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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보현사 주지 묵원 스님

소외이웃 돕기 30년…“불심 지켜줄 다문화가정센터 세울 터!”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묘봉 스님 은사로 출가
충무불교대학 창립 주도 31년 역사 속 불법 홍포
태고종 총무원 소임놓고 100일 삼만배 5년 참회
라오스 성지순례 하며 ‘나누우리’ 설립 원력
해갈기쁨 유년기억 착안 캄보디아 학교 식수시설
수술 병상서도 ‘카톡 편지’ 긴급 요청에 봉사단 운집
“통영사암연·신행단체 거사림에 늘 감사!”
아시아 출신 이주민 불자 “그들 불심 지켜주고 싶어”

다문화가정 불교센터 불사를 희망하는 보현사 주지 묵원 스님은 “언제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면 이주민과 그 자녀들이 편견으로 겪는 상실감을 낮추고 적극적인 사회문화 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문화가정 불교센터 불사를 희망하는 보현사 주지 묵원 스님은 “언제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면 이주민과 그 자녀들이 편견으로 겪는 상실감을 낮추고 적극적인 사회문화 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하지만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름에서 나온 달처럼 능히 세상을 비춘다.’(‘법구경’) 

묵원(黙圓) 스님은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산과 바다 같아도 참회하면 소멸한다’는 ‘계초심학인문’의 일언을 품고 온 마음을 다해 올려온 기도다.
 
1980~90년대 태고종 발전의 기틀을 다진 운산 스님은 총무원장 재임 중 비리 의혹을 받아 2009년 8월 끝내 사임했다. 당시 총무·재무 소임을 보았던 묵원 스님에게도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그러나 공사(公私)에 관한 한 늘 분명했던 묵원 스님이었기에 사부대중 앞에서도 떳떳했다. 부정한 일에 연루된 건 아니지만 총무원을 떠나며 종단에서 발행하는 한국불교신문에 사과문을 실었다. 자신의 행정과오로 피해를 본 대중이 있다면 참회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동안거 때마다 ‘하루 삼백배 100일 삼만배’ 참회 기도를 올려왔더랬다.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는 여덟 살의 어린 아들을 친척 집에 맡겨두고 통영을 떠나 토함산 불국사로 들어가 삭발염의했다.(1964) 혜화(慧華) 스님이다. 포항 임허사(臨虛寺)에 머문 혜화 스님은 당대 선지식 덕암 흥덕(德庵 興德·1913∼2003·태고종 13,16세 종정) 스님과 법은사 인연을 맺을 만큼 정진에 힘썼다. 1970년 통영으로 돌아온 혜화 스님은 미륵산(彌勒山)과 마주한 천암산(天巖山) 자락의 움막에 임허사에서 이운해온 토불(土佛)을 봉안하고는 보현사(普賢寺)라 했다.

10대의 아들도 절로 들어왔다. 대덕스님들이 보현사를 자주 찾곤 했는데 통도사 문중이었던 묘봉(妙峰) 스님이 일렀다. 

“너는 내 상좌다.”

절이 집이었고, 집이 절이었던 청년에게 출가는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서울 약사사를 찾아가 묘봉 스님을 만나 은사 인연을 맺었다.(1975) 이후 계명대·동방불교대·동국대를 졸업했다.
 
그사이 작은 농막에도 20년의 세월이 깃들며 사격이 갖춰졌다. 절에 안착한 묵원 스님은 어린이·청소년 법회부터 열었다.(1990) 통영구치소 유치장을 찾아가서는 감시탑을 법석 삼아 때로는 불교 우화를 흥미진진하게 풀고, 때로는 ‘부모은중경’의 한 대목을 전했다. 법무부 통영구치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31년의 역사를 가진 충무불교교양대학 건립(1991) 원력을 세운 것도, 태고종 긴급구호단체인 ‘나누우리’를 설립(2010)한 것도 묵원 스님이다. 

