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영화평론가가 본 ‘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
15. 영화평론가가 본 ‘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
  • 법보
  • 승인 2019.08.15 16:32
  • 호수 1501
  • 댓글 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평론가 문학산(문관규)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가 최근 ‘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과 관련한 글을 보내왔다. 문 교수는 “영화적 개연성은 영화적 해결이라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인해 영화적 현실을 확장한다”며 “영화적 개연성의 부족은 상상력의 빈곤이며 영화적 해결이 없는 영화는 속없는 만두처럼 무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팔만대장경에 대한 메타포를 받아들일 때 역사 왜곡의 안경은 폐기처분되고 세종과 신미 스님 그리고 소헌왕후의 애민과 자비심이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

영화 제작 목적은 사실성보다 창의성에 방점

영화 자체보다 영화로 인해 촉발된 쟁점과 역사적 의의로 더 유명해진 작품이 있다. 노동자의 파업 과정을 담아내어 한국 독립영화의 전설이 된 ‘파업전야’나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수상으로 문학잡지까지 특집으로 다룬 ‘기생충’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 이유는 한글창제의 주역이 집현전 유학자가 아닌 스님이 참여했다는 설정 때문이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신미 스님의 자비심이 공조하여 유학자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완성한 훈민정음 창제의 비사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허구의 세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사실성보다 주관적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즉 역사적 사실성보다 작가의 자의적 상상력을 우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기록하고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을 담아내기에 오히려 시를 철학적으로 판단하여 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를 영화로 치환하면, 영화는 역사를 부분집합으로 하며 그 부분집합을 통해 더 넓은 합집합을 만들어 인간과 역사를 성찰하게 한다. 영화의 제작 목적은 부분집합의 사실성보다 합집합의 창의성과 설득 가능성 그리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숭고함에 방점을 찍는다.

‘인터스텔라’ ‘쥬라기 공원’도 과학적으론 오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에서 쿠퍼는 우주로 떠난다. 딸 머피는 책장의 부호를 해독하여 떠나는 것을 만류한다. 책장 너머의 신호는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돌아온 쿠퍼가 보낸 것이다. 쿠퍼는 블랙홀을 통과하여 블랙홀의 중심인 테서렉트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딸에게 간 것이다. 우주는 지구보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쿠퍼는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어린 딸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블랙홀로 시간을 거슬러간다는 과학적 가설을 적용한 영화적 장치이다. 이 부분으로 인해 과학의 왜곡을 운운하면서 영화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상영제한을 요청하거나 관람거부로 이어지는 해프닝은 없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은 호박 화석 속에 든 모기로부터 공룡의 혈액을 채취해 그 DNA로 공룡을 탄생시킨다는 전제로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은 화석 속의 유전자로 생명체를 되살리기는 어렵다는 과학적 의견을 피력했다. 관객들은 과학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공룡에 환호했고 극장을 가득 채우면서 지지를 표명했다. 오래된 호박에 든 공룡의 DNA는 공룡의 출현이라는 영화적 개연성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충분했다. 영화적 개연성은 영화적 해결이라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인해 영화적 현실을 확장한다. 영화적 개연성의 부족은 상상력의 빈곤이며 영화적 해결이 없는 영화는 속없는 만두처럼 무미하다. 영화적 개연성이 없는 상투적 영화에 130억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나랏말싸미는 감독 의도 돋보인 작품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의 창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돋보인다. 훈민정음 창제는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영화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신미 스님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이 지점에서 일부 단체는 통념에서 벗어난 시각에 대해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의 칼을 들이댔지만 기존의 한글창제론과 다른 방향으로 영화를 이끌려는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문제는 신미 스님이 가공인물인가 아니면 역사적 실존 인물인가 여부이다. 전자라면 포스트 모던한 팩션영화이고 후자이면 불교도가 주인공인 불교영화이다. 이 영화는 영화적 해결과 개연성이 풍부한 불교영화다. 신미 스님은 세종대왕으로부터 ‘선교도총섭밀전정법비지쌍운우국이세원융무애혜각존자’라는 법호를 받은 역사적 실존인물이다. 1960년대 고승 주인공의 불교영화는 항일의병을 위해 스님들의 초능력이 부각되었다. 고승은 얼음 빙(氷)자를 허공에 던져서 왜병들이 얼음에 갇히게 하는 신통술도 보여주었다. 그 작품은 신통술 사용에 대한 사실 왜곡의 문제보다 국난을 극복하는 한국적 영웅과 호국의 주제로 관객의 지지를 받았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시대 분위기를 담아냈다. 강신항은 한글 창제 진행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이단을 배척하고 사대숭한(事大崇漢)의 사상이 골수까지 박혀있었던 유신들의 틈바구니’로 표현했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권문세가 유학자들의 반대와 애민주의자 세종과 불국토를 꿈꾸는 신미 스님의 백성을 위한 창제 노력이라는 대결 구도로 보여준다. 대결 구도는 중요한 갈등의 축이며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사실적 반영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자립 의지와 애민 담겨

