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사 주지 만당 스님 기고-상
영광 불갑사 주지 만당 스님 기고-상
  • 만당 스님
  • 승인 2020.01.13 17:58
  • 호수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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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 불교 전한 마라난타존자 고향, 간다라 맞다”

‘천축’은 옛 인도의 광범위한 지역 일컫기에 간다라도 포함
해동고승전, 아도화상에는 ‘천축’ 마라난타에는 ‘축건’ 기록
마라난타는 천축 중에서도 간다라 출신임을 밝히려는 의도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한 마라난타 스님의 고향이 간다라 지역이 맞는지를 두고 논쟁이 붙었다.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12월10일 법보신문 기고를 통해 마라난타 스님이 간다라 출신이라고 확정지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 가운데 영광 불갑사 주지 만당 스님은 1월8일 법보신문에 보내온 반론문을 통해 마라난타 스님이 간다라 출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반박했다. 본지는 만당 스님 기고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간다라는 불교의 유식학과 정토불교와 같은 대승불교가 발달했던 곳이다. 사진은 간다라 불교유적지인 파키스탄의 탁트히바리 사원. 조계종 총무원 제공
간다라는 불교의 유식학과 정토불교와 같은 대승불교가 발달했던 곳이다. 사진은 간다라 불교유적지인 파키스탄의 탁트히바리 사원. 조계종 총무원 제공

최근 이주형 서울대 교수가 법보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고 이로 인한 오해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해 이 반론을 쓰게 됐다. 이 교수가 밝혔듯이 간다라는 아쇼카왕의 불탑 건립으로부터 불교가 전해지고 불법의 교화가 전승·발전돼 왔다. 쿠샨왕조 카니시카왕의 후원 아래 경전 결집이 이루어지고 유식·정토불교와 같은 대승불교가 발달한 곳일 뿐 아니라, 처음으로 불상을 조성하면서 불교조각 예술문화가 꽃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간다라불교의 사상과 문화, 예술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져 한국의 불교문화가 발달하였으니 한국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간다라 불교문화권은 좁게는 탁실라, 페샤와르, 스와트 지역을 그 중심으로 하며, 넓게는 캐시미르, 펀자브, 아프가니스탄 카불 지역까지를 포함해 말한다. 먼저 이 교수의 사료 해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이 교수는 중국 양나라 승우가 지은 ‘홍명집(弘明集)’(518년)을 인용해 ‘축건(竺乾)은 천축(天竺)’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보통의 경우 축건을 천축의 동의이어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서술자의 의도나 문맥에 따라서는 축건을 천축보다 좁은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은 후한 이후부터 인도 지역과 교류가 이루어지는데 인도 지역을 지칭할 때 ‘천축’ ‘호(胡)’ ‘서역(西域)’이라는 명칭을 혼용해 쓰고 있다. ‘호’나 ‘서역’이라는 명칭은 천산북로와 천산남로에 존재했던 쿠차, 우전, 소륵, 호탄 등의 나라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인도 전 지역을 아우르는 말로도 쓰였다. ‘천축’이라는 명칭도 중국에서 넓은 의미의 인도 전 지역(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포함)을 포함해 부르던 지명임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타클라마칸 사막 위아래에 위치한 천산북로와 천산남로에 있었던 나라들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해 쓰이기도 했었다.

그 예로는 남북조시대 양나라 혜교 스님이 찬술한 ‘고승전’(519년), 구마라집 조에서는 구마라집 스님이 쿠차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천축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727년)은 혜초 스님이 오천축(五天竺)을 순례하고 기록한 여행기인데 여기에 나오는 오천축은 중천축, 동천축, 남천축, 서천축, 북천축을 말한다. 왕오천축국전에 의하면 중천축은 지금의 인도 중심부와 북인도 지역이었고, 남천축은 데칸고원 이남지역이었다. 또 동천축은 벵골만 연안 현재 인도의 동북지역과 방글라데시 지역이었고, 서천축은 현재 파키스탄의 신드, 발루치스탄주와 페르시아(현재 이란) 지역까지를 말하였다. 북천축은 넓은 의미의 간다라 지역 즉, 탁실라, 페샤와르, 스와트, 길기트, 펀자브, 캐시미르, 아프가니스탄 지역까지를 포괄해 일컫는 명칭으로 쓰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천축’은 굉장히 넓은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교수가 기고문에서 말한 것처럼 천축의 동의어로 축건(竺乾)이라 하든, 서천(西天)이라 하든, 서건(西乾)이라 하든, 서역(西域)이라 하든 옛 인도의 모든 지역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교수 글의 문맥을 짚어 보면, 축건은 천축이고 천축은 인도이므로 축건은 간다라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의 이러한 해석과 견해는 잘못됐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수의 견해대로라면 간다라는 옛 인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천축이 의미하는 지역은 현재의 인도 영토만으로 국한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잘못됐다. 왜냐하면 첫째, 간다라(현재의 파키스탄 지역)는 예부터 서북인도라고 칭해지는 인도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간다라를 인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대당서역기’(648년)에서도 간다라국을 북인도라고 분류하고 있다. 둘째, 영국은 1757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식민지를 넓혀가다가 1877년 영국령 인도제국을 세우고 인도 대륙 전체를 지배하였는데,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유혈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을 했다. 그러다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다시 독립하였으므로, 현재의 파키스탄 즉 간다라 지역이 예전의 인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축이 지칭하는 영토의 범위를 현재의 인도 땅으로만 국한해 해석하는 잘못된 오해는 바로 잡아야 하며, 옛 인도의 서북지역인 간다라도 ‘왕오천축국전’과 ‘대당서역기’에서 보듯이 당연히 ‘천축’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라난타존자 스님의 고향을 어디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 살펴보겠다. ‘삼국사기’(1145년)와 ‘삼국유사’(1280년경)에는 마라난타 스님을 ‘호승(胡僧)’이라고만 하고 있다. 그런데 각훈 스님이 찬술한 ‘해동고승전’(1215년)에서는 ‘호승(胡僧)’이라고 하면서도 바로 이어서 고기(古記)에 의하면 ‘축건(竺乾)에서 중국으로 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해동고승전’의 기록에 대한 분석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거니와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축건은 천축을 의미하며, ‘해동고승전’의 축건을 천축의 간다라로 잘못 번역해 마라난타가 간다라 출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생겨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라난타 고향은 간다라가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못 박고 있는데, 이교수의 이러한 결론은 독선적 오류일 뿐이다.

