스럽다”는 그의 말에 진정성보다 냉소나 야유가 담겨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학창시절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쳤고 개신교 서클 및 교회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제대 후에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목회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잠시 했다고 했다. 이제 스스로를 ‘거의 무신론에 가까운 세속적 종교학자’라고 말하는 그의 이번 글이 기독교 신념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재형 국장
이재형 국장

다만 그가 종교학자로서 종교학이 지향하는 ‘톨레랑스(관용의 정신)’ ‘해석의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뿐이다. ‘종교학이라는 학문은 진리나 신념 자체에 헌신하기보다는 이를 둘러싼 그 효과를 분석하는 일에 더 관심을 둔다’고 자신이 과거에 밝혔던 견해와도 차이가 커 보인다.

그는 2007년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무신론 운동이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비판에 지나치게 골몰하는 모습을 우려하며 “그 비판은 건전하고 유용한 충고를 넘어 흔히 맹목적인 비난이 되어 버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서로 다른 신념의 소유자들 사이의 대화 자체를 가로막습니다. 대화는커녕 갈등만 조장할 뿐이죠”라고 말했었다. 12년 뒤 김 교수가 쓴 이 글이 꼭 그렇다. 톨레랑스와 해석의 다양성은커녕 편견과 종교적 갈등만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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