남해에서 불어온 바닷가 찬바람이 천암산을 훑고 법당으로 파고들었다. 그 냉기는 삼백배를 올리는 묵원 스님의 무릎으로 차 들어왔다. 닳아가는 연골 틈으로 물이 찼다. 그때 한 생각이 스쳐 갔다.

‘참회는 끝났다. 부처님께서 증명하셨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보이시는 듯했다. 법당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도 멀리 솟아 있는 미륵산(彌勒山)이 확연히 보였다.(2014)

‘하루 삼백배, 100일 삼만배’는 총무원 행정 과정에서 불거진 일에 대한 참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출가의 길에 들어선 자신을 성찰해 가는 구도였을 터다.

‘사람이 악업을 지었을지라도 후에 선업으로 전환할 줄 안다면 그는 구름에서 벗어 난 달처럼 능히 세상을 비춘다.’(‘법구경’)

조계종이나 태고종에 속하지 않은 범 종단 충무불교교양대학은 졸업생만도 2000명에 이른다. 용화사 일각(壹覺·전 조계총림 방장) 스님, 미래사를 중창한 종욱(宗旭) 스님, 통영불교거사림·룸비니회를 이끈 송정연 법사, 경상대 해양과학대학의 최중호 교수가 뜻을 함께해 주었기에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충무 인구는 6만명이었습니다. 1년 과정을 개설한 들 서너 해 지나면 운영 자체도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저는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과정에 충실해 보자 했습니다. 마땅한 공간도 없기에 통영의 거사림회관을 빌렸는데 개교 첫해인 1991년 100여명이 운집했습니다. 바닥에 앉아 강의를 들어야 했을 정도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는 그 열정에 우리는 감동했습니다.”

10년 후인 2001년 충무불교교양대학 단독 건물을 세웠다. 묵원 스님은 이 대학 창립 때부터 13년 동안 교학처장직을 수행하며 강의했다.

태고종 총무원 소임을 놓은 묵원 스님은 도반들과 함께 라오스로 성지순례를 떠났다.(2009) 여행사 사장의 권유로 현지 아이들에게 옷을 나누어 주었는데 왠지 가슴 뭉클했다. 비행기 직항이 없던 당시 귀국 중 베트남에서 묵었다. 그날 저녁 묵원 스님이 제안했다. “우리도 공익단체 하나 설립하자!” 도반들은 그 자리서 동의했다. 다음 해인 2010년 3월 ‘나누우리’를 창립했다. 

아쉽게도 라오스와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현지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었는데 현지 공무원들이 나누우리측에 교육세까지 내라 강요했다고 한다. 하여 캄보디아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식수 시설 건립불사’를 시작했다. 

“유년의 추억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한여름 학교 운동장에 모여 뛰어놀다 목마르면 식수대로 달려가 수도 꼭지를 ‘확’ 틀어 쏟아지는 물을 받아 마신 순간을 말입니다. 해갈과 함께 차오르는 기쁨의 순간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해발이 낮기에 최신식 기계를 이용해 지하 100m 이상의 관정을 파야 한다. 성능 좋은 모터도 설치해야 한다. 하나의 식수 시설 공사에 투입되는 자금만도 2000만 원이다. 벌써 10개를 설치했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 동안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밤마다 아이들의 눈이 밟힐 정도다.

슬리퍼를 신어보며 기뻐하는 캄보디아 아이들.
슬리퍼를 신어보며 기뻐하는 캄보디아 아이들.

“한 학교의 재학생은 약 1000명입니다. 그들에게 슬리퍼를 한 켤레씩 나눠주었는데 이리 신어보고 저리 신어보며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신지 않고 품속에 넣어 갔습니다. 한 학생에게 ‘왜 신고 가지 않느냐?’ 물으니 ‘아버지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대한약사회에서 매년 회충약 5000정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 두 정씩 주어집니다. 첫 알 복용 한 달 후 또 한 알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것을 지키는 아이는 없습니다. 한 알은 동생이나 누나, 형에게 줍니다.”