개혁 입법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대라는 현재 정치상황도 읽을 수 있다. 세종대왕은 배척받은 불교의 대표인 신미 스님과 여성의 대표인 소헌왕후와 궁녀들이 지지를 받는다. 사대부 유학자들이 권력의 주도세력이었다면 스님과 여성이라는 타자들이 저항하면서 백성을 위한 글자인 한글 창제의 비밀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세종의 한글창제는 중국 사신의 옷을 찢는 행위와 중국 서적을 내치는 모습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자립 의지와 그 중심에 백성을 위한다는 애민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영화적 상상력은 한글의 원리가 팔만대장경에 들어있다는 것과 모음 문제를 한옥의 서까래 형상을 통해 해결하는 장면으로 펼쳐진다. 이는 사실의 왜곡보다 영화적 해결에 방점을 찍힌 감독의 창의적 연출의 발로다. 마지막에 신미 스님은 세종에게 두 가지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복숭아 하나에 씨가 몇 개인지 누구나 알지만 복숭아씨 하나에 몇 개의 복숭아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와 “전하는 백성들에게 팔만대장경을 보냈다”는 취지의 말씀이다.

팔만대장경 메타포 받아들일 때 역사 왜곡 안경 폐기처분

문학산 부산대 교수
문학산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한글은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 중인 경전만이 아니다. 그것은 박경리의 ‘토지’이거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일 수도 있으며 최순우의 산문집이며 공자의 ‘논어’와 노자의 ‘도덕경’도 모두 백성들에게 마음의 영양제인 한글로 된 팔만대장경의 다른 이름이다.

팔만대장경에 대한 메타포를 받아들일 때 역사 왜곡의 안경은 폐기처분되고 세종과 신미 스님 그리고 소헌왕후의 애민과 자비심이 드러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3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류선태 2019-08-28 01:51:03
역사는 소설이나 학문이 아닙니다
글을쓰는 작가의 추리나 가정도
아니고요 역사는 실제 있었던 일을
기록한것입니다 더구나 실록은 말할것도
없고요 조섯왕조실록이란것은 조선왕조에서 실록에 기록할만한 일들중에서 실제
있었던일을 사실대로 적은 책입니다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은 왕의 잘했던일이나. 잘못했던 일들도 정확하게 기록한것입니다 그과정에서는 왕도 일체 관여하지 못하게 되있습니다 신미대사가 만들었다면 분명히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기록했을것입니다

류선태 2019-08-28 01:37:08
이리한 연구가. 있은후에 구체적이고 확실한 자료가 있는 상태에서 신미대사가 만들었고
산스크리트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것입니다
앞으로 한글창제에 관해서는 학자들간에
더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바른
연구를 위해서는 한글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학문적 이념이나 선입감이나 종교를 떠나서
개콴적이고 보편적인 중도적인 입장에서 바른 연구가 있은후에. 한글이 신미대사가
범어를 토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세종대왕께서 우리 가림토를 기초로 만들었는지
바르고 확실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류선태 2019-08-28 01:07:27
신미대사가 만들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읍니다 한글창제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활은 했을수도 하여겠지만 구체적인 증거나
자료도 없는 없는 상태에서 신미대사가
만들었다는것은 정말 역사왜곡일수도
있읍니다 그리고 범어를 토대로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범어와 한글은 발음이나
글자모양부터. 완전히 다릅니다
범어를 토대로 만들었다면 범어에서 한글의
자음모음으로 어떻게 글자모양이 형성되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인도 구자라트지방에 가면우리 한글과 비슷한 글자가 있다고 합니다 구자라트글자에서. 발전한게 지금의 산스크리트라고
들었습니다 초기베다에 있는 산스크리트 글자가 어떤형태인지 이런것부터 먼저 연구한후에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글자에서
파생되었는지

아랫 사람아 2019-08-23 17:53:10
단세포 동물이냐, 아님 성경은 오류 하나 없다는 개독이냐.
세상이 그리 1차원적이면 사는 게 그리 어렵겠냐.
참 편히 사는 것 같다면 전혀 부럽지는 않구나

역사왜곡의 근거 2019-08-23 14:33:46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두 가지 구문 참조. 세종 25년(1443)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라는 구문과 문종 즉위년(1450) '대행왕(세종대왕)께서 병인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라는 구문이다.
병인년은 1446년을 뜻하는데, 세종대왕이 1443년 한글 창제 후 3년 만에 해설서와 함께 이를 반포한 해다. 즉, 역사서에는 세종대왕이 '친히' 한글을 창제했다고 적혀 있으며, 세종대왕이 신미의 이름을 비로소 알게 된 시기가 한글을 창제한 후였다고 기록돼 있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뉴스
조선왕조실록은 당시의 왕도 신하도 볼 수 없고 후대의 왕과 신하도 기록을 볼 수 없어 눈치를 보지 않고 기록할 수 있었으므로 객관적인 책이라 볼 수 있다. 고로 한글창제는 세종대왕의 단독업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