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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놓인 고구려 마애불…“무관심 속 방치”

  • 성보
  • 입력 2022.01.21 22:50
  • 수정 2022.01.25 20:02
  • 호수 1618
  • 댓글 4

마애불 인근 표지판 유실됐지만, 시 담당자 “사라진 줄 몰랐다”
문명대 교수 “절리상황 악화”…도림 스님 “예불 장소 성격 잃어”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애불이자 유일한 고구려 석조불상으로 국보급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정작 문화재청·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면서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미술사학 권위자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고구려 유일의 ‘교각미륵불상’과 신라 최초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군’이 공존하고 있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장소”라고 밝혔지만, 지자체는 인근 400m 지점에 있던 ‘봉황리 마애불상군’ 안내판이 유실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구려 유일의 마애불로 추정되는 ‘봉황리 마애불상군’ 윗쪽 암벽.
고구려 유일의 마애불로 추정되는 ‘봉황리 마애불상군’ 윗쪽 암벽.
신라 최초의 마애불로 추정되는 ‘봉황리 마애불상군’ 아래쪽 암벽.
신라 최초의 마애불로 추정되는 ‘봉황리 마애불상군’ 아래쪽 암벽.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IC에서 ‘봉황리 마애불상군’까지의 거리는 20.3km. 하지만 마애불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반면 마애불에서 1.8km떨어진 ‘봉황자연휴양림’과 4.7km떨어진 ‘수룡산림욕장’은 갈색 표지판으로 표시돼 38번 국도에 세워진 상태다. 

 38번 국도에 세워진 문화재 표지판들. 반면 봉황리 마애불상군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었다.
38번 국도에 세워진 문화재 표지판들. 반면 봉황리 마애불상군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었다.

다음 카카오맵(2020년 5월 촬영)과 네이버 지도(2020년 12월 촬영)를 통해 로드맵을 확인해본 결과 마애불 인근 400m지점에서 표지판이 1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사라진 상황이었다.

안내판 부재와 관련해 충주시청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안내 표지판이 사라진 줄 몰랐다”면서 “아마 한포천을 건너는 다리를 공사하면서 없어진 것 같다. 다음주 중으로 현장에 나가봐야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보통은 내비게이션을 찍고 오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의 정확도가 떨어져 마애불을 직접 찾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법보신문 취재진이 내비게이션을 따라 현장을 찾았지만 마애불 위치가 부정확해 혼선이 이어졌다.

마애불로 향하는 진입로에는 갈래길이 있다. 이곳에서 우측 둑길로 올라가야 마애불을 만날 수 있지만 ‘더 길다운’ 길이 왼쪽이다보니 사람들 대부분이 인근 돼지농장으로 향한다. 때문에 돼지농장은 마애불을 친견하기 직전, 꼭 한 번씩 들리게 되는 ‘성지 순례코스’가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농장사장은 매직펜으로 “마애불상→”을 휘갈겨 임시로 ‘수제’ 간판을 세운 상태다. 

길을 헷갈려 농장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매직펜으로 “마애불상→”을 적어 임시 표지판을 세웠다.

차량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둑길을 지나면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부터 가파른 철계단을 100여개 오르면 그제서야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문화재청이 2020년 발간한 ‘2019 국가지정 건조문화재 정기조사(국보·보물)’에 따르면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A(양호)~F(즉시조치) 6등급 중 C등급(주의관찰)을 받았다. 당시 현장을 조사한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은 “불상 상부 암반 틈 사이로 수목이 자라고 있어 가지 치기와 제거 조치가 주기적으로 필요하다”고 기재했다.

1월11일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는 온도가 낮은 겨울이라 이끼류·지의류에 의한 오염은 크지 않았다. 또 2013년 한 차례 보존처리를 해 약품처리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마애불이 새겨진 암반 위로 고사목과 잡초가 있었다. 그 앞으론 돌조각과 흙이 있어 비가 오면 금새라도 떨어질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특히 고구려 마애불로 분석되는 ‘교각미륵불상’(고구려 마애불)은 두상이 깊게 돋을새김돼 있어 돌조각이나 토사가 떨어지면 부딪힐 가능성도 커보였다.

이와 관련해 문명대 교수는 “마애불이 새겨진 암벽의 배가 되는 높고 넓은 전실이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우선 두상 위에 지붕이라도 씌워 서둘러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상 표면에 진행되고 있는 절리 현상도 우려했다. 문 교수는 “교각미륵불상이 절리현상으로 계속 손상을 입고 있어 치명적인 탈락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애불 주변 안전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애불 하부에는 그을림이 생겨 표면이 흑색으로 변색돼 있었다. 마애불을 둘러싸고 있는 낮은 울타리에는 ‘문화재 출입·접촉 금지’가 적힌 안내판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모두 지워져 글씨를 인식할 수 없었다. 

그나마 마애불은 인근에 거주하는 한 스님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 1996년 태고종으로 출가한 도림 스님은 2020년 6월부터 매일 이곳에서 예불하고 있다.

스님은 “마애불 앞 바닥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 예불을 드리면서 늘 죄송한 마음”이라며 “문화재 돌봄사업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람이 오지만 평소엔 눈이 와도 이곳을 정비하는 사람이 없다. 늦은 밤 무속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CCTV가 한 대라도 있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스님은 ‘봉황리 마애불상군’이 예불 장소로서 성격을 완전히 잃어 아쉽다고 전했다. 이어 “미술사나 역사에 문외한이지만 남한강 지류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마애불이 두 곳에 나눠 새겨져 있다는 것은 희유한 일”이라며 “그러나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최소한으로라도 정비돼 안전된 상태에서 제대로 예불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마애불상군 앞 인근 돼지축사 공장.
마애불상군 앞 인근 돼지축사 공장.

충주=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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