나누우리는 캄보디아 초등학교 방문 때마다 학용품과 축구공, 자전거 등을 전해 주었다. “이사장 도산 스님을 비롯한 이사 스님들의 헌신으로 나누우리의 역사는 더해지고 있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묵원 스님은 코로나19 방역봉사에도 적극 나섰다.
묵원 스님은 코로나19 방역봉사에도 적극 나섰다.

묵원 스님은 2010년부터 불자 200명에게 매일 아침 ‘카톡 편지’를 보냈다. 새벽예불을 마친 후 서재에서 부처님 말씀을 정리해 오전 6시 정각에 띄운다. 200명에 당도한 편지는 이웃 친구들에게도 전해져 약 2000명이 공유하고 있다. 참회기도 때부터 시작한 무릎 통증을 계속 방치하면 위험하다는 진단에 2021년 6월 수술했는데, 입원해 있던 병동에서도 카톡 편지를 송출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왔다. 때로는 봉사단 긴급모집 창구로도 활용한다. 

‘사랑이모이는샘’ 보수 현장.
‘사랑이모이는샘’ 보수 현장.

“지적장애인 거주 시설인 ‘사랑이모이는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폐교를 활용해 운영하는 시설인데 건물이 너무 낡아 보수가 절실했습니다. 카톡 편지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리자 통영불교사암연합회, 통영불교거사림, 나누우리 봉사단, 해양경찰 봉사단, 경찰직원 등 50명이 일시에 모였습니다. 고압세척으로 쌓인 먼지와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 페인트로 단장했습니다.” 

아픔도 있었다. 급성 백혈병으로 수술을 앞둔 12살 아이가 백혈구 성분이 충분한 피를 구했다. 카톡 편지에 이 사실을 타전했다. 서울 근교의 스님 30명이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갔다. 10명의 스님 피가 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다음 날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11시 고향으로 돌아온 아이를 영안실에 안치했다. 지난 2월 하순 49재를 지냈다.

통영 보현사 전경.
통영 보현사 전경.

2003년 보현사 주지를 맡은 후 사격을 높여가며 사찰부지 6611㎡(2000평)를 확보했다. 중창불사 계획은 세웠지만 실행에 옮길 생각은 아직 없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혜화 노스님의 정성이 배어있습니다. 함부로 손대지 않으려 합니다. ”

내심 꼭 하고 싶은 불사는 따로 있다고 했다. ‘다문화가정 불교센터’다. 네팔, 태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 출신의 불자 이주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우리 사회 이주민 가운데 불교국가 출신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아쉽게도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종교단체의 80%는 기독교라고 합니다. 선교에 의한 개종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그들이 고국에서 키워온 불심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습니다. 통영에도 이주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제든 기도할 수 있는 여법한 법당을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언어교육, 문화체험, 노동상담 등을 돕고자 합니다. 편견으로 겪는 상실감을 낮추고 적극적인 사회문화 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보현사는 나누우리, 소외이웃 돕기, 봉사 활동 등의 나눔불사를 위해 매년 2000만원을 예산으로 편성한다. 전통사찰이 아닌 작은 절 살림으로는 규모가 크다. 국가 보조금을 받는 것도 아니다.

“겨울에도 보일러는 아침 2시간만 가동합니다. 신도님들 오시면 전기난로 켭니다. 태양광을 설치했기에 한 달 전기료 크게 걱정 안 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아끼면 불사금 마련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소외된 이웃이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도록 30여년 동안 따듯하게 품어 왔다. 통영에서 묵원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저 홀로 한 일이 아닙니다. 보현사를 비롯한 통영불교사암연합회와 통영불교거사림, 신행단체의 봉사단이 함께 걸어온 길입니다.” 

몽산 스님의 말씀처럼 ‘산처럼 뜻을 세우고 바다처럼 편안한 마음을 지닌’ 묵원 스님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묵원 스님은
1975년 묘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철학교육을 전공. 태고종립 중앙승가강원 대교과 졸업. 태고종 중앙종회 의원, 태고종 총무부장, 교육부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부 통영구치소 교정위원, 통영해양경찰서 경승실장, 통영불교거사림 지도법사, 사)나누우리 이사, 사)태고불교문화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1623호 / 2022년 3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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