바마라유적지의 와불.
바마라유적지의 와불.

백번 양보해서 ‘축건’이 천축을 의미하고, 그렇기 때문에 마라난타 스님은 ‘천축’ 출신이라고 하자.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천축은 옛 인도의 광범위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므로, 천축이라는 지명의 의미를 현시대의 인도 영토로 국한해서 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따라서 천축이라는 지명의 범위에는 옛 서북인도 지역인 간다라도 당연히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마라난타존자의 고향이 ‘천축’이므로 간다라는 고향이 아니라고 단정해 오판하고 있다. 간다라는 천축이 아니라는 말인가. 간다라가 고대인도(천축)의 한 부분이었다고 이 교수도 자기 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처럼 간다라도 천축에 포함되므로 마라난타존자의 고향이 간다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해동고승전’ 권1에서는 마라난타 스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승려 마라난타는 호승(胡僧)이다. 신이와 감통(感通)은 정도를 짐작할 수 없었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로 뜻을 굳혀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그는 원래 축건(竺乾)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인재를 따라 신(身)을 전하고 향의 연기를 증거로 해 벗을 불러들였다. 그는 위험에 부딪치고 험난한 일을 겪었지만 어려움과 괴로움을 무릅쓰고 인연이 있으면 따라나서, 아무리 먼 곳이라도 밟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백제 제14대 침류왕이 즉위한 원년(384년) 9월에 마라난타가 진나라에서 들어오니 왕은 교외에까지 나가 그를 맞이하였으며, 궁중에 모시고 공경히 받들어 공양하면서 그의 설법을 들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나오는 아도화상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승려 아도는 본래 천축(天竺)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오나라에서 왔다고도 하며, 혹은 고구려에서 위나라로 들어갔다가 뒤에 신라로 돌아왔다고도 하지만 어느 말이 옳은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풍모와 거동이 특이하고 신통변화는 더욱 기이하였다. 항상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며, 개강하려고 할 때마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꽃비가 내렸다. 처음 신라 눌지왕 시대에 흑호자(黑胡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墨胡子)라는 사람이 고구려에서 일선군으로 들어와 널리 교화할 인연이 있었으니, 고을 사람 모례가 집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어 그를 모셨다.…”

‘해동고승전’은 마라난타 스님을 ‘호승(胡僧)’이라고 하면서, 다음 줄에서는 ‘원래 축건(竺乾)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하고 있다. 이 축건에 대해 장휘옥 교수는 ‘해동고승전 연구’(1991년)에서 ‘천축의 간다라’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반해, 이 교수는 축건은 천축을 말하므로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고 간다라를 제외한 인도라고 해야 맞다고 한다. 이 견해는 얼핏 타당한듯하지만 ‘해동고승전’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아도화상에 대한 기록과 비교해 보면 이 교수보다는 장휘옥 교수의 해석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도화상을 일명 흑호자(黑胡子)라고 한다고 했는데, 이 이름은 ‘검은 얼굴빛을 한 호승(胡僧)’을 의미하는 별칭이라고 볼 수 있다. 마라난타 스님이든 아도 스님이든 같은 서역의 호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도화상에 대해서는 ‘천축인(天竺人)’이라고 표현하고, 마라난타존자에 대해서는 ‘축건에서 왔다’고 하고 있다. 당 전후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축건이라는 명칭을 각훈 스님이 당나라 멸망(907년) 후 300여년 뒤에 부득불 쓰고 있는 까닭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천축이라는 명칭을 몰라서 축건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뒤에 나오는 아도화상에 대해서는 천축인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당 스님
영광 불갑사 주지

이 두 스님에 대한 기록을 비교해 보고 각훈 스님의 서술 의도를 숙고해 보건데, 보통은 축건을 천축의 동의이어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각훈 스님이 옛 기록(古記)에 나와 있는 마라난타 스님의 출신지를 표현하기 위해 실질적 의미를 담아서 의도적으로 ‘축건’이라고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마라난타 스님의 고향은 ‘축건’이고, 축건은 ‘천축의 건타라(간다라)’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마라난타존자의 고향은 간다라인 것이다.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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