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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국가유산’ 변경 추진에 “세계유산 시대 역행” 우려

  • 성보
  • 입력 2022.04.12 11:38
  • 수정 2022.12.07 11:02
  • 호수 1629
  • 댓글 3

4월11일, 문화재위원회·무형문화재위원회 발표
‘문화재’ 명칭·분류체계 추진 비용 64억원 예상
“국가 귀속 의미 강해…개인·사찰 소외” 우려도
국가유산 해외사례 드물어…설문과정 부실 논란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는 4월1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명칭을 바꾸고 하위에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두는 개선안을 논의·확정해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과 강경환 문화재청 차장이 개선안을 들고 있는 모습.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는 4월1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명칭을 바꾼 개선안을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과 강경환 문화재청 차장이 개선안을 들고 있는 모습.

60년간 법률·행정 용어로 쓰여온 ‘문화재(文化財)’라는 명칭이 ‘국가유산(國家遺産)’으로 바뀐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60년 만이다. 이에 따라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외청인 ‘문화재청’이란 기관 명칭도 ‘국가유산청’으로 변경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추진 과정에서 국민과의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고 ‘국가유산’ 명칭이 국가 귀속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는 4월1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명칭을 바꾸고 하위에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두는 개선안을 논의·확정한 뒤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전영우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유물의 재화적 의미가 강하게 담긴 문화재라는 과거 명칭 대신 역사와 정신까지 아우르는 유산이란 새 명칭으로 변경·확대해 다음 세대에 더욱 값지게 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를 바탕으로 하반기까지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하고, 국가유산기본법 제정 등 관련 법령과 체제 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용어 변경과 함께 문화재 분류체계 개선과 관련 법령 정비가 추진되면서 문화재 행정이 대대적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안내판·박물관 전시 패널 교체, 교과서·관련 누리집 정보 수정, 기관 명칭 변경 등으로 최대 64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는 4월1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명칭을 바꾸고 하위에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두는 개선안을 논의·확정해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과 강경환 문화재청 차장이 개선안을 들고 있는 모습.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는 4월1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명칭을 바꾸고 하위에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두는 개선안을 논의·확정해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과 강경환 문화재청 차장이 개선안을 들고 있는 모습.

그러나 ‘문화재’의 새 명칭을 두고 언론 브리핑 직전까지 ‘국가유산’과 ‘문화유산’이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라는 명칭이 사찰·개인의 유산까지 국가로 귀속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개선안 추진과정에서 국민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문화재청이 실시한 설문조사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화재청이 3월18∼22일 5일간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 4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전문가 95.8%가 문화재라는 용어를 ‘유산’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지만, 대체 용어로는 ‘국가유산’이 적절하다는 비율이 52.5%, ‘문화유산’이 적절하다는 비율이 38.9%로 나타나 13.6%의 좁은 격차를 보였다. 

또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문화유산’를 제외한 채 ‘국가유산’만 넣은 설문조사를 진행해 “국가유산 명칭으로 유도했다” “공론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 등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3월3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 [문화재청 유튜브 캡처]
문화재청이 3월3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 [문화재청 유튜브 캡처]

문화재청이 3월3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한승준 서울여대 교수는 “일반인에게 ‘문화유산’과 ‘국가유산’ 항목을 동일하게 놓고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면 국가유산보다 문화유산 명칭 선호도가 높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이 “반(反) 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정상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문화재청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는 취지로 명칭 변경을 추진했지만 정작 ‘국가’라는 용어로 범위가 한정되고 있다”면서 “국민 참여를 이끌어야 할 풀뿌리 문화정책에 반(反)하는 용어로 한계가 분명하다. 문화재청에서 시간을 두고 더 고민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 ‘국가유산’을 사용하는 해외 사례도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정상우 인하대 교수는 “문화재청에서 사례로 든 ‘국가유산’ 명칭은 연방국가들이다. 내셔널(national)이 연방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들의 ‘국가유산’에는 동산문화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동산문화재의 경우 이동할 때마다 각 주의 적용 법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국가유산’은 주로 움직일 수 없는 기념물이나 장소를 지칭한다”고 강조했다.

한승준 서울여대 교수도 “프랑스에서는 ‘유산’인 파트리무안(patrimoine)으로, 중국은 문물(文物)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고, 정상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도 “이탈리아에서는 문화유산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황권순 문화재청 정책총괄과장은 “이때 ‘국가’는 ‘국립’이나 ‘중앙정부’가 아닌 한 국가 전체라는 의미에서, 우리 겨레가 만들어 놓은 유산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봐달라”며 “자연유산과 무형유산을 포함하려면 문화유산보다는 국가유산이 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해외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한정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문화재위원·서울시문화재위원장·조계종 성보문화재위원을 역임한 원로 미술사학자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은 “우리나라에 있는 각국의 유물을 어떻게 ‘국가유산’이라고만 한정할 수 있느냐”면서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 세계유산 시대에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 소장품 목록. 문화재청이 2017년 12월 발행한 ‘문화재 분류체계 구체화 방안 연구’ 갈무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 소장품 목록. 문화재청이 2017년 12월 발행한 ‘문화재 분류체계 구체화 방안 연구’ 갈무리.

문화재청이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바꾸는 이유는 문화재라는 용어가 과거 유물의 재화적(財貨的) 성격이 강하고 자연물과 사람을 문화재로 부르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지적 등에 따른 것이다. 더구나 문화재보호법이 1950년 제정된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을 대부분 원용해 만든 것이고, 문화재 명칭을 사용하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뿐이라는 이유도 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1972년 제정된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문화재’(cultural property) 대신 ‘유산’(heritage)이라는 용어가 채택됐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에서도 ‘문화유산’ 용어가 보편화되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명칭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화재청이 2005년, 2008년, 2017년 명칭 변경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문화재위원회 단계에서 좌초됐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확대 등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면서 올해 초 문화재청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 개선안 마련에 박차를 가해 문화재위원회 결의를 이끌어 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29호 / 2022년 4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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